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군중낙원>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군중낙원>은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영화는 유승택(도제 니우) 감독이 1960~70년대 대만에서 군 생활을 한 아버지 세대를 추억하며 만든 작품이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긴장감이 팽팽하던 1969년, 대만 금문도를 배경으로 비운의 역사에 휘말려 웃고 울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금문도는 중국 본토 하문(셔먼)에서 겨우 2km 정도 떨어져 있다. 대만보다 본토에 훨씬 가깝다. 그러니 두 개의 중국으로 분리된 이후, 중국 본토(중화인민공화국)는 금문도를 노리며 끊임없이 공격했고, 이미 두 차례나 큰 전투에서 패한 이후에도 이틀에 한 번 꼴로 폭탄을 투하했다. 대만(중화민국) 또한 '대륙수복'을 외치며 필사적인 수비를 했으므로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전쟁이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각자의 이유로 모이게 된 군중낙원

 2014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군중낙원>

ⓒ 부산국제영화제


<군중낙원>의 주인공, 앳된 20대 청년 루어 바오 타이는 빨리 제대해 고향에 두고 온 애인과 결혼하고, 아들딸 낳고 소소한 행복을 누릴 날만 학수고대한다. 그에게 '본토수복'이나 '공산당 격퇴' 같은 이념 싸움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런 그가 수영실력 문제로 해병대에 남을 수 없어 831부대, '군중낙원'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곳은 1951년 10만 군인의 성욕 해결이라는 명목으로 장개석 정부가 합법화한 공창(公娼) 시설이다. 많은 여성들이 서로 다른 사연으로 모였고, 이곳을 찾는 군인들에게서 역시 다양한 인간 군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영문도 모르고 전쟁터로 끌려온 장 상사는 20년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831부대에서 만난 여성을 사랑하게 돼, 전역 후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한다. 한편 바오의 입대 동기 종화싱은 비인격적 체벌을 벗어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확성기에서는 승리와 통일을 노래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곳에서 절망한다. 새 생명이 태어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죽어간다. 이들은 본질도 알 수 없는 이데올로기를 구실로 애국을 강요당한 선량한 시민일 뿐이다. 이는 주인공 바오의 독백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때 우린 그걸 강하게 믿었지만 나중에 보니 모든 건 거짓이었다
하지만 한참 후에 깨달았다. 사실 그건 우리 운명이었던 거다." 영화 <군중낙원> 중에서.

역사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진실을 토해내기도 한다. 먼 훗날 우리는 그 과거를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1990년대 들어, 중국 본토와의 긴장이 완화되고 여성 인권 문제로 대만의 군 공창 법은 폐지됐다. '군중낙원'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 어두운 역사에 직면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영화가 그 용기 중 일부가 아닐까 한다.

<군중낙원>이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는 이유

 2014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군중낙원>

ⓒ 부산국제영화제


우리도 분단과 이산가족의 아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가 낯설지 않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도제 니우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고민이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밝음이 나올 수 있고, 고통에서 기쁨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비극이지만 피해서는 안 되는 주제다. 1949년 대만과 중국이 분리된 이후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남편을 살해해야 했던 비운의 여인 니니. 그녀는 아들이 엄마 얼굴을 잊기 전에 집에 돌아가고 싶다며, 감형을 받으려고 '군중낙원'에서 일하다가 주인공 바오와 사랑에 빠진다. 이곳을 떠나면서 그녀가 남긴 노래 'River Of No Return'은 많은 얘기를 해준다. 우리 인생은 되돌아갈 수 없는 강 같다. 가끔은 물소리가 가녀린 흐느낌 같고, 강줄기가 굽이굽이 험난하기도 하지만 마냥 흘러 간다. 그 강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역사라는 대양이 아닐까. 그래서 감독도 "운명의 바다에 떠다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영화"라고 첨언하지 않았을까.

냉전시대, 공창, 군대 등 무거운 소재를 담았지만 가벼운 유쾌함이 적당히 배합돼, 관객은 길을 잃지 않고 흥미로운 스토리의 흐름을 즐겁게 따라간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지만 심하게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장면은 없다. 다만, 아쉽게도 개봉관 극장이 아닌 TV VOD로 감상할 수 있을 예정이다. 그러나 찾아서 감상할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2014 부산 국제영화제 개막작 군중낙원 대만 분단 유승택(도제 니우) 감독 대만 군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접하게 되는 다채로운 영화들, 반추되는 인생, 또 여행과 일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