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최준석은 FA 미아가 될 위기에 놓였다.

롯데 자이언츠 최준석은 FA 미아가 될 위기에 놓였다. ⓒ 롯데자이언츠


올 겨울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는 '베테랑 홀대' 현상이었다. '세대교체라고 쓰고 토사구팽이라 읽는다'는 씁쓸한 농담이 나올 만큼 올 겨울 이적시장은 베테랑 선수들에게는 유독 추운 한파로 다가왔다. 최근 프로야구계에서는 젊은 유망주 내부 '육성'에 초점을 맞추는 흐름이 유행이다. 확실한 대형 FA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주가 아닌 이상 투자에 소극적인 분위기가 형성됐고 그 여파로 가장 피해를 보게 된 것이 바로 베테랑 선수들이 된 셈이다.

리빌딩을 표방한 LG 트윈스는 지난 연말 정성훈, 이병규 등 팀에 오랫동안 헌신한 베테랑급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며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한화도 이미 시즌 중반부터 노장 선수들에 대한 정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스틴 니퍼트, 에릭 해커, 앤디 벤 헤켄 등 그동안 KBO를 대표하는 장수 외인들이 잇달아 소속팀과의 재계약에 실패한 사실은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반면 김현수, 황재균, 강민호 등 FA 최대어로 꼽혔던 선수들의 몸값은 이번에도 보란 듯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양극화' 조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FA 미아들 대부분이 배테랑 선수들, 노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벌써 1월말을 향해 가고 있는 시점이다. 아직도 최준석, 김경언, 이대형 등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못하거나 소속팀을 구하지 못한 베테랑급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수년 동안 반복되고 있다. 겨울마다 제도에 발목 잡힌 베테랑 FA는 원 소속팀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다가 은퇴 기로에 몰리거나, 가까스로 계약을 맺어도 사실상 구단에 백기투항하는 모양새가 되기 쉽다.

선수로서의 실력이나 가치가 아직 충분한 상황인데도 노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구단으로부터 버림받거나 저평가를 받는 상황이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 베테랑 홀대 현상을 우려하는 이들의 반응이다. 더 이상 실력만으로는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구단이 베테랑의 가치를 그저 '다루기 불편한 존재'로만 취급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졌다.

한편 구단들이 나이든 선수들을 우선적인 정리대상으로 삼는 것이 무조건 불공정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살아남은 선수들에게도 '베테랑다운 베테랑'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오히려 팀 분위기를 해치는 선수도 있고, 옛날 생각에 특별 대우만을 기대하는 선수도 존재할 것이다. 롯데가 최준석을 포기한 것이나 LG가 정성훈을 방출한 것은 그 방식이 너무 냉정하다는 지적은 받을 수 있을지언정 구단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내린 판단으로 보인다. 이들을 버린 것이 구단 입장에서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는 앞으로의 결과로 증명하면 되는 일이다.

모든 프로 구단들이 베테랑을 홀대하는 분위기로만 흘러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NC 다이노스는 30대 중후반의 베테랑 FA 선수인 손시헌, 이종욱, 지석훈을 모두 붙잡았다. 냉정히 말하면 이들은 나이와 보상선수 문제 등으로 어차피 NC 잔류 말고는 사실상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NC는 꾸준한 협상을 통해 베테랑 선수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최대한 함께 안고 가려는 자세를 보였다.

NC가 신생 구단임에도 단기간에 리그에 안착할 수 있던 데는 베테랑의 역할이 컸다. 은퇴한 이호준을 비롯하여 젊은 선수들의 중심을 잡아주고, 프로다운 모범이 되어줄 선배들이 있었기에 NC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신흥 강호로 올라설 수 있었다. 한화도 과정상의 진통은 길었지만 어쨌든 정근우, 박정진 등과 재계약에 성공했다. 불혹을 넘긴 박정진은 이번 계약으로 한화의 원클럽맨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으며 슈퍼스타가 아닌 불펜 투수라도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보여줬다.

계약기간을 놓고 유난히 기나긴 공방을 이어갔던 정근우는 구단과 최종적으로 계약기간 3년(2+1년)에 총액 35억이라는 예상보다 후한 조건으로 합의에 도달했다. 길어지는 협상으로 구단과의 불화에 대한 우려도 나왔지만 끝까지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는 언행을 삼가며 최종적으로는 원만하게 합의에 도달한 모양새를 연출한 것도 긍정적이다.

KIA 타이거즈, 베테랑 적극 영입하는 이유는

 갑작스런 정성훈의 방출 소식은 LG팬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LG에서 방출된 정성훈은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에 자리잡게 됐다. ⓒ LG 트윈스


지난 시즌 우승팀 기아 타이거즈는 가장 적극적으로 베테랑 포용 정책을 보여준 팀이었다. 김기태 감독이 이끄는 기아는 우승 주역이었던 베테랑 김주찬과 긴 협상 끝에 3년(2+1년) 총액 27억 원에 재계약을 맺은 데 이어, 최근에는 LG에서 방출되어 무적 신분이던 내야수 정성훈을 연봉 1억에 전격 영입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로써 기아는 지난 시즌 우승전력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다음 시즌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기아의 베테랑 선호는 올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기아는 이보다 앞서 2016년에는 도박파문으로 삼성에서 방출당했던 임창용을 영입해 두 시즌간 필승조에서 쏠쏠하게 활용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김광수, 최영필, 서재응, 최희섭 등 많은 베테랑들이 기아에서 말년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거나 명예롭게 은퇴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기아가 유독 다른 팀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밀려나거나 선수생활의 기로에 놓여있던 베테랑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점에서는 팬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한편 일부에서는 '이 선수들이 꼭 기아에 필요했나' 하는 의문도 존재한다. 장기적으로 김기태 감독 부임 이후 리빌딩을 추진해나가고 있는 팀 기조에 맞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김기태 감독의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김감독은 베테랑 선수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지도자다. 젊은 선수들에 대한 육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른 구단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김감독은 LG 감독 시절부터 베테랑과의 신뢰 구도를 강조하곤 했다. 최소한 베테랑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가치에 선입견을 두지는 않았다. 결국 지도자의 관점에 따라 베테랑을 미래를 가로막는 '짐'으로 볼 것이냐, 팀을 지탱할 한 '축'으로 보느냐는 구단의 운명에도 엄청나게 큰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베테랑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정답은 없다. 그러나 결국 야구도 사람이 모여 하는 일이다. 각기 다른 개성과 심리를 지닌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이 바로 팀 스포츠로서의 야구의 매력이다. 선수의 마음을 움직이고 팀에 대한 충성심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선수를 대하는 태도에 달렸다.

선수는 기계가 아니기에 단순히 나이들었다고 젊고 새로운 선수로 교체한다고 해서 당장 더 나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지난 시즌 기아의 우승에서 보듯, 팀으로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도 항상 건강한 신구 조화가 필요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고참은 고참으로서의 역할이 언제나 존재한다. 올 겨울 프로야구를 강타한 베테랑 구조조정의 대란에서 '살아남은 베테랑'들의 다음 시즌 역할이 더 중요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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