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5일, 서울 종로 두산아트센터에서 2017 두산청소년아트스쿨 마지막 강연이 열렸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만 13세~24세의 청소년으로 대상으로 예술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고민을 나누는 강연프로그램이다. 박근형 연출가, 안은미 안무가, 여신동 무대미술가에 이어 마지막 강연자로 극단 '양손프로젝트'가 섰다.

'양손프로젝트'는 배우 양종욱, 손상규, 양조아 그리고 연출 박지혜로 구성된 공동창작 집단이다. 배우와 연출이 구분되어 있지만 작품 선정, 연극의 형식 등 무대에 오르기까지 전 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결정한다.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칠레 독재정권을 모티브로 한 <죽음과 소녀>로 2014년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박지혜)을 받았고, 2002년 위버링겐 상공 비행기 공중 충돌 사고의 유족이 관제사를 살해한 실제 사건을 다룬 매튜 윌킨슨의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 등을 무대에 올렸다.

그들은 왜 연극을 시작했고, 어떤 방식으로 공동창작을 이어가며 작품을 무대에 올릴까?

"네 명이 처음부터 이야기가 잘 통하거나 서로의 말을 100% 신뢰한 것은 아니었고 정말 지난한 과정이 있었어요." (박지혜)

극단 '양손프로젝트'가 공동창작의 힘을 주제로 강연했다. 연극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의 고민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했다.

 왼쪽부터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배우 양종욱, 연출 박지혜, 배우 양조아, 배우 손상규.

왼쪽부터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배우 양종욱, 연출 박지혜, 배우 양조아, 배우 손상규. ⓒ 두산아트센터


양손프로젝트의 탄생

'양손프로젝트' 구성원의 공통점은 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하지 않고 대학교를 졸업하거나 휴학한 뒤, 한예종 연극원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십 대 중후반에 평생 해도 될 작업을 찾은 것이다.

"'뭘 좋아하니?', '뭘 하면 행복할 것 같니?' 질문보다는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죠." (양종욱)

배우 양종욱은 연세대학교 입학 후, 연희극회 연극동아리에 가입한다. 그곳에서 그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처음 접한다. 24~25살 2년간 100여 편의 연극을 보면서 그가 느낀 것은 도전이었다.

"연극영화과 학생들과 프로 배우들에게 일격을 가해야겠다.(웃음)" (양종욱)

재미와 감동을 주었던 연극이 자신의 길인 것이 명확해지면서 연극판을 한번 뒤엎어 보겠다는 열정이 솟아났다.

배우 손상규는 하고 싶은 일은 없었지만 하고 싶은 것은 있었던 학생이었다.

"일로 하고 싶은 것은 전혀 없었어요." (손상규)

학창시절 그에게 재미는 농구와 책이었다. 연극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원했다. 법학을 전공해 사법고시도 준비했었다. 제대 후 복학했을 때, 그의 눈에 띈 것은 연극 단원 모집 공고였다.

"동아리에 들어가기 직전에 친구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진짜 재미없더라고요. 그런데 되게 신기했어요. '조명, 빛 등 이 원리가 뭐지? 도대체 무슨 기준, 근거로 이렇게 하는 것이지?'" (손상규)

연극을 한다는 것보다는 연극 자체에 호기심이 컸다. 이때가 아니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없을 것 같아 연극동아리 연희극회에 가입했다. 연극을 직업으로 해도 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양종욱을 만난 것이다. 2002년 때였다.

"둘이 빈 극장에서 무대를 만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뭔가 열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건 끝도 없이 할 수 있겠다. 평생 해도 되겠다 싶었죠." (손상규)

둘은 2003년 각자의 성 씨인 양과 손을 따서 양손프로젝트를 만든다. 산울림 소극장에서 단편소설 극장전을 제안 받은 2011년에 연출가 박지혜가 합류하고 이어, 배우 양조아도 가세하면서 지금의 양손프로젝트 모습을 갖추었다.

뒤늦게 합류한 박지혜와 양조아도 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하지 않았다. 교대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박지혜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4학년 때, 한 잡지를 보고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베를린 비엔날레 관련 기사가 실린 미술잡지였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이런 걸 만드는 게 아닐까 직관적으로 들었어요. 글도 쓰고 싶었고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고 영상과 음악도 좋아했는데 '이게 다 합쳐져 있구나' 이걸 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 뿌리가 퍼포먼스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시간과 공간을 함께 다루는 예술, 이걸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연극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까지 흘러가게 되었죠." (박지혜)

평생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때, 찾아온 것이 연극이었다.

"연극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 같아요. 제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인 작업을 꿈꾸다가요."(박지혜)

실용음악을 전공한 배우 양조아는 대학교 입학 초 때까지 자신의 삶을 하루살이라고 표현했다.

"'미래는 없다, 이 순간을 친구와 재미있게 놀면 그걸로 족하다' 정말 철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양조아)

그러던 중, 한 뮤지컬을 봤다.

"공연을 봤는데 갑자기 화가 나는 거예요. 제가 생각했을 때 너무 못해서 화가 났어요.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거예요. 나도 저거 좋아하는데, 하고 싶었는데, 나는 예쁘지도 않고 잘나지도 않고 부자도 아니라서 하고 싶다 생각을 못했는데 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게 너무 부럽고 화가 나고 억울한 거예요."( 양조아)

대학교를 휴학하고 한예종에 들어갔다.

