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환자가 된 다니엘은 지금은 하늘나라로 떠난 아내의 병을 돌볼 때도 놓지 않고 평생 해왔던 목수 일을  더는 할 수 없게 된다.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돈' 때문에 정부의 복지정책에 눈을 돌리게 되는데, 그마저도 심장병을 안고 목수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 이상으로 넘을 수 없는 문턱이다.

그가 당장 의지할 수 있는 건 수화기 너머 들리는 정부기관의 ARS 음성이지만, 단조롭고 짤막한 음성으로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연결되지 않는다. 그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기계 음성은 야속하기만 하다. 무려 두 시간씩이나 기다리게 하여 연결된 ARS 속 담당자는 당장 다니엘의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관료적인 행태로 그를 실망과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간절한 마음으로 ARS 음성에 바짝 긴장이 곤두선 채로 기다렸던 긴 시간을 "시간여행이 따로 없군"이라는 재치 섞인 말로 분노를 억누르고 넘어가려 했던 순수하고 선량한 시민 다니엘. 그의 심장은 정부 관료의 책상 앞에 놓인 도마 위의 생선이 된 듯 난도질당했다.

자네 잘못이 아니야

 질병수당 문제로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다니엘 블레이크.

질병수당 문제로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다니엘 블레이크. ⓒ 영화사 진진


두 아이를 힘겹게 홀로 키우는 싱글맘 케이티를 복지기관에서 우연히 만난 다니엘. 서류와 면담을 통해 심사를 받아 복지수당을 받는 시스템 덕분에 만나게 된 이웃이다. 이사를 왔기 때문에 지역의 지리를 잘 몰라 헤매다가 면담시간에 조금 늦었다는 케이티의 속사정에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소란을 피운다며 쫓아내려는 복지공무원의 꼴은 정말 가관이다.

쫓겨난 케이티의 형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곤궁했다. 여러모로 도움을 준 다니엘과 자신의 아이들을 먹이기 위한 저녁 식사에 그녀의 것은 없었다. 자신은 과일이면 된다며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바라보던 그녀의 메마른 눈빛은 허공에서 힘없이 흩어졌다. 그녀의 일자리 역시 복지급여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사정이었다. 당장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집집이 돌며 붙인 작은 쪽지에는 청소 일을 할 수 있다는 내용과 그녀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어느 밤에는 그런 일도 있었다. 잠들지 못하고 엄마의 침대로 들어온 딸의 고백을 통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다는 걸, 신발 밑창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그 이유라는 걸 알았다. 가슴으로 딸을 안고 속으로 눈물을 삼켰지만 당장 딸 신발을 사줄 돈도 없는 현실.

며칠 동안 굶고 지낸 몸을 이끌고 다니엘의 소개로 찾아간 차상위계층을 위한 식료품지원소에서 물건을 담다 갑자기 홀린 듯이 통조림을 따서 입속에 욱여넣는 케이티. 매정한 사회가 한 아이 엄마를 비정상적인 일상으로 휘몰아 넣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식료품지원소에서도 물량이 딸려 생리대를 지원해 주지 못한다. 생리대가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돈이 없어 훔치다 들키는 일도 생긴다.

희망을 잃고 주저앉아 우는 그녀를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다독이는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마디는 가슴을 적신다.

"자네 잘못이 아니야."

그렇다. 지독히도 비참한 현실엔 당사자의 잘못이 없다. 개인의 무능력과 잘못으로 치부하여 침묵시키려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인 것이다.

우리에게도 잠시 기대어 쉴 바람이 필요하지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면담을 거절당하고 항의하다 복지기관에서 쫓겨나는 케이티와 그녀의 아이들.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면담을 거절당하고 항의하다 복지기관에서 쫓겨나는 케이티와 그녀의 아이들. ⓒ 영화사 진진


정부의 복지기관이 내팽개친 케이티 가족의 행복에 다시 불을 지핀 건 다름 아닌 이웃 주민 다니엘 블레이크다.

어렵사리 집을 구해 이사를 왔지만, 도깨비 소굴처럼 엉망으로 고쳐야 할 것이 난무한 케이티의 집수리를 돕고,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긴 사실을 알고는 자신에게도 부족한 돈을 몰래 두고 가기도 한다. 말은 없으나 행동은 산만하여 어딘가에 집중하지 못하는 케이티 아들의 사정에 관심을 두고 말을 거는 이도 다니엘이다. 궁핍한 생활에 지쳐 결국 몸 파는 일에 유혹당한 케이티를 끝끝내 찾아가 눈물로 호소하는 다니엘 같은 이웃이 있기에 그녀 가족이 차가운 도시에서 인간답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이웃에 대한 따뜻함을 잃지 않는 다니엘에게도 기댈 곳은 필요했다. 심장병 환자임에도 정부로부터 질병 수당을 받을 수 없는 기막힌 처지에 놓인 그에게 담당 공무원은 구직수당을 제안한다. 평생을 아날로그 안에서 살았건만, 사용법도 모르는 인터넷을 통해 수당 신청을 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직수당은 직장을 잃은 실업자가 다시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로 제공하는 수당이므로 돈을 받기 위해서는 구직활동을 했다는 증명이 필요했다. 다시 일할 수도 없는 사람이 구직수당을 받기 위해 거짓으로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다니엘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평생 열심히 일해 번, 적은 돈으로도 떳떳하게 살아온 다니엘에게는 거짓 구직수당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더는 일을 하지 못해 생활이 어려워진 국민에게 질병 수당이 아닌 구직수당을 제안한 정부 관료의 처사는, 성실하게 살아왔으나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복지정책에 기대고픈 한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일까.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빈곤층 누구의 잘못도 아닌 채 불평등한 삶은 변한 것 없이 지속한다. 영화에서 다룬 영국 빈곤층의 현실적 소외와 고난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인간의 권리에 위배된다. 그늘이 드리워진 이들 삶의 희망을 쥐락펴락하는 '담당자'는 복잡하고 정교하게 짜여 있는 시스템의 명령 하에 서류를 뒤적이고 면담을 한다. 시스템에 오류가 나듯이 그들이 정한 매뉴얼대로 행하지 않고 어려운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더 듣고 도우려는 공무원은 상사의 눈총을 받고 질책을 당한다. 마치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듯 말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생활을 이어나가는 어려운 국민 뒤에서 자본의 힘을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며 정작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과연 알 필요가 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다니엘을 향해 전하는 이웃 흑인 청년의 깊은 마음을 전화 속 ARS의 음성이나 지역의 복지공무원에게 들을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는, 아직은 인간답고 선량한 사람들이 꿈꾸는 희망이다. 그 대표적인 영웅 다니엘이 연필로 쓴 마지막 편지는 그와 비슷하게 행복하지 못하고 소외당했던 이들을 위한 가슴 울리는 다짐이자 위로이다.

 다니엘, 그리고 케이티와 그녀의 자녀들이 꿈꾸는 행복은 관심과 그에 걸맞는 인간적 대우이다.

다니엘, 그리고 케이티와 그녀의 자녀들이 꿈꾸는 행복은 관심과 그에 걸맞는 인간적 대우이다. ⓒ 영화사 진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순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rnjstnswl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다니엘블레이크 켄로치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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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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