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방송된 <동상이몽2: 너는 내 운명>의 한 장면.

6일 방송된 <동상이몽2: 너는 내 운명>의 한 장면. ⓒ SBS


추석 연휴가 한창이던 지난 7일, 축구선수 정대세와 그의 부인 명서현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논란은 6일 방송된 SBS <동상이몽2: 너는 내 운명>(아래 <너는 내 운명>)의 추석특집 예고편을 통해 정대세, 명서현 부부의 출연 소식이 전해진 이후 벌어졌다. 일부 시청자들이 정대세의 국적을 두고 부정적인 반응을 피력한 것이다.

그 '부정'이라는 것이 단순하고 또 과격하다. 현재 핵 문제를 두고 북한이 미국은 물론 한국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다는 것. 지난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포함해 북한 월드컵 대표팀으로 활약한 이력이 있다는 것. 이게 전부다. 심지어 국내 프로축구팀인 수원 삼성에서 뛴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 운명>을 '보이콧' 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보인다.

정대세가 누구인가. 재일조선인 3세인 그는 남아공 월드컵 당시 브라질 전에서 흘린 눈물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후 독일 프로팀을 거쳐 일본과 한국의 프로무대를 두루 섭렵한 그는 현재 일본 시미즈 에스펄스의 공격수로 소속돼 있다.

그런 정대세에게 방송 전부터 '비난'과 '부정'이 쏟아내는 작금의 분위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저 한국 내 보수층의 '반북' 정서라거나 최근 고조된 북핵 갈등의 부정적 여파로 치부해도 괜찮은 걸까. 그게 그렇지가 않아 보인다.

추성훈은 괜찮고, 정대세는 안 된다?

 축구선수 정대세가 30일 오후 서울 상암동 SBS 프리즘타워에서 열린 '2013 SBS 연예대상'에 출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축구선수 정대세가 30일 오후 서울 상암동 SBS 프리즘타워에서 열린 '2013 SBS 연예대상'에 출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권우성


"1984년 3월 2일 재일교포 3세로 나고야 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 국적을, 어머니는 조선 국적을 갖고 있었다. 정대세는 부계를 따라 한국 국적을 갖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을 일본 학교에 보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조선 사람'으로서 긍지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강력하게 원해 대세를 조선학교에 입학시킨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대세의 부모는 심하게 다투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학교에 다니면서 정대세는 10살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마침 J리그가 시작된 시점이었고, 축구 꿈나무 대세는 장차 가슴에 'J' 마크를 달 날이 오기를 열망한다. 소원대로 조선대학교를 거쳐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 프로추구 선수로 활약한다.

2007년, 한국 국적을 갖고 있던 정대세는 우여곡절 끝에 북한팀 대표선수가 되어 월드컵에 출전해 공헌한다. 2010년 월드컵 종료 후, 독일 분데스리가 2부 VfL 보훔으로 이적한 뒤 2010년 겨울 다시 FC쾰른으로 이적해 활동하고 있다. '인민 루니', '인간 불도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축구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2012년 발간된 자서전 <정대세의 눈물>에 수록된 저자 소개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정대세는 분명 한국 국적의 소유자다. 다만 '우여곡절', 즉 국적문제로 인해 월드컵을 출전하기 힘든 상황이 되면서 '북한 대표팀'을 선택했을 뿐이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그는 대표선수 자격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대세는 청소년기를 '우리학교'라고 불리는 '조선학교'에서 보냈고, 축구도 '조선학교'에서 시작했다. 조선학교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일본 내 '국어 강습소'에서 시작됐는데, 재일 조선인들이 민족교육 실시를 위해 전국 각지에 교육시설을 일컫는다. 해방 이후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폐쇄령을 선포하자 재일 조선인들은 한신 교육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1950년대 이후 이 '우리학교'는 조총련과 북한의 지원으로 실질적인 자립을 이뤄낼 수 있었다.

정대세가 바로 이 조선학교 출신이다. 재일조선인들 중 다수는 해방 후 일본 정부가 부여한 조선 국적을 그대로 보유한 경우가 많았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따로 절차를 밟아야 했기 때문이다. 조선학교의 방침에 따라 수학여행을 평양으로 다녀오기도 했던 정대세는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와 조선학교의 영향으로 평양 대표팀을 선택하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정대세는 전 세계인이 주목하기도 했던 자신의 드라마틱한 선택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정대세는 이러한 성장 배경과 북한 축구대표팀 출전은 자서전 <정대세의 눈물>은 물론 한국 방송과의 인터뷰나 다큐 프로그램에서도 수차례 자세히 밝힌 바 있다. 정대세는 그간 MBC의 < MBC 스페셜 - 축구 그리고 3개의 조국 >, < MBC 다큐스페셜 > '이천수, 정대세의 마지막 도전'과 SBS 신년 다큐멘터리 <나는 한국인이다 – 만세소통> 등 다큐 프로그램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인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기도 했다. K리그에서 활약했던 지난 2013년에는 SBS <연예대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정대세에게 쏟아진 부정적 여론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에 가깝다. 북한과의 정세를 이유로 일개 축구 선수이자 한국 국적 소유자인 정대세의 출연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몰이해와 반인권적인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인 추성훈의 방송 출연은 괜찮고, 한국 국적인 정대세의 출연은 불온하다는 주장이야말로 불온하고 부당하지 않은가. 아이러니하게도, 추성훈과 정대세는 동일한 소속사에서 활동 중이다.    

