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는 매 시즌 우승후보로 꼽히는 강팀이다. 유재학 감독이 부임한 이후로만 KBL 최초의 챔프전 3연패를 비롯하여 5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기존의 양동근, 함지훈, 전준범 등 호화스러운 멤버에 2016년부터는 국가대표 센터 이종현(키가 203cm에 달한다-기자 주)까지 가세하며 '제2의 현대모비스 왕조'가 열리는 게 아니냐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현대모비스의 행보는 다소 저조하다. 8일 현재 9승 10패로 5할에도 못 미치는 승률로 6위에 머물며 고전하고 있다. 6일에는 최하위 부산 KT를 상대로 4쿼터 종료 직전 동점 3점포를 허용하며 연장전까지 간 끝에 재역전패를 당하기도 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1월 29일 고양 오리온(94-93)전에서도 이기기는 했지만 4쿼터 11점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동점을 허용하며 연장전까지 끌려가는 등 승부처에서 불안한 모습을 거듭했다.

당초 현대모비스가 강팀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양동근이나 함지훈의 존재도 있었지만 역시 이종현이 버틴 골밑의 강점 때문이었다. 김주성(원주 DB)-하승진(전주 KCC)-서장훈(은퇴)-오세근(안양 KGC) 등의 사례에서 보듯, KBL에서 강력한 '토종빅맨'은 곧 우승의 보증수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견실한 외국인 빅맨과 '트윈타워'까지 이룰 수 있다면, 높이만으로도 최소 6강은 기본으로 먹고 들어간다는 게 KBL의 불패 공식이었다.

 10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1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경기. 모비스 이종현이 슛을 하고 있다.

10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1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경기. 모비스 이종현이 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현대모비스는 정작 '이종현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KBL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는 이종현은 17경기에서 8.9점, 6.5리바운드에 그치며 오히려 데뷔 시즌(10.6점, 8리바운드)보다 기록이 하락했다. 전매특허인 블록슛만큼은 2.12개로 전체 선두에 올라있지만 그 외에는 전반적인 공헌도가 떨어진다.

평범한 토종 빅맨이었다면 이 정도만으로도 대단한 기록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대상이 이종현이기에 만족할 수 없는 성적이다. 이종현은 경복고 재학 시절부터 이미 서장훈-김주성의 뒤를 이을 초특급 빅맨 유망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농구 월드컵 본선출전-인천 아시안게임 우승멤버의 일원으로 폭넓은 경험까지 쌓으며 승승장구했다. 자연히 프로에서 활약하는 데 대한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한 탓일까. 이종현은 프로무대에서 험난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프로 데뷔와 동시에 장기 부상으로 첫 시즌 고작 22경기 출전에 그쳤고 사실상 주전으로 첫 풀 타임 시즌이라고 할 수 있는 올해도, 팀은 중위권에 머물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종현의 활약도 기복이 심하다는 평가다.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은 이종현이 대학 무대에서 별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서장훈이나 김주성, 오세근 같은 선배들은 프로에 진출하기 전에 이미 기술적, 체력적으로 어느 정도 완성된 선수들이었다. 그에 비해 이종현의 농구는 아직까지 신체적 능력에 의존하는 스타일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농구는 빅맨에게도 넓은 슛범위와 다양한 공격 기술을 요구한다. 프로에 입성한 이후 이종현의 공격력은 대부분 골밑에서 받아먹기 득점에 의존하고 있다. 포스트업이나 중거리슛 능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득점루트라고 하기는 어렵다. 슈터 못지않은 3점슛 능력까지 갖췄던 서장훈이나, 프로무대에서 단신빅맨으로 살아남기 위해 훅슛을 정착했던 팀 선배 함지훈과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오히려 골밑에서 주로 활동하는 빅맨임에도 이종현의 야투 성공률은 첫해 44.8%, 올 시즌 46.2%에 그치며 5할에도 미치지 못한다. 경기장 자유투 생산능력도 지난 시즌 2.95개에서 올해는 1.82개로 오히려 떨어졌다. 그만큼 골밑에서의 적극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수비와 리바운드는 어떨까. 공식 프로필 223cm에 이르는 위협적인 윙스팬과 정확한 타점을 바탕으로 한 블록슛은 위협적이지만 단순히 블록 수치만 높다고 해서 우수한 수비수는 아니다. 포스트 수비에서 이종현은 버티는 힘이 부족하고 체력도 떨어지는 편이라 경기후반으로 갈수록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리바운드도 이종현의 신체조건을 감안할 때 평균 6.5개는 결코 만족할만한 수치가 아니다. 지역방어를 자주 구사하는 현대모비스의 시스템상 상대에게 공격 리바운드를 내주지 않으려면 빅맨의 철저한 '박스아웃'이 기본인데, 이종현의 플레이를 보면 습관적으로 공간을 확보하기보다는 먼저 공을 보고 점프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대학시절 자신보다 크고 힘이 좋은 선수를 상대한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박스아웃을 소홀히 하는 습관이 몸에 뱄기 때문이다.

물론 더딘 성장의 책임을 이종현에게만 묻는 것은 가혹하다.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도 이종현이 프로무대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데 일정한 책임이 있다. 전성기 서장훈에게 올루미데 오예데지와 재키 존스, 김주성에게는 레지 오코사와 로드 벤슨, 오세근에게 데이비드 사이먼 등 훌륭한 외국인 '정통센터'를 파트너로 붙여준 것과 달리 현대모비스는 이종현의 데뷔 이래 그의 부담을 덜어줄 만한 외국인 빅맨이 없었다.

지난 시즌 골밑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뽐냈던 찰스 로드(현 KCC)는 유재학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팀 분위기를 해친다는 명목으로 퇴출됐다. 이후 현대모비스는 올 시즌까지 이종현 외에는 이렇다 할 장신의 정통센터가 없다. 올시즌의 마커스 블레이클리와 레이션 테리는 모두 190대 이하의 포워드 혹은 언더사이즈 빅맨들이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7월 열린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블레이클리와 애리조나 리드, 두 명의 단신선수만 선발했다가 골밑의 한계를 절감하고 리드 대신 테리를 교체한 바 있다.

이러다 보니 아직 프로 경험이 부족한 이종현이 센터로서 힘 좋고 노련한 외국인 선수들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그나마 테리와 블레이클리도 기복이 있는 선수들이다. 애초에 팀 구성 자체가 계산 착오였는데 이종현의 플레이가 위축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동안 KBL 최고의 명장으로 꼽혔던 유재학 감독이지만 지난 시즌부터 보여준 무리한 팀운영과 주전 혹사 등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종현은 국가대표 빅맨진중에서도 오세근, 김종규, 이승현에 이어 사실상 4순위까지 밀려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한국 귀화를 추진 중인 리카르도 라틀리프까지 합류하면 이종현이 대표팀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현재는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이종현은 앞으로도 10년 이상 한국농구의 주축으로 활약해줘야 할 선수다. 지금의 이종현은 프로무대에서 아직까지 자신만의 확실한 플레이 스타일을 정립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농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