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바이벌 패밀리> 포스터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 포스터 ⓒ 윤스


갑자기 더 이상 전기를 쓸 수 없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실 물과 먹거리를 자급할 수 없는 도시는 필연적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도시인이 생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도시탈출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일본영화 <서바이벌 패밀리>(야구치 시노부 감독)는 갑자기 전기가 끊어지고 언제 다시 공급이 재개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되는 한 가족 이야기다. 영화는 스즈키(코미나타 후미요 연기)와 그의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도쿄에서 가고시마까지 안식처를 찾아가며 겪는 108일 간의 여정을 따라간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재난영화의 공식을 따른다. 감독은 그 틀 안에 주인공 가족이 유대를 회복하고 인생을 다시 보게 되는 성장담까지 솜씨 좋게 엮어냈다. 명색이 재난영화이지만 이야기는 무겁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극단적인 폭력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 영화에는 고베에 있는 한 수족관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선 파티를 벌이며 사이좋게 주린 배를 채우는 기상천외한 장면이 등장하고, 2km에 달하는 터널 앞에서 그곳을 오가는 이들을 상대로 길잡이를 해주며 돈을 버는, 앞 못 보는 할머니들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 영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담은 걸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전반적인 태도 역시 재난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하나같이 비교적 큰 동요 없이 상황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대한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인 특유의 평정심이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원인을 설명하지도 적절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정부나 공권력의 부재 상황에 대해 어떠한 문제제기도 특별한 언급도 취하지 않는 영화의 태도는 좀 기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 스틸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 스틸 ⓒ 윤스


물론 이런 특징을 두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사회가 보여줬던 모습에 대한 풍자 혹은 당시 시민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지 못했던 정부 당국을 향한 이 영화만의 '침묵시위'로 해석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무리의 자위대가 영화 중반 생뚱맞게 등장하는데, 이들은 후쿠이 원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멈췄다면서 다른 원전도 그런 상황인지 알아보러 가는 중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전기가 없어진 도시생활에 대한 묘사에 있다. 물론 대부분이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들이긴 하다. 고층 아파트는 더 이상 편리한 공간으로서 기능을 잃게 되고, 현대 문명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와 컴퓨터, 스마트 기기 등은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롤렉스시계나 현금 뭉치도 물물교환이 지배하는 경제 환경에서는 별 가치가 없다.

영화는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스즈키의 아들이 더 이상 켜지지 않는 스마트폰을 주저하지 않고 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을 통해 필자는 애장품의 우선순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는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 또한 그것이 적정한 것인지 곰곰 따져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필자에겐 뚜렷한 기준이 없었다. 따라서 평소 아꼈던 물건들이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불분명해졌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생각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는 주인공 가족이 겪는 이야기를 보면서, 관객 스스로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돌아보도록 만든다.

물론 그 답은 한 가지가 아닐 것이고, 핵심은 이후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갈 것인지 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정해지면 앞으로 어떤 삶을 사는 게 좋을지 자연스럽게 해답은 나오게 돼 있다. 물론 이를 실행에 옮길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하지만 적어도 이를 알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질문과 관련해서 영화는 첫 시퀀스와 마지막 시퀀스의 대비를 통해 스즈키 일가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방식으로 답을 준다. 함께 사는 즐거움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던 가족이 고난을 함께하면서 저마다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마침내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함께 웃는 가족으로 변모한 것이다. 인생이란 이처럼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서바이벌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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