정대세를 향한 차별, 부당하다

 지난 7월 28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승소의 결과를 전해들은 오사카조선고교 학생들이 기뻐하며 밝게 웃고 있다.

지난 7월 28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승소의 결과를 전해들은 오사카조선고교 학생들이 기뻐하며 밝게 웃고 있다. ⓒ 김지운


지난달 9월 13일, 일본의 고교무상화법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조선학교와 졸업생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고교무상화'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도쿄지방법원은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도쿄조선중고급학교(조선학교) 고급부 졸업생들은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위법이라고 소송을 제기했고, 일본 법원이 이를 기각한 것이다.

앞서 지난 7월 19일 히로시마 지방재판소 판결에서는 원고 측(조선학교)이 패소했고, 같은 달 28일 오사카지방재판소는 원고 측이 승소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오사카 재판소 측은 "외교·정치적 의견에 기초해 조선학교를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이 인정된다"면서 "학생의 평등권과 교육받을 권리가 침해됐다"라고 판결했다.

"각지의 고교무상화 재판에서 피고인 일본국가가 주장하는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북한, 조선총련'의 '부당한 지배'를 받고 있다고 의혹이 있는 조선학교에 취학지원금을 지급하면 지원금이 '북한, 조선총련'에 유용될 의혹이 있으므로 조선고급학교를 지원금 지급 대상 학교로 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히로시마와 도쿄의 판결은 둘 다 이 논리를 추인해 원고패소의 부당 판결을 내렸다."

최근 후지나가 다케시 오사카 산업대 교수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일본의 조선학교 차별 4년 반... 그 재판 결과는?'이란 칼럼의 일부다. 후지나가 교수는 식민지 시기를 중심으로 연구한 한국근현대사 연구자다.

그는 일본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북한 관련 이슈가 민족차별 정책의 일환이라면서 "이번에 각지의 재판 진행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면서, 일본국가가 바로 식민지주의적 가치판단의 기준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을 부정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의 인식이 부족했음을 통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과연 북한을 끌어들여 일본 내 모든 학교에서 실시 중인 '무상화' 교육에서 조선학교만을 배제한 일본 정부의 차별정책과 정대세의 방송 출연을 반대하는 차별과 다를 게 무엇인가.

김정은 체제의 북한 핵개발 문제나 북한과의 외교 단절을 일본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자 조선학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아베 정권의 민족차별이나 단지 북한 국가대표팀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단 이유로 정대세의 방송 출연을 막는 일부 한국인들의 생각은 꽤 유사하다.

정대세에게 가해진 무지몽매하고 차별적인 움직임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2013년 '일간베스트'(일베) 등 일부 보수층은 수원 삼성에서 뛰고 있던 정대세의 퇴출은 물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정대세를 고발하려는 움직임까지 벌인 바 있다. (관련 기사: 퇴출해야 할 것은 정대세인가, 국보법인가)

최근 MB 정부 당시 국정원으로부터 광고를 수주받은 의혹을 받은 <미디어워치> 변희재 대표는 2013년 정대세에 대해 "(북한)공작원 기질이 강하다"며 공격한 바 있다. 일베는 그해 K리그 올스타 선수 투표에서 선두를 달리던 정대세를 끌어내리기 위한 조직적인 행동에 나선 바 있다. 특히 이들은 남아공 월드컵 당시 전 세계인이 '평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던 정대세의 눈물에 대해서도 '열혈 종북주의자'라며 비난한 바 있다.

이번 정대세의 <너는 내 운명> 출연으로 불거진 논란 역시 이 일부 극우와 보수층의 주장에서 한치도 발전한 것이 없어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아무리 사회가 퇴보했다고 해도 이 정도 논리와 주장이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특히나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에서 받은 차별을 헤아리기는커녕 아베 정권과 다를 바 없는 차별을 같은 동포에게 가하는 것이야말로 더 한 차별 아니겠는가. 다음은 또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인가.

정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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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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