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방영된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의 한 장면.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의 인스타그램을 인용했다.

19일 방영된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의 한 장면.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의 인스타그램을 인용했다. ⓒ JTBC


"그동안 정치적 발언을 삼가왔던 어느 가수 역시 아내와 함께 촛불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보보수, 좌우, 정치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선악의 문제다.' 그리고 그는 모두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라고 노래합니다. 이 노래의 부제는 '상식의 크리스마스'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고, 촛불과 태극기의 문제가 아니며, 건강한 시민들의 상식의 문제가 아닌가. 단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상식 말입니다. 대한민국은 촛불과 태극기로 분열된 것이 아니라 촛불과 태극기가 그저 상식으로 만나면 되는 것이 아닌가."

19일,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이례적으로 한 가수의 발언을 소개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라는 노래를 최근 발표한 어느 가수, 아내와 함께 촛불을 들었고, '진보보수, 좌우, 정치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선악의 문제다'라는 글을 SNS에 적었던 그 어느 가수는 바로 윤종신이다. 그는 지난달 21일 현 시국과 관련해 소신을 밝혀 눈길을 끈 바 있다.

"평소 '첨예한 정치적 이슈에 성향을 드러내지 말자…. 조용히 돕고 지원하고 힘을 실어 주자'가 내 모토였지만 나 같은 사람의 소극적 표현 및 침묵이 파렴치한 사람들에 의해 악용될 수도 있단 생각과 결정적으로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 나아지고 덜 유치해지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돕고 싶단 생각에 조금 솔직해지기로 했다.

이건 첨예한 이슈도 아니고 참…. 그냥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선악 구분이 뚜렷한 구성이 더럽게 조악한 뻔한 영화 같다. 오래 보기 민망한 영화, 상영관 잘못 들어가서 눈 귀 버린 영화, 재미없고 짜증나고…. 악인들이 심판받고 이 영화 빨리 끝냅시다."

"그냥 선악의 문제"라던 윤종신이 내놓은 소신의 산물 

 윤종신의 '그래도 크리스마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노란 리본이 등장한다.

윤종신의 '그래도 크리스마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노란 리본이 등장한다. ⓒ 윤종신


ⓒ 윤종신


ⓒ 윤종신


윤종신의 예언(?) 그대로다. 국민은 재미가 없고 짜증이 난다. 악인들이 심판을 받기까지 너무 오래 걸릴 듯한 예감이다. 그리고 그 악인들이 격렬히 저항 중이다. 그 영화가 빨리 끝나지 않으면서, 극장에 걸린 다른 영화들이 현실을 뛰어넘지 못해 좌절 중이다.

그래서 한 번 더 윤종신은 "더 적극적으로 돕고", "조금 솔직해지기로"한 것 같다. 19일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통해 발표한 '그래도 크리스마스'의 곡과 가사, 잘 만든 한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과 같은 뮤직비디오(MV created by VCR WORKS)를 통해서 말이다.

촛불이 등장하더니, 세월호 노란 리본이 어느새 팽목항 진도 앞바다로 날아간다. 소녀상은 (일본의) 날아든 지폐들에 얼굴이 부서져 버린다. 청와대에서 출발한 화면은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동상을 지나 광화문광장의 인파와 깃발로 옮겨 간다.

이후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목숨을 잃은 20대 비정규직 청년의 추모 현장과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추모 열기가 이어진다. 백남기 농민의 목숨을 앗아간 물대포와 그 물에 젖어 버린 영정 사진을 똑똑히 조명한다. 그 사이사이 열심히 살아가던 범인들의 일상이 비친다.

그랬던 화면은 어느새 태블릿 PC를 든 (최순실을 연상시키는) 여인을 비추고, 어느새 회전목마를 돌고 있는 (정유라를 연상시키는) 말을 탄 여성으로 전환된다. 뒤이어 현실의 타임라인과 엇비슷하게, 이화여대를 가득 채운 촛불에 이어 광화문을 가득 채운 촛불을 바라보는 (우병우의 검찰 조사 사진과 판박이인) 남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촛불 위에 선 대통령을 가로질러 경찰과 시민이 악수하고, 그 촛불을 끄려는 대통령에게 각기 다른 형상의 시민들이 촛불을 불어 횃불을 선사하고, 다채로운 깃발들이 그 시민들을 뒤따른다. 그리고,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걷는 거리의 군중 가운데서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하는 안경 쓴 가수 한 명.

