OtvN 프로 <어쩌다 어른>에 출연한 손경이 강사.

OtvN 프로 <어쩌다 어른>에 출연한 손경이 강사. ⓒ OtvN


관계교육연구소 소장인 손경이 강사는 지난 28일 O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현재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큰 움직임인 #METOO #WITHYOU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방송 직후 손경이 강사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영상 클립이 SNS에서 화제가 되는 등 <어쩌다 어른>이 미투-위드유 운동을 다룬 방식에 호평이 쏟아졌다.

권력의 문제

손 강사는 성폭력의 핵심은 '성'(性)이 아닌 '권력'에 있다고 강조했다. 성폭력은 '야한 이야기' 따위로 치부되고 은폐될 부끄럽고 성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는 권력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범죄라는 의미다.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 통계로 증명이 되었는데, '가해자 남성-피해자 여성'의 경우가 전체 사건의 92%에 달했고, '가해자 남성-피해자 남성', '가해자 여성-피해자 여성' 사건의 비율이 뒤따랐다. 다양한 상황적 맥락 속에서 개인이 지니는 권력의 강도에 따라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관점은 성폭력이 '여성을 향한 남성의 주체되지 않는 성적 욕망'에 의해 발생한다는 일반적인 오해를 해소한다. 또한 남녀 모두가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까지 성범죄의 위험성을 재인식하고 '미투' '위드유'에 손을 내밀 수 있다.

그루밍법? 한국은 뭔지도 몰라

이날 강연에서 손경이 강사는 청중들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손경이 강사가 가장 벅참을 표했던 순간은 "가해자와 피해자 중 누굴 예방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일동 "가해자"라고 대답한 순간이었다. 손경이 강사는 17년의 강의 경험 동안 '피해자' 혹은 '둘 다'라는 대답만 들어왔었는데, '가해자'라는 적극적인 반응을 들어본 건 처음이라고 눈물의 의미를 밝혔다.

손경이 강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싸움에서, 피해자가 소심해지고 제3자 역시 피해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손 강사는 '그루밍'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는데,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길들여 성폭력을 용이하게 하거나 은폐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루밍은 총 여섯 단계, 1) 피해자 고르기 2) 신뢰 얻기 3) 욕구 충족시켜주기 4) 고립시키기 5) 관계를 성적으로 만들기 6) 통제하기 순서로 진행되며 이러한 가해자의 치밀한 '계획'은 성폭력 이후 피해자가 자신을 자책하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비난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는 이른바 '그루밍법'을 제정해 성인이 16세 이하 청소년에게 성접촉 시도만 해도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나이를 만13세로 지정해 그 기준이 지나치게 어리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가 미성년의 투표권, 술과 담배, 음란물 등을 허용하는 나이는 만18-19세로 비교적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성적인 행위에 동의 표시를 할 수 있는 나이는 너무 어리게 설정되었다는 지적이다.

 OtvN 프로 <어쩌다 어른>에 출연한 손경이 강사.

OtvN 프로 <어쩌다 어른>에 출연한 손경이 강사. ⓒ OtvN


진정한 동의는 철회될 수 있어야

이렇듯 미성년자들은 더욱이 성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지만, 손경이 강사는 오히려 어린 학생들에게 새로운 사고와 용기를 배운 적이 많다며 경험을 공유했다. 그 중에서도 '동의'의 개념을 게임하는 과정에 비유해 설명하던 태권도장 어린이의 일화는 인상적이었다. 그 어린이는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여러(약관) 동의를 해야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동의가 가장 중요하다"며 "그리고 우리가 동의를 하고 게임을 시작했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언제든지 그 게임을 그만둘 수 있듯이, 동의는 언제나 철회가 가능하다"는 창의적인 시각을 전달했다고 한다.

손 강사는 이 관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성관계는 상대방의 적극적인 동의 하에 이루어져야한다는 명제를 넘어서 "진정한 동의는 언제든지 철회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제안에 일단 '동의'를 하고 함께 모텔에 간다거나 옷을 벗더라도, 어느 순간에 관계를 원치 않으면 언제든 '그만'을 말할 수 있고, 상대방의 의사표시에도 멈추지 않으면 그것은 명백한 성범죄가 된다는 뜻이다.

손경이 강사는 성폭력의 본질은 어느 한 개인의 비행이 아닌 권력관계로 점철된 우리 사회 구조에 있음을 방송 내내 강조했다. 미투 운동으로 폭로된 가해자들 대부분이 각 분야의 '권력자'들 이었다. 성별, 직업, 직장 내 위치 등의 차별은 누군가를 권력자로, 또 누군가를 소수자로 만들어 권력관계에 의한 폭력을 낳는다. 

성폭력은 구조의 문제인 만큼, 성폭력 피해 당사자와 가해 당사자만의 문제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 <어쩌다 어른>이 '미투'가 아닌 '위드유' 특집을 마련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고발만으로 성폭력이 박멸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목격한 수많은 대중이 피해자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야만 가해자가 반성하고 사과하고 처벌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가해자의 반성까지 우리가 도와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남성중심의 권력사회, 성폭력 사회를 만든 것은 지금껏 켜켜이 쌓여온 대중들의 방관과 동조였다.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개인은 없을 것이고, 폭력을 해체하는 것 역시 우리의 몫이어야 한다.

어쩌다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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