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K리그 최강팀 전북 현대는 '선수 재활원'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있던 선수들, 혹은 한물간 취급을 받던 베테랑들도 유독 전북에만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화려하게 부활한 경우가 많았던 것을 빗댄 표현이다.

전북 재활원이 만들어낸 '최고의 히트 상품' 하면 단연 이동국이다. 지난 2009년 당시 축구 인생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던 이동국을 영입하며 K리그 최고의 골잡이로 부활시킨 것은, 이후 전북과 K리그의 역사까지 바꾸어놓은 대반전의 서막이었다.

 2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전북 이동국이 K리그 개인 통산 200골을 성공한 뒤 세리머니하고 있다.

지난 2017년 10월 2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전북 이동국이 K리그 개인 통산 200골을 성공한 뒤 세리머니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동국은 전북에서 5회의 리그 우승과 1회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또한 어느덧 최고령 선수가 된 지난해 K리그 사상 첫 통산 200골이라는 대기록까지 이룩하며 명실상부한 K리그의 전설로 거듭났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고 다시 대표팀에 승선하는 기쁨도 누리며 세월을 거스르는 활약을 펼쳤다. 만일 이동국이 9년 전 전북의 녹색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저 그런 선수'로 잊혀졌을 지도 모른다.

이동국만의 사례는 아니다. 김보경, 김진수, 조재진, 이근호 등 수많은 '해외 유턴파' 선수들이 전북에 와서 재기에 성공하며 대표팀에도 복귀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은퇴를 앞두고 있던 김남일, 김상식, 최은성 등의 노장들은 전북에서 축구 인생 말년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화려한 피날레에 성공했다.

이러한 성공사례가 반복되며 전북은 이제 K리그에서 우수한 선수들이 한 번쯤 가고 싶어 하는 클럽이 됐고, 양질의 선수 영입을 바탕으로 전북은 다시 매년 우승 트로피를 노릴 수 있는 선순환으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선수 재활원'이자 리그 챔피언인 전북 현대, 홍정호도 살려낼까

 28일 오후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7차전 한국과 시리아의 홈경기에서 홍정호가 선취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3월 28일 오후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7차전 한국과 시리아의 홈경기에서 홍정호(왼쪽)가 선취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전북 재활원'의 새로운 '응급 구조 대상' 1순위는 바로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홍정호다. 전북은 14일 중국 장쑤 쑤닝에서 활약하던 홍정호를 1년 임대로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홍정호는 지난 2010년 제주에서 프로에 데뷔하며 일찌감치 한국축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형 수비수로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2013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FC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하며 중앙수비수 포지션으로는 드물게 유럽파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2014년에는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하며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돌연 중국 슈퍼리그 장쑤로 이적하며 팬들의 기대와는 다른 행보를 걸었다. 전 시즌만 해도 독일 무대에서 주전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중이었기에 한국인 유럽파 센터백으로서 성장을 기대했던 팬들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홍정호 측은 중국진출도 새로운 도전이라고 주장했지만, 많은 이들은 '결국 돈 때문에 중국을 선택한 게 아니냐'는 엇갈린 평가를 내렸다.

결과론이지만 홍정호의 선택은 패착이 됐다. 그래도 장쑤 이적 초기에는 꾸준하게 경기에 출장하며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지난해 갑자기 중국축구의 외국인 선수 보유 규정이 축소 개편되면서 아시아쿼터제의 수혜 대상이었던 한국 선수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고 홍정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설상가상 장쑤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한국인 최용수 감독이 경질당하며 마지막 보호막마저 잃은 홍정호는 출전 기회를 잃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다.

중국 진출 이후 경기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지난해 6월 이후로는 대표팀에서도 자연히 밀려났다. 선수로서 한창 전성기에 접어들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뼈아픈 손실이었다. 공교롭게도 홍정호를 비롯한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중국무대에 진출한 이후 대표팀에서 부진하거나 기량이 하락세를 타는 징크스가 반복되며 '중국화 되었다'라는 조롱이 축구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벼랑 끝에 몰려있던 홍정호에게 K리그 복귀와 전북행은 현재 시점에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만하다. 디펜딩챔피언 전북은 다음 시즌 K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 더블 우승을 노릴 정도의 강팀이다. 전북에는 홍정호의 친형이기도 한 골키퍼 홍정남까지 뛰고 있어서 빠른 팀 적응과 수비라인의 시너지 효과까지 기대할만하다.

홍정호가 시즌 초반 경기감각을 빨리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대표팀 복귀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출전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다. 현재 대표팀의 중앙수비진은 장현수와 권경원이 지나 6개월간 신태용 감독의 꾸준한 신뢰를 얻으며 중용되어왔다.

하지만 월드컵 같은 큰 무대 경험을 갖춘 베테랑이 부족하다는 게 불안요소다. 비록 지난 월드컵에서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홍정호는 김영권과 함께 본선무대 경험을 갖춘 몇 안 되는 센터백이다. 뛰어난 빌드업 능력과 유럽무대까지 체험해본 경력은 대표팀에 분명히 도움이 될 만하다. 홍정호는 최종엔트리 승선을 놓고 김영권, 정승현, 김민재 등과 함께 경쟁해야 한다.

홍정호의 전북행에 또 다른 이점은 현재 대표팀의 상당수가 바로 전북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특히 기존 최철순-김진수-김민재에 이어 홍정호까지 가세하면 사실상 전북의 포백 라인이 모두 현 국가대표로 채워지게 된다. 어차피 대표팀에서도 호흡을 맞춰야 할 동료들과 소속팀을 통하여 더 빨리 조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은 홍정호가 앞으로 최종엔트리 경쟁에서 포지션 경쟁자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홍정호 부활은 국대에도 '희망', 전북은 더블·트레블 노릴 수도

자선 축구 볼다툼 1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홍명보장학재단 자선축구경기 '쉐어 더 드림 풋볼 매치 2017'. 하나팀 고요한과 희망팀 홍정호가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자선 축구 볼다툼 지난 2017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홍명보장학재단 자선축구경기 '쉐어 더 드림 풋볼 매치 2017'. 하나팀 고요한과 희망팀 홍정호가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또 다른 분데스리가 출신의 박주호가 K리그 울산행을 선택하며 화제를 모은 데 이어 홍정호까지 국내에 복귀한 것은,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해외파 선수들에게도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될 전망이다. 올해 월드컵 본선이라는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승선을 노리는 선수들이 출전기회를 잡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이적을 모색하는 것은 한국축구로서도 좋은 신호다.

전북은 어느덧 국가대표팀에도 가장 중요한 선수 공급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신욱-이재성-김진수-최철순-김민재 등은 월드컵 최종엔트리 승선까지 기대해볼 만한 선수들이다. 여기에 홍정호까지 전북에서 다시 한번 부활시킬 수 있다면 대표팀을 위해서도 큰 기여를 하는 셈이 된다.

홍정호의 가세로 전북은 이미 두터운 더블 스쿼드에 또 하나의 날개를 추가하게 됐다. 전북은 최강희 감독이 부임한 2005년 이후 각종 대회에서 벌써 8회의 우승을 달성했으며, 2014년부터는 매년 우승 트로피를 하나씩 추가하고 있다.

하지만 독보적인 전력에도 불구하고 한 시즌 2관왕 이상은 거두지 못했다. 올 시즌 지난해 매수파문으로 박탈당했던 AFC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1년 만에 되찾아오며 오명을 씻을 기회를 노리고 있는 데다, 12년째 유독 인연이 없었던 FA컵까지 더하면 '트레블'까지도 노려볼만한 적기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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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홍정호 전북현대 선수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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