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 언론인 "역사에서 패배한 것은 아니다" 3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 열린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시사회에서 김진혁 감독(왼쪽부터)과 해직 언론인 최승호 전 MBC PD(뉴스타파 앵커), 노종면(일파만파), 조승호(일파만파), 현덕수(뉴스타파 기자) 전 YTN 기자가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해직 언론인 "역사에서 패배한 것은 아니다" 3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 열린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시사회에서 김진혁 감독(왼쪽부터)과 해직 언론인 최승호 전 MBC PD(뉴스타파 앵커), 노종면(일파만파), 조승호(일파만파), 현덕수(뉴스타파 기자) 전 YTN 기자가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처음은 2014년 대법원의 YTN 해직 언론인에 대한 판결 장면이다. 6명의 해직 언론인 중 3명은 해직 무효, 다른 3명은 유효. 1심의 전원 무효 판결이 고등법원에서 뒤집혔고, 그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7년-그들이 없는 언론>(아래 <그들이 없는 언론>)의 시작은 참담한 동료 기자들의 표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벌써 7년이다. 정권이 내려보낸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며 공정 보도 투쟁을 벌인 대가가 밥그릇의 빼앗김이었다. 보통의 가정이었으면 풍비박산 났을지도 모를 기간, 이들은 대안 언론의 주축으로 혹은 취미를 본업 삼아 살아갔다. 그런데 이들이 내놓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오는 12일 개봉에 앞서 3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언론 시사에 참여한 해직 기자 4인은 "복직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되고 본질적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부끄러운 별명 

'그들이 없는 언론' 해직 언론인 최승호 전 MBC PD(뉴스타파 앵커), 노종면(일파만파), 조승호(일파만파), 현덕수(뉴스타파 기자) 전 YTN 기자.(왼쪽 위 시계방향)

▲ '그들이 없는 언론' 해직 언론인 최승호 전 MBC PD(뉴스타파 앵커), 노종면(일파만파), 조승호(일파만파), 현덕수(뉴스타파 기자) 전 YTN 기자.(왼쪽 위 시계방향) ⓒ 유성호


그 본질적 문제란 바로 앞서 언급한 공정한 언론 보도를 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이다. 정권에 따라 언론사의 사장 역시 바뀌고, 암묵적으로 때론 공개적으로 보도지침이 내려가는 작금의 사태는 더는 없어야 한다는 게 이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다. <그들이 없는 언론>은 YTN 해직 기자 6명을 비롯해 MBC 해직 언론인들을 쫓으며 지난 7년간 우리나라 언론환경이 어떻게 개악돼 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린 그사이 기자들에게 붙어버린 부끄러운 별명 하나를 모두 알고 있다. 기자와 쓰레기라는 단어의 합성어인 '기레기'는 정권의 입맛에 맞게 알아서 기거나 애써 진실 보도를 외면해 버리는 기자들에 대한 조롱이다. 나아가 이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나서서 권력의 부역자가 되는 언론인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기레기를 넘어 이러한 이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들이 없는 언론>은 그런 의미에서 그 흔한 '기레기'들이 판치는 이 세상이 어떻게 왔는지를 가감 없이 보이는 참고서 내지, 그 압력을 온몸으로 견뎠던 좋은 기자들의 휴먼 드라마기도 하다. 영화는 자막과 투쟁 영상 그리고 2012년 총파업 당시 각 언론노조 지부에서 받은 홍보 영상 등을 적절히 조합해 꽤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연출을 맡은 김진혁 감독의 노고가 돋보인다. EBS <지식채널e>로 알려진 김진혁 감독은 언론 시사 이후 간담회에서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어떤 분은 더 들어갔고, 어떤 분은 덜 들어갔고, 아예 편집된 분도 있다"며 "그런 이야기의 균형감을 맞추는 게 가장 힘들었다. 선택 기준은 결국 일반 관객 처지에서 봤을 때 큰 틀에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지였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촛불 국면에서 열심히 하는 기자들이 많은데 국민에게 호소하는 이런 기록물이 있고, 외부에서 잘하는 이들 역시 있으니 기자들 모두를 '기레기'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우리의 언론 환경

