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다큐멘터리 <순종>

기독 다큐멘터리 <순종> ⓒ CBS


나는 난민의 아들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영등포 난민촌이다. 이북이 고향인 아버지는 6.25전쟁 통에 이남으로 피난 내려왔다. 전쟁은 적만 죽이고 적진만 파괴시킨 게 아니다. 죽이고 죽은 적은 부모형제였고 폭격에 초토화된 적진은 고향이었다. 삶의 뿌리가 뽑힌 피난민 아버지는 평생을 가난과 아픔과 고향,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난민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고 고향으로 끝내 돌아가지 못한 아버지는 죽어서도 난민의 슬픔을 벗지 못했다.

난민 아들의 관점으로 CBS가 제작한 기독 다큐멘터리 영화 <순종>(김동민·이주훈 연출)을 관람했다. <순종>은 전쟁의 상처에 신음하는 우간다와 레바논의 난민과 그들을 돕는 한국 선교사 이야기다. 1997년부터 내전에 휩싸인 우간다에선 반군의 집단 학살과 강간 등이 발생했다. 내전의 상처로 얼룩진 우간다 딩기디 마을 아이들은 부모가 반군에게 살해당한 모습을 목격했다. 그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중동 테러단체 IS의 주민학살 등의 만행을 피해 레바논으로 탈출한 소년 알리는 헤어진 엄마를 그리워한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로마서 12장 15절)

영화 <순종>의 핵심 캐치프레이즈이자 예수의 핵심 가르침이다. 크리스천인인 나의 눈에 한국 기독교가 가장 불순종하는 것이 '우는 자와 함께 함께 울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순종>에 등장하는 선교사들의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삶은 한국 개신교인의 신앙 양심을 찌른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김은혜 선교사는 남편 한성국 선교사와 자녀들과 함께 우간다 딩기디 마을로 떠났다. 김 선교사의 아버지 고(故) 김종성 목사는 그곳에 묻혔다. 김영화 선교사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레바논 자흘레 난민촌에서 활동 중인 평신도 선교사다.

<순종>은 선교사를 미화하지 않는다. 김은혜 선교사는 가족 부양을 외면한 채 우간다 선교에 뛰어든 아버지 김종성 목사를 원망했다. 가족들은 우간다 장애소녀 플로렌스의 치료비를 대느라 빚까지 져야 했다.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다 아버지의 길을 따른 김은혜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 김영화 선교사에겐 지적장애를 가진 동생과 연로한 부모님이 있다. 그런데 그는 레바논 난민촌의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떠났다. 선교란 나와 내 가족보다 더 아픈 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사는 것임을 이들 선교사가 보여준다.

폭염과 테러 위협 속에 제작한 영화 <순종>... 삶의 부끄러움 자백하게 하는 영화

 <순종>을 연출한 김동민 피디(왼쪽) 이주훈 피디.

<순종>을 연출한 김동민 피디(왼쪽) 이주훈 피디. ⓒ CBS


<순종>은 기획, 취재, 제작에 1년 6개월이 소요됐다. 40도를 웃도는 폭염과 테러 위협 등이 노출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며 제작된 <순종>에 대한 이야기를 지난 1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연출자인 김동민 피디에게 들어보았다. CBS 노조 부위원장인 이주훈 피디는 노조회의 때문에 인터뷰 초반에 잠시 참석했다 자리를 떴다.

- 교회 권사인 아내와 <순종>을 함께 봤는데 아내는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우는 자와 함께 울지 못한 한국 교회와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관객 상당수가 눈물을 흘리며 봤다고 말한다. 관객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부끄럽다', '먹먹하다', '뭔가에 맞은 것 같다' 등이다. 그래서인지 관객들이 영화의 마지막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글과 함께 엔딩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일어서지 못한다. 관객들의 눈물은 상업영화의 신파조와 다른 울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삶의 반추와 다짐이라고 할까?

강수지, 최강희, 장광, 미스코리아 출신 박샤론 등 연예인들이 시사회 관람이 끝난 뒤 한 결 같이 삶이 부끄럽다, 삶의 자세를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평했다. 우간다에 자원봉사를 다녀온 최강희씨는 선교사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이 부끄럽다면서 내레이션과 영화 홍보에 적극 참여했다. 탤런트 최수종씨도 내레이션에 참여했는데 여러 장면에서 눈물을 흘려 NG가 많이 났다. 크리스천에게 <순종>은 잃어버린 신앙의 본질을 깨우치게 하는 영화, 일반 시민들에겐 나보다 아픈 이웃과 난민에 대한 닫힌 마음을 열게 하는 영화면 좋겠다."

