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제주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1차전 장쑤 쑤닝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 장쑤 최용수 감독이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2월 22일 오후 제주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1차전 장쑤 쑤닝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 장쑤 최용수 감독이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중국 축구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던 한국 축구 스타들이 최근 줄줄이 쓴 맛을 보고 있다.

중국 프로축구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지도자 6명 중 무려 4명이 한 달 사이에만 잇달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한 달 사이에 한국인 감독 4명 사퇴

창춘 야타이를 지도하던 이장수 감독이 시즌 초반 5경기에서 1무 4패에 그치며 4월 초에 경질당했다. 5월에는 2부리그 소속인 윈난 리장의 임종헌 감독과 항저우 뤼청의 홍명보 감독도 잇달아 사임했다. 이어 지난 6월 1일에는 장쑤 쑤닝이 최용수 감독과의 계약해지를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상호 합의하에 계약해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성적부진으로 인한 경질이었다.

한국축구에서 나름의 인지도와 경력을 자랑하던 지도자들은 중국 무대에서의 초라한 실패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이장수 감독은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손꼽히는 베테랑 감독이었고, 홍명보 감독은 전 한국 국가대표팀 사령탑 출신, 최용수 감독은 K리그 우승-ACL 준우승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임종헌 감독도 태국에서 파타야 유나이티드를 1부리그로 승격시킨 공로도 그해 태국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오고 있었다.

한국인 지도자들이 최근 중국무대에서 연이어 고전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일단 한국인 지도자들이 이끄는 팀들의 성적이 대체로 좋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감독들 본인의 능력 탓만이라고 하기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이장수 감독만 하더라도 지난 2016년 5월 당시 아직 시즌 1승도 거두지 못했던 창춘을 고전 끝에 팀을 13위로 이끌며 극적으로 1부리그 잔류에 성공시켰다. 당시 현지 언론은 기적 같은 결과라며 평가하며 이장수 감독의 리더십을 칭찬했을 정도다.

그런데 올 시즌 출발이 다소 부진했다고는 하지만 시즌 초반 한달만에 구단은 경질 카드를 빼내들었다. 내용상으로는 아깝게 지거나 운이 따르지 않은 경기도 많았다. 경질 과정에서 이장수 감독과 구단 수뇌부와의 불화설이 나오기도 했다.

임종헌 감독은 올해 1월 리장과 3년계약을 맺었다. 3부리그에서 2부로 승격한 리장은 당초 임 감독에게 약속한 만큼 영입과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임 감독은 리장 지휘봉을 잡을 동안 FA컵에서만 승리를 챙겼을 뿐 리그에서 2무 4패에 그치며 끝내 첫 승을 신고하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은 당초 항저우에서 젊은 선수들의 육성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조건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지난 시즌 2부리그 강등 후 올시즌에는 구단 임원진이 교체되며 감독의 고유권한인 선수 선발과 기용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는 등 심한 텃세를 부린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일으켰다. 홍 감독이 물러나던 시점에 항저우는 4승 2무 4패(승점 14)로 16개 팀 중 10위에 머물러있다.

최용수 감독은 중국축구에 진출한 한국 지도자들 중 가장 빅클럽이라고 할수 있는 장쑤에서 지난 시즌 광저우에 이어 슈퍼리그와 FA컵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올해는 슈퍼리그에서 8라운드까지 첫 승을 올리지 못하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장쑤에서의 고별전이 된 상하이 상강과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도 패하여 탈락하면서 자연스럽게 결별 수순을 밟게 됐다. 지난해 시즌 중반 K리그 FC 서울의 지휘봉을 돌연 내려놓고 중국무대로 옮긴 지 불과 1년만이다.

현재 중국축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감독은 박태하 옌벤 푸더 감독과 장외룡 충칭 리판 감독 정도가 남았지만 두 팀도 현재 부진한 성적으로 리그 하위권에 처져 있어서 언제 감독이 경질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자칫하면 올 한 해동안 한국인 감독들이 중국무대에서 전멸당할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 축구시장 이끄는 중국 축구의 빛과 그림자

중국축구는 최근 급성장하며 아시아 축구시장의 새로운 주류로 떠올랐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금전적 대우'라든지 막연한 '발전 가능성' 따위를 보고 섣불리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쓴 맛을 보기 쉽디는 것도 분명히 알아두어야할 대목이다.

중국축구는 클럽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강하다. 광저우나 상하이, 장쑤같이 막대한 투자를 앞세워 성적을 내는 클럽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열악한 클럽들도 많다. 또한 축구 선진국들에 비하여 구단 운영의 시스템이나 인프라는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고 구단-선수간 파벌이나 텃세 문화가 만연하여 지도자들이 팀을 장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1, 2부를 가리지 않고 성적이 조금만 부진해도 감독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하는 등 지도자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하기로도 악명이 높다.

이러한 중국축구의 열악한 환경이나 구단의 속사정을 꼼꼼이 파악하지 못하고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본 한국 지도자들의 선택 역시 아쉬움이 남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중국 축구가 전도유망하던 한국 지도자들의 경력에 흠집만 내는 수렁이 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 축구와 한국 축구의 악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에 진출했던 많은 한국 선수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중국 리그의 외국인 선수 규정 변화로 아시아쿼터제에 해당하던 한국 선수들이 가장 직격탄을 맞았다.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유럽과 남미의 외국인 선수들에 밀려 한국 선수들이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국가대표급 선수들이다. 자연히 한국축구와 대표팀의 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각종 보복성 조치들과 맞물려 축구에서도 한국인 지도자나 선수들을 꺼리는 분위기가 보이지 않는 텃세로 이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최근 중국 무대에서 고전하고 있는 한국 축구인들의 모습은, 돈이나 외형적 조건만을 좇아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경솔하고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반면교사다. 중국은 더 이상 한국축구에게 기회의 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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