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스포일러)를 밟았다. 마치 <식스센스>처럼 <싱글라이더>는 "스포가 다했다"며 작품의 반전이 온라인상에 유포됐다. 그래서일까? 흥행도 고전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추산 2월 27일 기준 28만7987명)

하지만 이 수치만 놓고 과연 이 영화를 망했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 오히려 '이런(?)' 영화에 여전히 높은 장벽을 가진 우리의 관람 문화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싱글 라이더가 있어서 다행이야

 운이 나빴다. 그래서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운이 나빴다. 그래서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싱글라이더>의 감독은 이주영이다. 이 감독은 2012년 미쟝센 단편 영화제를 통해 화려하게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베스트 무빙 셀프 포트레이트상) <싱글 라이더>는 이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그런데 이 첫 장편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8개월간 이창동 감독과 작업했다고 한다. 이창동 감독의 최신작은 2010년 <시>이다. <시>는 영진위 추산 최종 관객 수가 21만8898명이었다.

그러고 보면 아직 관을 내리지 않은 <싱글라이더>의 이주영 감독이 스승인 이창동 감독을 관객 수로 넘어선 셈이다. 우리는 이창동 감독의 <시>를 두고, 그 누구도 쉽게 '망한' 영화라 말하지 않는다. 분명 관객 수로만 보면 처참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 중에는 2010년 그해 한국 영화계가 이 영화를 가질 수 있어 영광이라 생각하는 이가 많다. 마찬가지다. <싱글라이더>가 <시>에 버금갈 '영광'까지는 아니지만, 2017년 그래도 한국 영화계가 이런 영화를 가질 수 있어 다행이라 말하고 싶다.

최근 선전하고 있는 <재심>은 10년간 억울하게 감옥 생활을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이 억울한 청년의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 '적나라한 진실'은 그래도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 '재심' 법정을 통해 '보상'받는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이 그렇다. 2016년 <곡성>이 예외적일 정도로 대부분의 우리 영화들은 통쾌하고 속 시원하게 관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의 흥행은 동시에 '영화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안긴다. 그 질문에 대해 기존 한국 영화들이 해왔던 답의 정반대 편에 <싱글라이더>가 있다. TV 드라마도 골치 아픈 것은 딱 질색인 시대, 그 누가 돈을 내고 극장까지 와서 이 '골치 아픈 이야기'를 보려 하겠는가. 원론적 물음을 통해, <싱글라이더>는 우리 문화의 '낙관'이라는 지배적인 조류 사이에서 '되돌아보고', '내려옴'을 이야기한다. 무식할 정도로 용감하다.

대한민국의 그림자를 말하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의 그림자를 대변한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의 그림자를 대변한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렇다. 영화는 삶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화합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토록 봉합하고 싶은 '가족'의 뒷면을, 여전히 부추기고 싶은 '청춘의 꿈' 그 이면을 서늘하게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에 길게 늘어뜨린 그림자이다.

<싱글라이더>에는 두 명의 방황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증권회사 지점장이었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강재훈(이병헌 분)과 워킹 홀리데이를 온 지나(안소희 분)가 그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의 캐릭터는 상징적이다. 금권 사회 대한민국의 첨병이었던 증권회사, 그 선봉에 섰던 지점장의 중년. 그리고 청춘의 꿈을 찾아 호주로 온 젊은이. 우리 사회 대표적 두 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 전형적이면서도 상징적 존재인 두 사람을 처절하게 무너뜨린다. 부실 채권을 마구잡이로 팔아넘긴 증권회사는 그 손실을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전가한다. 그리고 그 '전가'하는 데 지점장인 재훈이 앞장섰다. 따지고 드는 재훈에게 던진 사장의 말.

"사실은 자네도 그런 줄 알면서 한 거잖아. 그저 믿고 싶지 않았을 뿐."

이 한 마디는 '돈'을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을 대변하는 말이 된다. 부도덕한 줄 내심 알면서도, 돈이 된다기에 눈 질끈 감고 덤벼들었던 사람들, 그중에서 재훈은 '운 나쁘게도' 대열에서 탈락하고 만다. 그리고 그 탈락은 그저 직장을 잃는 것만이 아니라, 그가 가진 재산, 그의 인맥 등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날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운 나쁜 사람이 있다. 지나,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88만 원 세대'에게 취업 문은 갈수록 좁아진다. 이제 눈을 밖으로 돌리라며 세상은 독려하고, 그 독려에 걸맞게 지나는 호주로 일하러 왔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새벽부터 눈도 못 뜨고 일을 하며 번 돈은 그녀가 호주에 온 동안 변화한 환율로 인해 '헐값'이 될지도 모른다. 그 한 푼이 아까워 무모한 시도를 했던 그녀, 그 청춘의 꿈은 결국 흙무더기가 되고 만다.

대한민국의 그림자

 일반적인 대한민국의 영화들과 궤를 달리하는 <싱글라이더>. 그래서 더 소중하다.

일반적인 대한민국의 영화들과 궤를 달리하는 <싱글라이더>. 그래서 더 소중하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 두 사람은 결국 '성장'과 '성공'을 담론으로 하는 대한민국이 낳은 그림자다.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를 다하고자 했던 재훈에게 돌아온 것은 '인간적 모멸'이 담긴 따귀 세례였다. 그는 결국 '인간'으로서 자존의 한계를 견뎌내지 못한다. 아이와 함께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던 아내가 보내온 메시지는, 그에게 남겨진 어쩌면 유일한 출구조차 봉쇄한다.

그렇게 삶에서 봉쇄된 그는 미련을 접지 못해 아내와 아이가 있는 호주로 뒤늦게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만난 가족. 지난 2년 동안 아내와 아이를 염두에조차 두지 않았던 재훈, 그의 무관심 속에 호주로 떠났던 아내. 아내는 그곳에서 자신을 이해해 주는 이를 만났다. 비로소 내려놓고 나서야 가족이 떠올려졌던 재훈처럼, 아내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으면서도 재훈을 염려해 이민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런 아내를 여전히 재훈은 오해한다.

가족의 주변을 떠도는 재훈, 그런 재훈의 오해와 깨달음 사이에서 보이는 가족의 모습은 '가족애'라는 말로 봉합되기에는 처연하다. 그래도 '가족'이다. 이미 그들은 배우자로서 서로에 대한 '감정적 연대'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가족이란 이름의 집착과 애착을 가진 불가사의한 존재이다. 재훈과 함께 떠나는 대신 자신을 찾으러 올 엄마를 기다리는 지나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내려올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라는 고은의 짧은 시로 시작된다. 그리고 재훈이 호주를 홀로 헤매며 찾은 것은 '가족주의'라는 주제로 메꾸기엔 이미 서로 멀리 가버린 대한민국 가족의 현실이다. 뒤늦게야 아들이 보내온 동영상 속 그 바닷가 절벽 위에 선 재훈은 가족을 빌미로 내세우면서 각자도생에 바쁜 대한민국의 참회록이다. 그리고 느린 선율에 얹혀, 배우 이병헌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섬세하게 천착해 가는 이 참회록에 마음을 여는 대한민국 사람은 얼마나 될까.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과 <오아시스>가 지금 개봉했다면 흥행이 더 됐을까? 대한민국은 어디로 흘러온 걸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싱글 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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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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