해직 언론인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3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 열린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시사회에서 김진혁 감독(왼쪽부터)과 해직 언론인 최승호 전 MBC PD(뉴스타파 앵커), 노종면(일파만파), 조승호(일파만파), 현덕수(뉴스타파 기자) 전 YTN 기자가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해직 언론인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 유성호




영화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부분은 역시 파업에 참여하는 기자들의 심경이 생생하게 묘사되는 대목이다. 특히 최일구 전 MBC 앵커가 단상에 올라 후배들을 향해 "지금 이 시간이면 다들 리포팅을 점검하고 데스킹을 할 시간인데 너희들 왜 지금 다 여기에 있냐"며 울먹이는 장면 등이 잔상이 길게 남는다. 어느 순간 소리소문없이 자리를 떠난 이런 언론인들의 공백이 새삼 실감 나는 지점이다.

7년이 지난 요즘 각 사에서 떨어져 나간 해직 언론인 20여 명이 현장에 있었다면 그 중 상당수는 기사를 데스킹 하고 취재 지시를 내려도 될 위치에 있음 직하다.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엔 후배들의 패기를 억누르고, 오보 가능성을 보고해도 묵살하는 '기계적 언론인'들이 앉아 있다. 영화 속에서 한탄하며 이를 언급하는 한 기자의 표정 역시 쉽게 잊히지 않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지상파·공영방송이 제대로 하지 않아 이 사달이 났고, 오히려 JTBC 같은 일부 종합편성 채널이나 대안 언론 등이 부각될 수 있는 환경이 된 건 좋은 거 아니냐고. 그만큼 공정보도 하지 않으면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없는 구도가 된 것일 수도 있으니 긍정적이라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선 최승호 피디의 말을 참고하자. 대안 언론 <뉴스타파>의 앵커이자 피디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공영방송을 완전히 장악해 현저히 약화하는 전략이었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며 "전체적인 언론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대안 언론이 신뢰를 얻고는 있지만, 공영방송은 누가 뭐래도 국민의 재산이기에 어떻게 해서든 잘 살리는 게 국민의 이익"이라 말했다. "공영방송이 기본만 잘해도 여타 대안 언론들이 양질의 기사를 낼 것이고, 그렇다면 언론 환경은 더 나아지는 것"이라는 게 최승호 피디의 생각이다.

현실에서의 싸움처럼 <그들이 없는 언론> 자체가 처한 상황도 녹록지 않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90%인 환경에서 좀처럼 상영관을 얻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보고 나서 통쾌할 작품은 아니지만, 우리가 지금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 가늠하기엔 현재 나온 영화 중 이것보다 더 좋은 작품은 없을 것이다. 또 우리가 잘 몰랐던 기자들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복직이 목표였으면 애초에 해고당하지 않았으면 됐다. 해고 안 당하려 했다면 낙하산 사장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겠지. 빠른 복직은 중요치 않다. 지난 7년보단 기자로서 살아온 22년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했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명예롭게 돌아가길 원한다."

영화 속 한 YTN 해직 기자의 말을 남긴다. 기자란 본래 이런 존재였고, 우린 이미 이런 기자들을 많이 갖고 있었다. 잊지 말자. 난장판이 된 현실 세계에서 무혈입성한 채 영원히 권력을 쥐고 판을 흔들려고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한 줄 평 : 지금 당연히 틀어져야 할 1순위의 작품
평 점 : ★★★★(4/5)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관련 정보
연출 : 김진혁
출연 : 최승호,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이근행, 이용마 등
상영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10분
제작 : 뉴스타파, 인디플러그
배급 : 인디플러그
개봉일 : 2017년 1월 12일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최승호 YTN MBC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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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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