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범죄도시>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남편 상화

영화 <부산행>에서 마동석의 이미지는 믿고 마주할 수 있는 동네 아저씨로 다가왔다. ⓒ (주)NEW


배우 마동석이 눈에 들어온 건 영화 <부산행>에서였다. <부산행>에서 마동석은 만삭의 아내 성경(정유미 분)을 극진히 위하는 순한 남편 상화 역을 맡았다. 좀비가 출현하는 재난영화긴 하지만 영화 초반부에 그의 근육질은 느닷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그 괴력이 평범하나 강직한 상화 캐릭터의 '의분'과 맞아 떨어지면서 그의 이미지는 믿고 마주할 수 있는 동네 아저씨로 다가왔다. 영화 <범죄도시>에서 인정미 넘치는 괴물 형사 마석도로 분한 마동석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범죄도시>는 실화와 액션에 비중을 둔 실화 범죄 액션물이다. 마석도(마동석 분)는 2004년 '왕건이파', '흑사파' 사건을 담당했던 윤석호 경위를 모델로 한다. 배경이 된 금천구 가리봉동은 영화에서는 조선족 폭력배 이수파, 독사파, 춘식이파 등이 공존하는 구역이다. 마석도가 "주먹 한방 액션"으로 통쾌하게 제압하던 그곳에서 다급하게 조폭 싹쓸이 작전이 펼쳐진다.

그 도화선은 난데없이 나타나 순식간에 그곳을 장악한 신흥범죄조직의 악랄한 보스 '장첸(윤계상 분)의 분탕질이다. 산 사람을 도끼로 절단해 토막사체유기까지 저지르는 장첸 무리의 행태는 어디서나 극악무도하다. 윤계상의 칼부림 연기는 굵은 이마 주름살을 짓는 건조한 표정과 어우러져 섬뜩하다. 일반시민들의 일상마저 안하무인으로 짓밟는 장첸의 몹쓸 짓이 득세하는 곳이 영화가 보여주는 '범죄 도시'다.

도시의 일상적 삶터는 이제 준 '범죄도시'로

 영화 <범죄도시> 스틸 컷.

영화 <범죄도시>에서 벗어나더라도 우리가 사는 도시의 일상적 삶터는 이미 준 범죄도시로 편입된 것 같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 (주)키위미디어그룹


잠시 곁길로 들어서면, 도시의 일상적 삶터가 준 범죄도시로 이미 편입되었음을 시사하는 사건들이 국내외 도처에서 터지고 있다. 거액의 기부금을 받아 호화판 생활을 해 온 어금니 아빠가 딸의 친구를 살해한 사건, 지난 10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호텔의 콘서트 상공으로 쏟아진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 지난 6월 서울의 한 대학교 교수 연구실에서 사제폭탄이 터진 사건 등은 평소 범죄적 행태와 무관하다 여겼던 인물들이 저지른 경악스러운 일이다.

특히 어금니 아빠에 대한 초동수사 부실 논란은 경찰에 대한 불신을 한층 키운다. 그 탓에 부득이 신고를 하더라도, 번거로운 건 둘째 치고, 처리 과정에서 신고자 신분이 범죄자에게 드러나지 않길 바라는 껄끄러움을 더더욱 감수해야 한다. <범죄도시>의 강력반 형사들이 범죄현장 인근 상인들의 협조를 쉽게 얻지 못하는 이유다. 다행히 마석도와 정든 조선족 소년 왕오(엄지성 분)가 허구한 날 칼부림을 보는 현실을 타개하자고 하소연하자 상인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경찰의 범인 검거에 필수적인 제보 행위는 까딱하면 범인의 표적이 될 수도 있어 시민에게는 양날의 검이다. <범죄도시>에서 우연히 제보 사진을 본 장첸에 의해 중태에 빠진 왕오는, 구급차에 실려가는 와중에도 왕오에게 걸려온 부재중 통화를 뒤늦게 보고 달려온 마석도에게 장첸의 공항행을 힘을 짜내어 알린다. 공항 화장실에서 벌어진 마석도와 장첸의 필사적인 난투극은 조폭소탕의 대단원이다.

일선 강력계 형사들의 악전고투 보여주는 <범죄도시>

 마석도 마동석 범죄도시

<범죄도시>는 일선 강력계 형사들의 악전고투를 제대로 홍보한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 (주)키위미디어그룹


잔인한 장면이 많은 <범죄도시>에서 재미를 더하는 사실감은 실화를 딴 사건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이 아니다. 강력계 형사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다. 영화는 그중 마형사를 비리로 엮을 수도 있는 인간적 약점들을 삽입해 웃음을 자아낸다.

황사장(조재윤 분)이 운영하는 룸살롱에서 여색에 빠졌다가 사고 접수로 출동한 경찰 눈을 피해 허둥대거나 눙치는 모습, 조폭 보스들과 호형호제하며 정보를 나누는 모습, 지금은 김영란법에 걸릴 간식거리 튀김 값을 이수파 두목 장이수(박인환 분)에게 떠넘기는 모습 등이다.

한편 <범죄도시>는 일선 강력계 형사들의 악전고투를 제대로 홍보한다. 막내 강홍석(하준 분)이 부서를 옮겼다가 복귀하는 국면을 조명함으로써 강력계의 특성과 고충을 자연스레 전달한다. 강력반장 전일만(최귀화 분)이 상부의 독촉에 부원들을 몰아세우다가 끝내 하극상의 스트레스성 실랑이가 벌어지는 장면은 실적 달성의 압박감마저 부담해야 하는 근무환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범죄도시>의 으뜸 미덕은 마석도라는 캐릭터를 바람직한 형사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데 있다. 준범죄도시에 사는 관객은, 실제 인물 윤석호 경위의 모습에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졌다 할지라도, 장첸 같은 무지막지한 범죄자를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강하면서도 너나들이할 줄 아는 따뜻한 성품을 눈으로 좇으면서 안도한다. 그것은 경찰에 대한 평소의 불신을 어느 정도 해소하면서, 일선에서 뛰는 마석도들을 떠올려 박수 치게 한다.

조선족에 대한 '묻지마 혐오' 조장은 위험

 영화 범죄도시 스틸 컷

영화 <범죄도시>는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조장한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 (주)키위미디어그룹


그러한 <범죄도시>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국내에 거주하는 소수자 조선족에 대해 연길식당 사장(민경진 분)이나 왕오의 시달림보다는, 장첸파의 오른팔 위성락(진선규 분)과 왼팔 양태(김성규 분) 같은 악역들을 각인시키므로 그렇다. 그것은 조선족 장기밀매조직 소탕을 소재로 한 <청년경찰>, 살인청부업자를 다룬 <신세계>와 <황해>, 그 외에 <차이나타운>과 <희생부활자> 등이 불가피하게 조명했을 부정적 시각에 보태져 조선족 괴담 만들기에 기여한다.

어떤 계층이나 조직에 대해서든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것인 양 호도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묻지마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 조선족을 포함해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새롭게 꾸리는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부정할 수 없는 구성원들이다. 이제는 건강한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국내 소수자 끌어 안기에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영화계가 발굴한 조선족 소재의 참신한 차기작을 기대한다.

범죄도시 마동석 윤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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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종류의 책과 영화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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