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포스터.

영화 <소공녀>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크루즈(CRUISE), 미소(이솜 분)가 활동했던 밴드다. 대학생 시절로 보이는데 영화에서 정확하게 알려주진 않았다. 다만 예전에 즐겁게 활동했던 기억을 색바랜 사진으로 보여준다. 함께 모여 환히 웃으며 담배 피우는 사진. 그 안에선 모두가 개성 있는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어, 그들이 사는 현재는 과거와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2일 개봉한 영화 <소공녀>에서 주인공 미소는 방을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에 밴드 '크루즈'가 떠올랐고 이들을 찾아 나선다. 머물 곳을 찾아 큰 트렁크와 낡은 봇짐을 들고 여행 아닌 여행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극중 미소는 계란 한 판을 들고 떠난다. 설마 30살 나이를 은유로 담은 걸까? 아니면 계란말이와 '삶은 계란'이 주는 상징을 숨긴 걸까. 한때는 밴드를 하며 같은 길을 걸어간 멤버들은 그들이 다룬 악기만큼이나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미소와 계란은 그들에게 위로를 주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꿈을 포기해야 사람답게 산다고?

과거 밴드로 함께 꿈을 좇던 그들은 미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꿈을 포기하고 산다. 사람답게 살려고. 생활과 타협하며 밴드와 거리가 먼 삶을 산다.

베이스를 치던 친구는 큰 회사에 다니며 격무에 지친 피로를 직접 제조한 영양제 링거를 맞으며 푼다. 그는 오래 전 땄던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가장 잘 배운 기술이라고 말한다. 드럼 치던 후배는 아파트에 살고 싶어했던 부인이 떠난 후, 한 달에 100여만 원씩 20년을 갚아야 하는 감옥에 홀로 갇혔다. 190만 원 월급을 받으면서 말이다.

키보드 치던 친구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시집 식구와 남편의 무관심을 받으며 산다. 애지중지했을 키보드는 휴지통 위에 버린 듯 뒀다. 노총각 보컬 선배는 아들 장가보내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노부모와 함께 산다. 늙어가는 전립선을 안타까워하면서. 저택에 사는 기타리스트 언니는 감정이 급히 오르내리며 남편 눈치를 살피며 혹은 무서워하며 살고 있다. 그들이 밴드를 했다는 기억은 색바랜 사진으로만 남았다.

미소의 연인 한솔(안재홍 분) 또한 웹툰이라는 꿈을 포기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간다. 한솔은 꿈을 포기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별 장면의 롱테이크가 슬프게 다가왔다. 그 순간에도 미소는 어디 맡기지 못한 큰 트렁크와 낡은 봇짐을 들고 서 있다. 혼자 남겨진 그의 모습에서 꿈은, 짊어지고 끌어야 할 삶의 무게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꿈을 포기한 연인과 친구들과는 달리 미소는 집을 포기한 와중에도 위스키와 담배를 놓지 못했다. 하루를 마감하며 달콤하게 넘기던 그 한 잔 값이 무려 2000원이나 오른다는 소식에, 미소는 "위스키, 너마저"라고 좌절한다.

겹겹 껴입은 옷만큼이나 팍팍한 현실

 영화 <소공녀> 스틸 컷.

영화 <소공녀> 스틸 컷. ⓒ CGV 아트하우스


가난한 연인은 오랜만에 사랑을 나누려 옷을 벗는다. 다른 영화라면 에로틱했을 장면이 짠하게 다가왔다. 겹겹이 껴입은 옷, 옷, 옷. 기타리스트 언니는 레이어드 룩이라고 칭찬했지만, 미소는 추워서 껴입었을 것이다. 끝내는 추워서 따뜻한 봄으로 사랑을 미뤘다. 결론적으로 아직 추울 때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 연인과 따뜻한 체온을 나누진 못했을 것이다.

겹겹 벗어 던져도 나신이 되지 못하는 미소와 한솔의 모습은 우리 시대 젊은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벗어도 벗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들이다. 취업난, 주택난 그리고 학자금 대출까지 말이다. 그래서 꿈을 포기해야 하는가요? 그러면 살만해지는가요? 어른들에게 묻는 듯해 대답이 궁해진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다.

밴드에서 미소가 맡았던 악기는 무엇이었을까? 영화에서 직접 얘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 속에서 혹은 관객의 관점에서 미소의 파트를 상상해 본다. 무대 뒤와 공연 전후, 모든 곳과 상황을 매니지하는 매니저였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소는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다. 사람들은 미소가 차려준 밥상에 감동하고 "밥 먹었어요?"라고 물어보면 울컥한다. 요리와 질문에 진심이 담긴 걸 느낀 거다. 그러나 현실은 진심으로 살아가며 소박한 꿈을 놓지 못하는 미소에서 담배와 위스키를 앗아가 버리려고 한다. 미소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남들과 다른 결정을 해서라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유능한 매니저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며 어려움이 오더라도 돌파하니까.

 영화 <소공녀> 스틸 컷.

영화 <소공녀> 스틸 컷. ⓒ CGV 아트하우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소공녀 영화 소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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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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