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22일 오전 축구협회에서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전 대표팀 명단 발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22일 오전 축구협회에서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전 대표팀 명단 발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이라 불린 사내가 있었다. 축구 팬들은 그를 '갓틸리케'라고 불렀다.  거스 히딩크 이후 한국 축구를 성공으로 이끌어줄 지도자로 기대를 모았던 울리 슈틸리케였다.

슈틸리케 감독의 시작은 화려했다.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처참한 실패로 절망에 빠져있던 국민에게 희망을 안겼다. 한국 축구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투지가 살아났고, 상대를 혼란 속에 빠뜨리는 '늪 축구'로 큰 박수를 받았다. 개최국 호주와 맞붙은 결승전에서 웃지는 못했지만, 대표팀을 비판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2002, 2010 월드컵 못지않은 성공이 기다릴 것처럼 보였다.

갓틸리케→수틸리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슈틸리케호의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다. '황태자' 이정협과 이재성, 권창훈 등 신진 세력이 대표팀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 8경기에서 전승을 거뒀고, 27골을 몰아쳤다. 실점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레바논과 쿠웨이트, 미얀마, 라오스와 한 조에 속해 '당연한 결과'란 평가가 따르기도 했지만, 칭찬의 목소리가 훨씬 컸다.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던 레바논 원정에서 무려 22년 만에 승리를 맛보기도 했다. 그것도 3-0으로.

칭찬 가득했던 목소리가 독이 된 것일까. 슈틸리케호의 상승세는 거기까지였다. 최종예선을 앞두고 치러진 유럽 원정 평가전은 추락의 서막이었다.

대표팀은 세계 최강 스페인과 친선 경기에서 무려 1-6으로 무너졌다. 전력 차가 워낙 컸던 탓에 승리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2차 예선에서 보여준 끈끈한 수비력이 이토록 무너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행히 '강호' 체코와 경기에서 2-1로 승리를 거두며 자존심을 지켰지만, 자신감이 가득했던 대표팀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우려는 최종예선 시작과 함께 현실이 됐다. 대표팀은 2016년에 열린 최종예선 5경기에서 3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언뜻 보면 나쁘지 않은 성적처럼 보이지만, 내용이 엉망이었다. 2차 예선에서 자랑한 화끈한 공격력과 무결점 수비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시리아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실점했고, 이란 원정에서는 유효 슈팅 0개라는 굴욕까지 맛봤다.

2017년 재계 된 최종예선은 악몽 그 자체였다. 대표팀은 중국 원정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0-1로 무너졌고, 본선행이 일찌감치 좌절된 카타르 원정에서 32년 만에 패배를 맛봤다. 월드컵 본선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슈틸리케호. 한때 '신'이라 불렸던 사나이와 한국 축구의 동행은 여기까지였다.

원칙 없는 선수 선발, '주전'은 정해져 있었다

 7일(현지시간) 오후 브라질 사우바도르 폰치 노바 아레나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남자 축구 조별리그 C조 2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후반전 한국 장현수(왼쪽 셋째)가 독일 율리안 브란트의 공격을 마크하고 있다.

7일(현지시간) 오후 브라질 사우바도르 폰치 노바 아레나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남자 축구 조별리그 C조 2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후반전 한국 장현수(왼쪽 셋째)가 독일 율리안 브란트의 공격을 마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슈틸리케는 무엇 때문에 허무하게 무너진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이전 지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슈틸리케는 부임 초기와 달리 국가를 대표할 만한 선수를 선발하는 데 완벽하게 실패했다. 그는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대표팀을 구성하기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이들을 내세웠다.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해도 2015 호주 아시안컵과 2차 예선에서 보여준 활약상이 대단했다면, 경기 출전에 문제가 없었다. 여기에 부족한 전술적 능력까지 도드라지면서, 추락을 막지 못했다.

대표적인 곳이 수비 라인이었다. 조직력이 생명인 수비지만, 슈틸리케호는 매 경기 새로웠다. 1차전 중국전(장현수-홍정호-김기희-오재석)과 2차전 시리아전(이용-장현수-김영권-오재석), 3차전 카타르전(장현수-홍정호-김기희-홍철), 4차전 이란전(장현수-곽태휘-김기희-오재석), 5차전 우즈베키스탄전(홍철-김기희-장현수-김창수) 등 대표팀 수비는 혼란을 거듭했다.

특히,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가 어울리는 장현수를 오른쪽 풀백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조광래 감독 시절을 떠올렸다. 조광래 감독도 활용 가능한 풀백이 있었음에도 이용래와 김재성 등의 무리한 포지션 변경을 일삼으며 끝없는 부진에 빠졌었다.  

장현수는 홍명보 감독 시절 박주영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2017시즌 중국 슈퍼리그 외국인 선수 규정이 바뀌면서,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도 지난 3월에 열린 중국과 시리아전에 연속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고, 6월 카타르 원정에서도 대표팀 수비의 중심축 역할을 맡았다. 

최전방 공격수 이정협도 슈틸리케의 편협한 선발의 대표적인 예다. 이정협은 호주 아시안컵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K리그 클래식 무대에서의 활약은 저조했다. 스트라이커였지만, 2016시즌 30경기 출전 4골에 머물렀다. 부진한 모습이 이어지며 소속팀 내 경쟁에서도 밀리는 등 국가대표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지만, 슈틸리케의 신뢰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 외에도 소속팀 내 활약이 저조한 지동원과 김기희, 오재석, 한국영, 정우영 등 슈틸리케호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선발이 넘쳐났다.

슈틸리케의 원칙 없는 선수 선발은 '희망'을 사라지게 했다. 소속팀에서 아무리 좋은 모습을 보인다 해도 주전으로 나설 수 없었다. 2016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주역이었던 이재성과 김보경, 김신욱 등이 대표적이다. 우측 공격수와 수비수를 오가며 2016시즌 K리그 클래식 영플레이어상을 받은 안현범과 최고의 좌측 풀백으로 올라선 정운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어보지도 못했다.

조광래와 홍명보, 슈틸리케는 비슷한 길을 걸었다. 큰 기대와 함께 힘찬 출발을 보였지만, 마무리는 씁쓸했다. 이들은 선수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실패했고, 희망 가득한 대표팀을 만들지 못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대표팀은 감독이 잘 아는 소수 인원으로 구성되는 느낌이었다.

월드컵 본선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대표팀을 이끌게 된 신태용 감독. 짧은 기간 성공을 바란다면, 실패한 과거를 철저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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