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가 함께 하기에 이들의 꿈은 더욱 간절하고 아름답다.

'피겨여왕' 김연아(27)의 영향으로 이제 피겨스케이팅은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종목이 됐다. 하지만 피겨스케이팅은 김연아가 출전했던 싱글 종목 이외에도 남녀가 짝을 이뤄 경기하는 페어스케이팅과 아이스댄스 종목도 있다. 하지만 남자 선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 피겨계의 현실상 이 종목은 링크장은 물론 코치와 선수마저 찾기 힘들다. 황무지나 다름 없는 이 곳에서 김수연-김형태 남매는 내일의 비상을 꿈꾸며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한국 페어 대표로 국제무대에 나선 김수연-김형태는 주니어와 시니어로서 모두 성공적인 발돋움을 했다. 주니어로서는 첫 대회에 비해 무려 30점 이상 급상승한 점수를 내며 세계 주니어 선수권 톱10에 이름을 올렸고, 시니어로는 150점에 육박하는 점수를 내며 단숨에 에이스로 거듭났다. 지난 4월 28일 저녁 훈련장을 찾았을 때도 이들은 지상훈련에 매진하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피겨 페어스케이팅 선수 김수연(왼쪽)-김형태(오른쪽)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피겨 페어스케이팅 선수 김수연(왼쪽)-김형태(오른쪽)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영진


1년만에 유망주에서 에이스로 거듭난 남매

평창을 불과 1년 앞둔 지난 2016-2017 시즌, 이들의 성장세는 놀라웠다. 시즌 첫 경기였던 주니어 그랑프리로 데뷔전을 치렀을 당시 남매가 기록한 점수는 107.16점(쇼트프로그램 40.20점, 프리스케이팅 66.96점). 그러나 차츰 국제대회에 익숙해져 가면서 이들의 성적 그래프도 연일 상승세를 이어갔다.

처음으로 시니어로 도전한 네펠라 트로피 대회에선 11점이나 오른 118.00점을 기록하더니, 지난 2월 강릉에서 평창 테스트 이벤트로 열린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선 단숨에 140.68점(쇼트프로그램 49.88점, 프리스케이팅 90.80점)을 돌파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일본으로 건너가 치른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선 149.40점(쇼트프로그램 49.28점, 프리스케이팅 100.12점)까지 기록하며 150점대에 근접했다.

이들은 지난달 대만에서 열린 2017 세계 주니어 피겨선수권에서 8위에 올라 유종의 미를 거두며 시즌을 마쳤다. 주니어와 시니어를 넘나들며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시즌 김 남매에겐 상승세와 함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김 남매는 이제는 평창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선수가 됐다.

"페어로서는 국제대회에 처음으로 나갔는데, 세계의 다른 여러 선수들과 경쟁을 해보고 '우리가 이런 팀이다'라는 것을 알릴 수 있어서 값졌습니다" (김형태)
"다투기도 했지만 항상 서로 힘내자는 마음으로 연습했어요. 시합 때는 오빠만 믿었어요.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이라고 할까요? (웃음)" (김수연)

시즌을 회상하면서 오빠인 김형태는 4대륙 선수권을, 동생인 김수연은 동계 아시안게임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김형태는 "세계 정상권 선수들과 함께 경쟁도 해보고 갈라쇼에도 서봤다. 사실 갈라 프로그램이 없어서 당일 새벽에 급하게 만들었다"며 웃었다. 김수연은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목표점수인 150점도 달성하고 재밌게 시합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김수연-김형태의 연기 모습

김수연-김형태의 연기 모습 ⓒ 대한빙상경기연맹


순한 남매, 연습 때만큼은 진지하죠

김수연-김형태는 평상시에는 한 번도 다투지 않을 정도로 우애가 깊은 남매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훈련 때만큼은 냉철하다.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이날에도 이들은 은반 위에서 다음 시즌 주니어 프로그램의 필수 과제인 러츠 점프를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남매가 함께 하기에 누구보다 서로를 보완하는 면에서는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격이 다르기에 훈련을 하면서도 조금씩 양보해 가면서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점프에 경우에는 비슷하지만, 스핀 같은 경우에는 (형태) 오빠가 체구가 크다 보니 스핀 속도가 저보다 느리거든요. 상대적으로 빠르게 수행하는 제가 오빠와 속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죠."

이들을 지도하는 정보경 코치 역시 이들의 호흡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 코치는 "두 남매는 평상시에는 전혀 안 싸운다. 그런데 훈련 때는 부상의 위험 있어 조금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수연이가 사춘기로 예민한 시기인데, 오빠인 형태가 그런 부분을 잘 보듬어 주더라. 형태가 아니었으면 수연이를 잘 보듬어주지 못했을 것"이라며 놀라워했다. 또 "반대로 시합 때는 오히려 수연이가 대담하고 형태가 긴장을 해요. 수연이가 경기 도중에 '정신 차려!'라고 말할 정도로 시합 때는 리드를 해준다"라며 덧붙였다.