2016년, 대한민국, 우리들의 시간을 5분여의 애니메이션에 담은 이 뮤직비디오는 "땅끝은 땅의 시작이다. 땅끝이 땅의 시작이다"라는 이문재 시인의 시구를 소개하는 2016년 10월 22일 자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으로 마무리된다.

갖가지 사건·사고와 악인들의 악행에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촛불을 들고 또 일상을 이겨낸 시민들과 그 군중 속에서 노래하는 가수 윤종신, 그리고 "땅끝이 땅의 시작이다, 함부로 힘주어 걷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라는 손석희의 정리가 '콜라보' 된 이 뮤직비디오에서 2016년 한 해의 분노와 슬픔을 도닥이려는 한 아티스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사도 딱 그 만큼이다.

상식의 공동체를 위하여 



"제가 매년 <월간 윤종신> 12월호를 통해 발표한 곡들은 대부분 위로를 주제로 해왔는데, 올해도 그렇게 됐네요(웃음). 올해 어수선한 일들이 참 많았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크리스마스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왔으니 내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과 건배 정도는 하자'는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윤종신이 말하는 곡의 의도다. 재즈풍의 따스함이 묻어나는 곡과 가사에서 한 아티스트가 보내는 위로와 도닥임의 정서가 편안하게 다가온다. 뮤직비디오 역시 이 같은 의도를 반영하듯 흑백과 여러 색채의 대비를 통해 애니메이션의 효과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전하고픈 '스토리'만큼은 정확하게 짚어냈다. 

"참 힘들었죠 올해 돌아보면 어쩜 그렇게도 그럴 수가 있는 건가요 / 잘했어요 참아내기 힘든 그 용서할 수 없는 걸 /다 함께 외쳤던 그 날들 정말 젠틀했던 강렬했던 뭘 바라는지 또 뭘 잃었는지 우린 모두 알고 있죠 /  하나하나 다시 해요 지금 내 옆 거짓말 못 하는 작은 꿈들로 사는 사람들 그들과 건배해 / 오늘은 그래도 크리스마스 믿고 믿고 싶어 고개 끄덕일 수 있는 내일 이제는 /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 건지 나 어른 되는 동안 사랑하기도 모자란 세월 속에서 /

내리는 하얀 눈 진실만큼은 덮지 말아줘 그래도 크리스마스 그래도 아이 러브 유(I Love You) 마이 러브(My Love) / 그래도 내 사랑 내 사람 행복해 줘 뚜루루루 나아질 거야 내일은 / 길을 걷다 누구라도 마주치면 같은 맘일 걸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Merry Christmas) 오 그래도 크리스마스 곧 해피 뉴이어 / 더 어른 되면 좀 더 괜찮은 얘길 해요 가슴이 따듯해지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 날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2016년의 뜨거웠던 겨울을, 우리가 함께 모여서 불을 밝히고 목소리를 내었던 그 희망의 열기를 떠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윤종신. 분명 그의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지난달 이승환과 음악인들이 발표한 '길가에 버려지다'와 대구를 이루고 또 그에 화답하는 작업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뮤직비디오 속에 등장하는 손석희 역시 이에 앵커브리핑으로 화답했다.

사실 이러한 도닥임과 화답들은 손석희의 말마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바로 그 "상식"의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는 행위들이다. 그 상식에 따라 누구는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고, 누구는 그 광장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또 누구는 앵커브리핑으로 '사실'을 전달하고, 그리고 윤종신은 '그래도 크리스마스'라는 아티스트 개인의 작업물로 공동체의 상식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리하여, 오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광화문 광장은 여전히 촛불이 타오를 예정이다. 윤종신은 "다음 겨울에도, 그다음 다음 겨울에도 이번에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 이 마음을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했다. 가수이자 음악인으로 성실하게 살아왔고, 또 성실한 예능인으로 살아온 이 윤종신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도닥임의 노래가 크리스마스이브의 광장에 울려 퍼지기를. 우리가 '상식의 공동체'를 위해 든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윤종신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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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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