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겟 아웃> 포스터. 2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영화 <겟 아웃> 포스터. 2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 UPI 코리아


여자친구의 부모님에게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가는 남자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여자친구, 혹은 그녀가 가까이 어울리는 사람들과 자신 사이에 메우기 어려운 간극까지 있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구구절절 들어보지 않아도 환한 일이다.

싹 트는 공포, 그 근원은 어디에

 로즈(앨리슨 윌리암스 분)를 따라 아미타지 가족을 방문한 크리스(다니엘 칼루야 분).

로즈(앨리슨 윌리암스 분)를 따라 아미타지 가족을 방문한 크리스(다니엘 칼루야 분). ⓒ UPI 코리아


하물며 백인 여자친구의 집에 가는 흑인 남자친구의 입장이라면 발길이 쉽게 떨어지는 게 더욱 이상한 노릇이다.

여자친구 로즈(앨리슨 윌리암스 분)와 주말 동안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기로 한 크리스(다니엘 칼루야 분)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로즈는 그에게 갈아입을 옷이며 샴푸와 데오도란트를 챙겼냐고 묻지만,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이 맴돈다. 로즈의 부모는 백인이고 자신은 흑인이라는 것, 자신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남자친구가 흑인이란 걸 집에 알리지 않았다는 로즈에게 크리스는 불편함을 내비친다.

"내가 첫 흑인 남자친구라고 했잖아. 그럼 그분들은 처음 겪는 일일 거 아니야? 난 샷건에 쫓기며 마당에서 도망 다니고 싶지 않아."

하지만 부모님이 가능했다면 오바마에게 세 번 투표했을 것이며 당연히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란 로즈의 확답에 크리스는 더 말을 잇지 못한다.

많은 경우 공포란 알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우주 공간의 외계생명체나 고립된 산장의 정신 나간 산장지기, 음험한 마을에 출몰하는 원귀 따위가 공포영화의 주요한 설정으로 등장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다른 많은 공포물처럼 <겟 아웃>도 주인공들이 익숙하지 않은 장소로 떠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크리스에겐 로즈의 부모나 그들이 사는 시골 마을이 모두 낯서니 공포가 싹트기에 이보다 좋은 환경도 없을 것이다.

새로울 것 하나 없지만 유효한 질문을 일깨우는

 흑인을 경매붙여 팔기 위한 파티에서 딘 아미타지(브래들리 휘트포드 분)가 크리스(다니엘 칼루야 분)를 가리키고 있다.

흑인을 경매붙여 팔기 위한 파티에서 딘 아미타지(브래들리 휘트포드 분)가 크리스(다니엘 칼루야 분)를 가리키고 있다. ⓒ UPI 코리아


장르적으로 보면 <겟 아웃>은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영화다. 공포물의 역사에 나름의 족적을 남긴 <호스텔>과 <더 퍼지: 거리의 반란>에서 이미 쓰여 유명해진 설정, 그러니까 주인공이 악당들로부터 유인이나 납치를 당해 인간 시장에서 노예처럼 팔려나가고 부유층의 변태적인 욕구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얼개를 그대로 빌려 썼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가 여자의 부모와 만나 서로의 사랑을 인정받기까지는 1967년 작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고 다른 사람의 내면에 들어가 그의 일상을 바라보는 설정은 1999년 작 <존 말코비치 되기>와 유사하다. 1966년 작 <세컨드> 이후 수도 없이 등장한 바 있는 수술을 통해 새 몸에서 새 삶을 얻는 설정도 익숙하게 느껴진다. 한 마을의 흠 잡을 데 없는 아내들이 알고 보니 사이보그였다는 <스텝포드 와이프>의 착상 역시 세뇌당한 흑인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겟 아웃>이 이룬 성과는 새로움이 아니라 실재하는 현상을 장르 영화의 틀 안에 적절히 끼워 넣어 관객이 문제를 자각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감독 조던 필은 크리스와 로즈가 자연스레 키스하는 장면에서 이질감을 느꼈을 관객 대다수의 인식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현실사회에 유효한 비판점을 끌어내는 데까지 성공한 듯 보인다. 영화 초반부 차로 사슴을 들이받은 문제로 출동한 백인 경찰이 조수석에 타고 있던 크리스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일이나 흑인 경찰들이 흑인 제보자의 의견을 듣고 비웃던 장면 등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엔 제법 의미심장하다.

김빠진 클라이맥스와 안이한 결말에도 영화가 호평을 받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흑인에게 격의 없이 대하는 듯한 백인들의 태도에서 도리어 과거보다 공고한 차별과 구분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버락 오바마가 재선 미국 대통령을 지내고 난 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한 오늘의 현실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와 독재자, 파시스트와 사기꾼이 세계 곳곳에 출몰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이를 차별로 악화시키고 얼마 안 되는 이문에 눈을 붉힌다. 편견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질서는 더욱 굳건해지는 가운데 초대받지 못한 손님만 여전히 가시방석이다. 절대 먼 곳 이야기가 아니다. 2017년 오늘 바로 우리네 풍경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노숙인 자활을 위한 잡지 <빅이슈>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겟 아웃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조던 필 빅이슈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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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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