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충남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16강전 한국 대 포르투갈 경기. 1-3으로 패한 한국 신태용 감독이 이승우를 위로하고 있다.

지난 30일 충남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16강전 한국 대 포르투갈 경기. 1-3으로 패한 한국 신태용 감독이 이승우를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난 놈' 신태용 감독은 한국축구에서 이제껏 보기드문 스타일의 지도자인 것은 분명하다. 공격축구에 대한 확실한 의지와 색깔, 틀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한 전술적 창의성과 유연성, 솔직하고 거침 없는 입담, 선수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호흡하고 소통하는 형님 리더십까지. 기존의 한국형 축구와는 다른 스타일의 축구로 명장이 될수 있는 자질을 두루 갖췄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은 신태용의 축구가 대한민국이라는 틀안에서 무르익기에는 시기상조인 듯하다. 아무리 좋은 이상과 의도가 있더라도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여기서 자신감과 자만심, 과감함과 무모함, 결단과 독선은 동전의 양면이 된다. 그리고 '감독 신태용'은 벌써 세 번째로 대표팀 경기에서 치명적인 좌절을 맛보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 한국 축구 대표팀은 지난 30일 오후 천안종합운동장서 열린 포르투갈과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16강전서 1-3 패배를 당했다. 홈에서 8강 이상을 넘어 내심 우승까지도 꿈꿨던 신태용호의 도전은 토너먼트 첫 판에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물론 16강 진출만으로도 결코 실망할 성적표는 아니다.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기니와 조별리그 한 조에 속해 '죽음의 조'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2승 1패를 거두며 당당히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신태용 감독이 지난해 12월 경질된 안익수 전 감독의 후임으로 지휘봉을 물려받아 팀을 꾸릴 시간이 단 5개월도 되지 않은 것까지 감안하면 의미있는 성과다. U20 대표팀의 젊은 선수들도 신태용 감독과 함께 한 짧은 시간이지만 활기넘치는 신바람 축구를 펼치며 한국축구의 미래를 밝혔다.

하지만 "졌지만 잘싸웠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흔한 위안 정도로 만족하기에는 못내 아쉬움이 큰 결말인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한국의 목표는 8강 이상이었고 개최국의 이점이나 그간의 준비기간 및 투자까지 감안할 때, 냉정하게 말하면 기대치에는 못 미친 성적인 것도 분명하다. 현실을 적당히 미화하고 무조건적으로 감싸는 것만이 감독과 어린 선수들을 위하는 길은 아니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뼈저리게 반성하는 것만이 실수로부터 진정한 교훈을 얻는 길이기도 하다.

신태용호의 이번 도전은 객관적으로 봐도 '용두사미'였다. 아프리카의 복병 기니에 이어 월드컵 최다우승국 아르헨티나를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16강을 조기에 확정할 때만 해도 기대감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로테이션을 가동한 잉글랜드와의 최종전에서 덜미를 잡히고 조 1위를 놓치면서 묘하게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 선수들에게 휴식도 주고 전술도 실험하는 등 나름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흐름에 유독 민감한 어린 선수들의 기세와 자신감이 한풀 꺾였다는 점에서 패착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이 경기 패배로 16강에서 유럽의 강호이자 하필 상대 전적 무승의 절대열세였던 포르투갈을 만나게 되는 악재로 이어졌다. 포르투갈이 최근 부진하며 이번엔 해볼 만하다는 기대감도 있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16강전은 사실상 허탈할 정도로 일방적인 완패였다. 한국은 포르투갈을 상대로 이번 패배 포함 3무 5패의 일방적인 열세를 이어가게 됐다.

