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잔잔한 감동을 준 인간승리의 주인공 황덕균 투수(넥센 히어로즈)를 기억하는 야구팬들이 많다. 지난 2002년 선린 인터넷고를 졸업하고 두산 베어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황덕균은 3번의 방출과 5번의 도전(독립리그 포함) 끝에 프로 데뷔 15년 만에 감격적인 1군 무대 첫 승을 신고했다. 두 아이를 둔 34세 가장이 만든 작지만 큰 감동스토리였다.

사실 황덕균은 뛰어난 구위를 가진 투수와는 거리가 멀다. 속구의 평균 구속은 시속 140km를 넘지 않는다. 힘들게 프로 데뷔 첫 승을 따냈지만 황덕균은 조상우, 한현희 등이 복귀하는 내년 시즌 넥센 마운드에서 1군 풀타임 출전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았던 황덕균의 절실함과 근성이 내년 시즌 야구팬들이 프로 16년 차가 되는 황덕균에게 기대하는 부분이다.

황덕균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지만 타자 중에서도 오랜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올해 드디어 1군에서 빛을 본 선수가 있다. 프로 데뷔 9년 만에 1군 무대에서 첫 안타를 친 이 선수는 올 시즌을 3할 타율(.305)로 마감하며 막내 구단 kt위즈 외야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2군에서 남 몰래 땀 흘리는 모든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전민수가 그 주인공이다.

프로 입단 후 8년 동안 1군에서 1안타도 없었던 무명 선수

 전민수는 작년까지 야구팬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철저한 무명선수였다.

전민수는 작년까지 야구팬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철저한 무명선수였다. ⓒ kt 위즈


지금은 무명 선수의 성공 스토리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전민수(개명 전 전동수)는 덕수고 시절부터 뛰어난 타격실력을 인정받던 유망주였다. 이미 2학년이던 2006년 그 해 고교야구 최고 타자에게 수여되는 이영민 타격상의 주인공이 됐을 정도. 전민수는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4라운드(전체7순위)로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됐다(당시 덕수고 졸업반 가운데 프로 지명을 받은 선수는 전민수가 유일했다).

현대에 지명됐던 전민수는 2007년을 마지막으로 현대가 해체되면서 유니콘스를 인수한 우리 히어로즈로 입단했다. 하지만 입단 후 2년 동안 1군에서 단 15경기(20타수 무안타)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2009 시즌이 끝난 후 경찰청에 입대했다. 전민수는 경찰청에서의 첫 시즌 97경기에 출전해 타율 .313 2홈런36타점16도루를 기록하며 착실하게 실전 경험치를 쌓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2011년 어깨 부상에 시달린 전민수는 퓨처스리그에서 조차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전역 후에도 팔꿈치와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재활군에만 주로 머물렀다. 전민수는 2012시즌 종료 후 개명까지 하며 의지를 불태웠지만 부상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프로 입단 후 6년 동안 1군에서 단 1개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한 전민수는 2013 시즌이 끝난 후 히어로즈에서 방출되고 말았다.

부상으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선수가 하나, 둘이 아니지만 한 때 고교무대를 주름잡았던 전민수가 이대로 야구를 포기하기엔 미련이 많이 남았다. 전민수는 개인 훈련을 하며 착실히 몸을 만들었고 신생팀 kt와 2014년 8월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비록 육성선수 신분이었지만 전민수에게는 야구를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전민수는 kt가 1군에 입성한 첫 시즌 한 번도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재능에 두 번 다시 물러설 수 없다는 독기까지 품은 전민수에게 퓨처스리그는 너무 좁은 무대였다. 전민수는 2015년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395 8홈런46타점41득점 OPS(출류율+장타율) 1.098을 기록하며 퓨처스 무대에서는 더 이상 보여줄 게 없음을 증명했다.

올해와 비슷한 경쟁률로 치열한 주전 다툼 예고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출신인 kt 전민수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출신인 kt 전민수. ⓒ kt 위즈


전민수는 올해도 kt의 1군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하지만 전민수가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kt는 오정복의 음주 징계와 유한준, 김사연 등 주력 외야수들의 줄부상으로 외야진에 구멍이 뚫렸고 전민수는 히어로즈 시절이던 2009년 이후 약 7년 만에 1군 무대를 밟게 됐다.

그리고 전민수는 4월22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7번 좌익수로 선발 출전해 삼성 선발 정인욱을 상대로 좌중간을 가르는 2타점짜리 역전 2루타를 터트렸다. 프로 데뷔 9년 만에 터진 1군에서의 첫 안타였다. 전민수는 1-2로 뒤진 상태에서 경기를 뒤집는 역전 적시타를 터트렸고 이 안타는 이날 경기의 결승타가 됐다.

데뷔 첫 안타 이후 자신감을 찾은 전민수는 5월31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터트렸다. 우익수와 좌익수를 넘나들며 kt의 주전 외야수로 자리를 굳히던 전민수는 8월9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신재영의 투구에 복숭아뼈를 맞고 시즌 아웃됐다. 비록 규정타석에는 한참 모자랐지만 타율 .305 3홈런 29타점 5도루를 기록했다. 작년까지 1군에서 1안타도 없었던 선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좋은 성적이었다.

전민수가 작년 시즌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민수가 내년 시즌 kt 외야의 주전 한 자리를 보장 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Kt는 부상만 없다면 부동의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유한준과 이대형이 있고 FA계약을 체결할 경우 이진영 역시 버거운 경쟁자가 될 것이다. 그 밖에 김사연, 오정복, 하준호, 배병옥 등 전민수의 경쟁자가 될 외야수는 팀 내에 차고 넘친다.

전민수는 2016 시즌을 통해 자신이 1군 무대에 어울리는 선수라는 사실을 충분히 증명했다. 이제 다가오는 2017 시즌에는 자신이 풀타임 주전으로도 충분히 어울리는 선수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1군의 소중함과 야구에 대한 간절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민수이기에 부상과 같은 변수만 없다면 내년 시즌 전민수가 1군 무대에서 소리 소문 없이 제외되는 일은 극히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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