"박지혜 연출에게 연락이 와서 양손프로젝트에 들어왔는데 저는 그때 연극, 영화, 드라마에 별로 관심 없었어요. '연기가 뭐지?, 사람이 뭐지?'에만 포커스가 가 있었지 무엇을 해야겠단 생각은 없었어요. 들어와 연극 작업을 하게 되면서 인생이 많이 바뀌게 된 것 같아요." (양조아)

양손프로젝트의 창작 작업

그들은 무대에 올릴 작품을 함께 의논하여 선택한다. 텍스트의 어떤 부분을 빼고 넣을지, 1인극으로 할지 2인극으로 할지 모두의 생각이 반영된다. 또한 작품이 단원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도 중요하다. 연출자가 작품을 선택하고 배우를 섭외하는 기존 방식과는 다르다.

"배우란 느낌이라기보다는 연극을 함께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기 아이디어를 내는 동등한 창작자라고 느꼈고 신선했던 것 같아요." (박지혜)

그리고 의자와 탁자만을 두는 등 무대 세트를 최소화하고 배우의 연기로 작품을 확장해 나간다. 그들은 이것을 배우의 가능성이라고 했다.

"배우가 드라마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다른 것들을 일단 최소화하고 배우의 가능성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이죠." (양종욱)

작업을 시작할 때, 정해진 것은 없다. 의견이 나오면 무엇이든 다 실현해본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을 때 비난받을 때가 있거든요. 유치하다고요. 근데 실제로 해봤을 때 굉장히 좋게 돼서 작품에 녹아드는 게 있어요. 우와 멋지다 했는데, 하고 나니까 별로였구나 치워지는 것들이 있고요." (양종욱)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무대에 오르기 약 2주 전, 2인극에서 1인극으로 바뀌었다. 단원 모두가 이해가 되어야만 무대에 올린다는 고집 때문이다.

"2인극으로 두 명이 캐스팅 되었는데 공연 1~2주 전에 1인극으로 가자 해서 한 명을 빼는 건 불가능할 것 같거든요. 이상하잖아요? 그런 것에 있어서 막힘없이 할 수 있는 관계가 초반에 형성된 것 같아요." (손상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또한 무대에 오를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한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경험, 신뢰가 쌓이다 보니 시간을 들여 어떤 것을 만들어도 그것을 부정하고 다른 것을 축조하는 일들에 대해 거침없이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양종욱)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데는 관객을 만족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해서인 것 같아요. 혼자라면 이런 선택을 하는 게 무섭겠지만 넷이고, 같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원하는 걸 해보자 계속 이야기해요."(양조아)

 연극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의 한 장면.

연극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의 한 장면. ⓒ 두산아트센터


 연극 <죽음과 소녀>의 한 장면.

연극 <죽음과 소녀>의 한 장면. ⓒ 두산아트센터


 연극 <폭스파인더>의 한 장면.

연극 <폭스파인더>의 한 장면. ⓒ 두산아트센터


이들이 선택하는 주 텍스트는 소설이다. 다자이 오사무, 모파상, 현진건 등 사회현실이 반영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여러 단편이 새롭게 조합돼 한 무대에 올라 단편선이라는 제목을 얻는다.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 개는 맹수다>는 작가의 소설 '황금풍경', '축견담', '직소'를 연극화한 경우다.

"어느 부분을 뺄지, 넣을지, 어느 부분을 강화할지, 한 명이 할지 두 명이 할지. 공동으로 시도하고 원활하고 풍요롭게 소통하기에 (소설은) 적합했던 선택이지 않았나 싶어요."(양종욱)

연극인 꿈꾸는 청소년의 질문 "부모님이 걱정해요"

"본인의 욕망을 자식을 통해 해소하려는 부모님의 욕망에서 과감히 벗어나세요." (양조아)

"부모님의 행복은 자식이 행복해야만 부모님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거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박지혜)

"확신에 찬 모습을 부모님께 많이 보여드렸던 것 같아요. 제가 덜 확신했었을 때도 부모님 앞에서는 큰 소리로 제가 가는 길에 대한 저의 확신을 보여드렸던 것 같아요" (양종욱)

"부모님을 안심시킬 수 있는 계획, 나이를 먹어서 병원비도 없이 살 것 같은 우려를 지우기 위한 계획, 부모님을 납득시킬 수 있는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양조아)

"양종욱 배우와 연극하며 살자고 했을 때 먼저 든 생각은 생계였어요.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오전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그 공간에서 연극 연습하겠다는 등 계획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돈이 안 될 것이 뻔히 보였어요. 내가 어떻게 살고 싶지? 했을 때 리서치를 바탕으로 계획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좌절할 수 있거든요." (손상규)

"연기란 게 안정적인 건 없는 것 같아요. 불안정한 것을 단단하게 내가 버티고 원하는 바를 향해 갈 수 있나, 없나에 대해 들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양종욱)

"(연극의 꿈이 스쳐지나 가는) 바람인지 아닌지는 해봐야죠. 일단 해야죠." (양조아)

 공동작업의 힘을 주제로 강연 중인 양손프로젝트.

공동작업의 힘을 주제로 강연 중인 양손프로젝트. ⓒ 두산아트센터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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