특히 포르투갈전에서 보여준 신태용 감독의 용병술은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투톱을 앞세운 공격적인 4-4-2 전형으로 나서면서 상대 후방을 노렸지만 오히려 초반부터 수비불안을 드러내며 연달아 실점을 허용했다. 이날 측면에 포진한 이승우와 백승호가 공격지향적이고 수비가담이 좋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공격수 4명을 배치한 4-2-4 전술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이 공격에 나설 때 측면 수비 뒷공간은 유기적인 커버플레이가 되지 못해 무주공산이 됐다. 실제로 한국이 전반에만 허용한 두 골 모두 상대 역습 상황에서 공간을 파고드는 선수들을 막지 못하며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신 감독의 전술이 포르투갈의 장점을 가장 잘 살려준 꼴이었다.

과감한 전술 변화가 신의 한 수가 될 때도 있다. 상대팀에 따라 다양한 맞춤형 전술을 구사하는 것도 경기 운영의 유연성을 높일수 있다. 하지만 소화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변화는 오히려 자승자박이 될수 있다. 지난 잉글랜드전에서 돌연 스리백으로 실패를 맛봤던 신태용 감독은 포르투갈전에서는 포백으로 회귀했으나 이번엔 지나치게 공격적인 전술이 발목을 잡았다.

공격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감독의 성향은 이해가 가지만 말 그대로 '지면 끝나는' 토너먼트전은 조별리그와는 다르다. 세계적인 축구 강국들도 토너먼트전에서는 수비에 무게를 두고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 심지어 개개인의 경기 경험이나 전술 소화력이 아직 떨어지는 어린 선수들에게 가뜩이나 압박감이 큰 월드컵에서 경기마다 달라지는 전술까지 척척 소화해내기를 기대했다면 감독의 과욕일 뿐이었다.

문제는 신태용 감독의 최대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무리수와 설레발'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 감독은 23세 이하 리우올림픽 대표팀을 이끌었던 시절에도 중요한 토너먼트 단판승부에서 번번이 한계를 노출했다. 첫 번째는 지역예선을 겸한 아시아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을 상대로 먼저 두 골을 넣고도 과욕으로 무리한 공격 일변도를 고집하다가 어처구니 없는 역전패를 당한 장면이었다.

두 번째는 리우올림픽 본선 8강전 온두라스전에서 일방적인 파상공세를 퍼붓고도 수비 실수 한번에 뼈아픈 0-1 패배를 당했다. U-20 대표팀의 이번 포르투갈전까지 고질적인 수비불안-단판전에서 감독의 무리한 자충수-플랜 B의 부재라는 신태용 축구의 약점이 적나라게 노출된 경기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태용 감독은 장기적으로 한국축구가 시간을 두고 계속 키워야할 지도자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대표팀은 감독 개인의 축구철학이나 과시욕을 실험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오직 한국축구의 명예와 실리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무대다.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감독이라면 더이상 '난 놈'이 아니라 '못난 놈'에 그칠 뿐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신태용 감독이 포르투갈전 패배 이후에도 자신의 전술적 패착에 대한 책임감보다는 결과만 놓고 '운이 없었다'는 식으로 치부했다는 점이다.

물론 신 감독의 전술 탓으로만 16강 탈락의 책임을 모두 돌리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이 포르투갈에서 패배한 또다른 근본적인 원인은 어쨌든 선수 개개인의 명백한 '실력차'였다.

한국도 이승우와 백승호같이 이름이 알려진 선수들이 있었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대부분은 소속팀에서 경기에 많이 뛰지 못하거나 아예 프로에도 소속되지 못한 아마추어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이승우와 백승호 역시도 아직 1군무대에서 데뷔조차 하지 못한 유망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엔트리 전원이 프로 1군이나 유스팀 소속으로  구성된 잉글랜드나 포르투갈같은 유럽팀들에 비하여 경기를 풀어나가는 역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단지 대표팀에서의 훈련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다. 

U20 월드컵은 신태용 감독과 한국축구에게 여러모로 돌아봐야할 만한 숙제를 남겼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번 대회의 성과보다 더 심각하게 여겨야 할 부분은, 지금 수준에서 앞으로 몇 명이나 더 성인 레벨에서도 대표급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이는 곧 한국축구의 미래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의 성과와 한계를 거울 삼아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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