이들이 페어선수로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 피겨가 과거에 비해 대중들에게 친숙해졌지만, 페어스케이팅과 아이스댄스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정서적인 차이와 선수, 지도자의 부족으로 결성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두 선수 역시 각각 싱글 선수로서 주니어 레벨에 해당하는 5급(수연), 6급(형태)까지 따낼 정도로 가능성이 있는 선수였다. 이들이 페어로 전향하게 됐던 결정적인 계기는 오빠인 형태가 2010년 벤쿠버 동계 올림픽의 경기를 본 것이었다.

"제가 밴쿠버 동계 올림픽 때 금메달을 땄던 쉔 슈에-자오 홍보(중국) 선수의 경기를 우연히 봤는데 그 때 이 종목을 알게 됐어요. 이후에 (빙상)연맹에서 평창을 대비해 혼성종목 대비팀을 만든다고 했을 때 참가하려 했는데 급수가 안 돼 참가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스쇼를 보러 갔을 때, 싱글 선수로서 경험을 쌓은 후에 종목을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현재 이들이 꼽는 롤 모델은 메건 두하멜-에릭 레드포드(캐나다)조와 알리오나 사브첸코-브루노 마소(독일), 그리고 수이 한-원징(중국)이다. 이들은 모두 평창에서 페어 종목 메달을 놓고 경쟁할 탑 선수들이다. 김수연은 "두하멜조와, 수이 한 조의 기술, 그리고 사브첸코의 표정연기를 닮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연-김형태의 연기 모습

김수연-김형태의 연기 모습 ⓒ 대한빙상경기연맹


기다린 평창, 우리가 무대의 주인공

평창을 코 앞에 앞둔 현재에 오기까지 이들은 참 많은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무엇보다 한국 피겨의 열악한 환경과 재정적인 어려움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정보경 코치는 "선수들이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갔을 땐 1주일에 800만원이 들 정도로 부담이 컸다"며 어려웠던 상황을 얘기했다. 지난달 교육부의 체육특기생의 학교장 추천서 시행령이 시작된 이후, 이들은 전지훈련을 나가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두 선수 역시 "코치 선생님을 섭외하거나 전지훈련을 가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털어놨다.

페어는 특히 남자 선수가 여자선수를 공중으로 던져 수행하는 트위스트 리프트나 쓰로우 점프 등 싱글보다 더 어려운 기술요소가 필수적이다. 이들이 이 기술을 수행하기까진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김수연은 "맨 첨으로 중국으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는 더블 쓰로우 루프하고 살코(점프)만 배웠는데, 그때는 너무 무서웠다. 다리도 못 감고 두발로 착지했다. 이후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쓰로우 트리플 점프를 연습 하다가, 어느 날 한국에서 계속 연습했는데 성공했다"며 멋쩍어했다. 정 코치는 "이 점프를 익히기 위해 하네스(피겨에서 점프 연습을 위해 사용하는 기구)는 기본이고 수연이한테 헬멧을 씌워가며 정말 여러 방법(?)으로 연습해 성공한 것"이라며 웃었다.

이제 9개월 앞둔 평창. 이들은 이번 비시즌 동안 기술의 난이도를 모두 트리플로 올리는 것을 과제로 하고 있다. 정 코치는 "현재 트위스트 리프트를 트리플로 올리고, 리프트를 변형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고 있다. 곧 페어 선수로 활약하셨던 폴란드 출신 페어 선생님이 팀에 오시는데 이들의 기술을 함께 지도해 주실 예정이다"라고 귀띔했다. 또한 차기시즌 역시 주니어와 시니어로 최대한 많은 대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남매는 일주일에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매일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주로 저녁과 밤 시간 대를 이용해 훈련을 하고 있는 이들은 오후까지는 학교 수업, 저녁때는 훈련을 병행하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올림픽까진 앞으로 국내의 두 번의 선발전을 통과해야 하지만, 포기할 수 없던 올림픽 꿈은 곧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들에게 평창과 피겨의 존재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다.

"피겨는 제가 좋아하고 재밌어 하는 거죠. 전에 하던 인라인스케이팅은 추월하고 상대와 경쟁해야 하지만, 피겨는 제가 잘하면 결과는 따라와요. 평창에선 국민들에게 피겨에 페어라는 종목도 있다는 것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 (김형태)
"저한테는 평창이라는 목표가 있어요. 평창에 나간다면 무엇보다 저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을 경기를 하고 싶어요."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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