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한국 손흥민의 슛이 골대에 맞고 있다.

5일 오후(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한국 손흥민의 슛이 골대에 맞고 있다. ⓒ 연합뉴스


절망적이었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누비던 손흥민이 대표적이었다. 손흥민은 우여곡절 끝에 국가대표팀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공격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조별리그 첫 경기(러시아)부터 선발로 나섰고, 알제리전에서는 자신의 월드컵 본선 무대 첫 득점도 터뜨렸다.

16강의 희망이 남아있었던 벨기에전에서도 골대를 맞추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대표팀 내에서 가장 우수한 기량을 갖췄음에도 '교체 1순위'란 사실이 아쉬웠지만, 손흥민은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죽을힘을 다해 뛴다'라는 것이 눈에 보였고, 팬들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던 손흥민에게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3년여가 흘렀다. 손흥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를 대표하는 특급 공격수로 성장했다. 해리 케인과 델레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공포의 '판타스틱 4'를 구축하며, 한 시즌(2016·2017) 21골을 폭발시켰다. 리그에서도 14골을 몰아넣으면서, 필리페 쿠티뉴(13골)와 시오 월컷(10골), 제이미 바디(13골) 등 정상급 선수들보다 우수한 기록을 남겼다.

손흥민은 말이 필요 없는 한국 축구의 중심이고, 에이스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한다는 것이 경기력과 기록을 통해 증명된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가대표 손흥민은 '발전'이 아닌 '정체'하는 느낌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증명한다. 손흥민은 토트넘 홋스퍼와 협의를 통해 결장했던 시리아 원정(말레이시아)과 경고 누적으로 빠졌던 중국 원정을 제외하면, 전 경기에 나섰다. 공격의 중심이었고,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선수였다. 상대팀도 손흥민에게 수비수 2~3명을 붙이는 등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최종예선 8경기에서 손흥민이 터뜨린 득점은 '1'에 머물렀다.

EPL에서 보여준 예리한 침투와 날카로운 슈팅은 보이지 않았다.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연계플레이도 찾을 수 없었다. 수비수가 밀집한 지역임에도 무리한 드리블을 고집했고, 득점이나 다름없던 기회는 살리지 못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선수들과 달리, 멀뚱멀뚱 서서 볼을 받으려고 하는 모습도 보였다.

손흥민은 왜 대표팀만 오면 작아질까

손흥민은 '내가 해결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성공적인 EPL 안착이 가져다준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번뜩임'을 보여주려 한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다. 패스를 통해 빠져나올 수 있는 공간에서 드리블을 시도해 볼을 빼앗기고, 늦은 상황 판단으로 공격권을 내준다. '시야'가 너무나도 좁다. 토트넘 손흥민은 경기장을 폭넓게 활용하지만, 대표팀에서는 매우 비좁게 사용한다.

케인과 알리 등 해결사가 많은 토트넘과 달리, 대표팀에는 손흥민만큼 결정력을 갖춘 공격수가 없다. '해결사가 돼야 한다'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문제는 대표팀에 크리스티안 에릭센 같은 '공격의 지휘자'도 없다는 사실이다. 기성용을 제외하면, 기본적인 전진 패스가 가능한 미드필더를 찾아보기 어렵다.

손흥민은 침투와 슈팅에 집중할 수 있는 소속팀과 달리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드리블을 통해 기회를 만들고, 득점을 책임져야 한다. 공격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대표팀 풀백 사정을 생각하면, 측면도 도맡아야 한다. 전방 압박과 수비 가담도 소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도 저도 안 된다. 대표팀 사정상 자신이 큰 짐을 짊어져야 하지만,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슈팅과 결정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드리블과 패스, 크로스 등 다방면에 유능하지는 않다. EPL에서 인정받은 이유도 드리블이나 패스 등이 아닌 결정력이다. 꾸준함과도 거리가 멀다. 

손흥민은 드리블이 화려한 선수가 아니다. 소속팀 경기와 대표팀 경기를 지켜보면, 손흥민의 퍼스트 터치가 좋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드리블과 날카로운 크로스를 보여줄 때도 있지만, 가끔이다. 슈팅과 결정력이 폭발하지 않는다면,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토트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케인과 알리, 에릭센과 비교해 손흥민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손흥민 자신의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슈팅과 결정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손흥민의 강점이 아닌 드리블이나 패스, 경기 조율 등은 팀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불필요한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다.

신태용 감독도 손흥민을 도와줘야 한다. 토트넘 손흥민이 폭발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풀백의 측면 지배가 절대적이었다. 지난 시즌 카일 워커와 대니 로즈가 측면 공격을 책임지면서, 손흥민은 중앙으로 빠져들어 가는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들이 수비를 흔들어주면서, 손흥민은 슈팅 기회를 잡기가 수월해졌다.

대표팀에는 황희찬과 권창훈, 이재성 등 유망한 공격 자원들이 버틴다. 염기훈과 이근호 등 노장들의 가치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통해 증명됐다. 공격적인 재능이 풍부한 측면 수비수 안현범과 정운 등의 대표팀 발탁을 고려하고, 패싱력이 뛰어난 신진호와 이명주 등의 활용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손흥민이 짊어진 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강점을 폭발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성적을 좌우할 수 있다. 손흥민 본인도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에서 보기 힘든 유형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선수다. 최종예선 기간 내내 부진한 경기력으로 비판을 받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자원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세계무대에서도 손꼽히는 공격수로 성장한 손흥민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 9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 한국 축구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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