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가 갖춰야 할 5가지 재능(정확성,장타력,주력,수비범위,어깨) 중에서 가장 얻기 힘든 요소는 바로 장타력이다. 나머지 요소들은 반복 훈련과 경기 경험 등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보완이 가능하지만 타고난 힘은 쉽게 강해지기 힘들다. 실제로 두산 베어스의 오재원은 장타력을 키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몸집을 불렸지만 그의 커리어 최고 장타율은 .451(2014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장타에 재능을 보이는 선수는 구단에서도 각별히 관리하기 마련인데 실제로 이 재능을 살리는 선수는 그리 흔치 않다. 지금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도 프로 데뷔 후 6년을 헤매다가 2011년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한 다음에야 비로소 잠재력이 폭발했다. 류현진(LA다저스)의 고교 동창 최승준(SK 와이번스) 역시 프로 11년 차가 된 2016년에야 비로소 장타 포텐이 터진 경우다(심지어 최승준은 아직 완성형이라 할 수 없다).

이렇게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좀처럼 터트리기 힘든 장타 잠재력을 타고난 선수가 있다. 이 선수는 프로 입단 3년 만에 1군에서 9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엄청난 장타 잠재력을 과시했지만 프로 15년 차가 된 지금도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폭발시키지 못하고 어중간한 선수로 남아있다. 한 방 능력이라면 팀 내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 이성열이 그 주인공이다.

프로 입단 후 시즌 중 트레이드만 3번 겪은 저니맨

 이성열은 넥센 시절이던 2013 시즌 초반 홈런왕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성열은 넥센 시절이던 2013 시즌 초반 홈런왕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 넥센 히어로즈


순천 효천고 시절 장타력과 빠른 발을 겸비한 호타준족형 포수(?)로 이름을 날리던 이성열은 200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전체3순위)로 LG트윈스에 지명됐다. 같은 해 LG는 이성열 외에도 이대형(kt 위즈), 우규민(삼성 라이온즈) 등 훗날 팀의 주축으로 성장하는 선수들을 대거 지명했다. LG는 이미 조인성(한화)이라는 확실한 주전 포수가 있음에도 이성열에게 2억7000만원의 많은 계약금을 안겼다.

뛰어난 장타력을 가진 여느 유망주들처럼 이성열 역시 정확성이 떨어졌고 떨어지는 변화구에도 치명적인 약점을 보였다. 게다가 포수로서의 수비 능력도 프로에서 통할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이성열은 프로 입단 후 2년 동안 1군에서 단 1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2005년부터 외야수로 변신해 타격에 전념하게 된 이성열은 그 해 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홈런타자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성열은 더 이상 발전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1군과 2군을 오가는 그저 그런 유망주에 머무르고 말았다. 결국 불펜 보강을 원한 LG 김재박 감독과 포수 충원이 필요했던 두산 김경문 감독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성열은 2008년 6월 두산으로 이적했다. 당시만 해도 트레이드의 핵심은 투수 이재영과 포수 최승환(이상 은퇴)이었고 이성열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성열은 이적 3년째이던 2010년 두산의 주전 우익수로 나서며 타율 .263 24홈런86타점으로 데뷔 후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성열은 이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2011년 7홈런으로 성적이 하락했고 2012년7월 오재일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성열은 2013 시즌 6월 초까지 홈런 선두 다툼을 벌일 정도로 좋은 페이스를 보였지만 팔꿈치 부상 후 주춤하며 18홈런에 머물렀다.

2014년에도 14홈런을 기록하며 FA 자격을 얻은 이성열은 원소속팀 넥센과 2년 5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외야와 지명타자 자리가 꽉 찬 넥센에서 이성열의 자리는 없었고 이성열은 4월8일 또 한 번의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로 이적했다. 프로 입단 후 3번째 겪는 트레이드. LG에서 데뷔해 두산, 넥센 등 서울팀에서만 활약하던 이성열은 생애 처음으로 서울 외의 팀으로 이적하게 됐다.

한화 이적 후 생애 최고 OPS 기록

 이성열의 파워는 한화뿐 아니라 KBO리그 전체에서도 손에 꼽힌다.

이성열의 파워는 한화뿐 아니라 KBO리그 전체에서도 손에 꼽힌다. ⓒ 한화 이글스


이성열은 트레이드 발표가 난 다음날인 4월 9일 LG전에서 2안타3타점1득점을 기록하며 한화팬들에게 화끈한 이적 인사를 했다. 이성열은 2015년 코너 외야수와 지명타자, 대타요원으로 활약하며 101경기에서 타율 .250 9홈런36타점을 기록했다. 주전 한 자리를 차지했다고 낙관할 수는 없지만 2015년을 강타한 '마리한화' 열풍에 한 부분을 담당한 것은 분명했다.

작년에도 이성열의 활약은 썩 나쁘지 않았다. 비록 양성우가 주전으로 도약하면서 출전 기회는 줄었지만 86경기에서 타율 .288 10홈런29타점 OPS(출루율+장타율) .855를 기록했다. OPS만 따지면 24홈런을 쳤던 2010년(.847)보다 더 알찬 시즌을 보낸 셈이다. 물론 표본이 부족하긴 하지만 팀의 간판타자 중 한 명인 정근우(.845)를 능가했을 정도. 시즌 57개의 안타 중 35%를 장타로 뽑아낸 이성열의 타고난 파워 덕분이다.

6월까지 타율 .243에 그쳤던 이성열은 7월부터 4개월 연속 월간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하며 타율을 .288까지 끌어올렸다. 타격감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던 7~8월에 좀 더 많은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 특히 이성열은 9월 이후에만 타율 .348(69타수24안타) 6홈런을 몰아쳤다. 이성열 입장에서는 타격 컨디션이 최고조에 오르려던 시점에 시즌이 끝나버린 셈이다(물론 시즌 일정에 맞춰 몸 상태를 조절하는 것도 일류 선수의 조건이다).

윌린 로사리오와 김태균이 있는 1루수와 지명타자, 그리고 이용규가 버틴 중견수는 애초에 이성열이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결국 좌익수나 우익수를 노려야 하는데 작년 시즌의 경쟁자였던 양성우, 장민석에 최진행과 김경언도 부상을 털고 복귀 준비에 한창이다. 게다가 우타 거포 유망주 신성현도 외야로 전향했다. 이성열이 작년 이상의 출전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파워'라는 영역에서는 자신이 가장 앞선다는 사실을 코칭스태프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다.

야구 선수로서 이성열의 목표는 소박하게(?) 4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팀 선배 조인성과 박정진을 비롯해 이호준(NC다이노스), 이승엽(삼성) 등 KBO리그에도 40대 선수가 적지 않다. 하지만 40대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꾸준한 활약이 우선돼야 한다. 선수 생활 내내 '기복'이란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이성열에게는 어쩌면 더 힘든 목표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성열이 꾸준한 선수로 도약한다면 2017년 한화 타선의 빈틈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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