- <순종>의 한 축은 선교사 이야기다. 한국 개신교회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있는데 선교를 둘러싼 잡음이 많다.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선교는 무엇이고 선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순종>은 기존의 찬사와 미화 위주의 선교사 이야기를 배제하고 선교사의 인간적인 고뇌, 갈등 그리고 실패의 경험 속에서 우러나온 반성과 전진 등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절절한 고백과 증언을 담고 싶었다. 선교사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처럼 인간적으로 고민하고 원망하면서도 결단하고 순종하는 사람이란 점을 부각하려고 했다.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순종이란 맹목적이고 강요당하는 순종이 아니라, 상처 입은 난민과 연대하면서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살아가는 보통 선교사의 삶이다.

<순종>은 교회 건물에 갇힌 한국 기독교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극단적인 종교인들이 '평화 대행진'이란 이름으로 무슬림이 사는 땅에 가서 행진하고, 땅 밟기하고, 찬송하고 불당을 훼손하는 등의 행위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본다. 선교란 타종교인과 타민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닌 함께 호흡하면서 진정한 삶으로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교라는 이름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종교인도 있지만, 다들 꺼리는 오지와 난민촌 등에서 그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며 묵묵히 살아가는 선교사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순종>이다."

"언론은 빛과 소금 역할 감당해야... 비판의 목소리 필요한 곳이 교회"

 영화 <순종>에 등장하는 난민 여성. 중동 테러단체 IS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영화 <순종>에 등장하는 난민 여성. 중동 테러단체 IS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 CBS


- 김동민 피디는 그동안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사회문제에 접근한 작품을 여러 번 연출했다. 영화 <순종>을 통해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지난 2009년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안 됐을 때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취재했다. 당시는 진상규명은커녕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던 상황이었고 유가족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클 때였다. 두 달가량 유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영안실 모습과 거리시위 등을 동행 취재했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 고(故) 이상림씨와 유가족 이야기를 다룬 <용산, 아벨의 죽음>으로 14회 YWCA가 뽑은 좋은 TV 프로그램상 대상을 받았다.

<크리스천 나우>라는 대담 프로그램을 통해 목사들의 교회 세습, 한국 교회의 성장주의, 목사의 윤리문제 등을 주제로 한국 개신교회의 문제를 비판하면서 교회개혁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교회와 종교는 비판금지의 성역이 아니라 비판과 개혁의 목소리가 매우 필요한 곳이다. 특히, 언론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와 종교는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영화 <순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신앙인의 잃어버린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시민들에겐 삶의 아픔으로 우는 이들을 기억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연대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판을 당하고 시민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에도 희망의 사람들, 희망의 불씨가 있다는 것을 <순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 한국은 난민 국가였다. 세계 여러 나라의 도움을 받아 오늘에 이르렀는데 난민을 돕는데 인색하다.
"우리는 뉴스와 리포트를 통해 폭격과 테러 등에 처한 난민들의 상황을 본다. 그리고는 '끔찍하다'고 생각하곤 곧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곳엔 우리의 아이들과 같은 아이들이 공포에 시달리고 헤어진 엄마를 그리워하는 등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민은 외계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난민들이 처한 상황은 만들어진 영화와 이미지가 아니다. 다른 나라 사람이라면 몰라도 전쟁을 겪었고 난민의 삶을 살았던 우리는 그들의 삶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 <순종>을 통해 난민에 대한 연민이든 연대감이든 생겨났으면 좋겠다."

 레바논에서 활동중인 김영화 선교사와 난민촌 아이들

레바논에서 활동중인 김영화 선교사와 난민촌 아이들 ⓒ CBS


- <순종> 촬영지인 우간다와 레바논은 40도를 웃도는 폭염과 테러 등의 위협이 존재하는 지역이다. 촬영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이주훈 피디는 레바논, 나는 우간다를 맡았다. 레바논 촬영 당시 베이루트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는 등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철수를 권고하는 상황에서 카메라를 메고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 방송사 마크를 떼고 들어갔다. 이주훈 피디의 숙소는 시리아 국경과 가까웠는데 총성과 폭탄 소리가 수시로 들렸다. 이 피디는 이라크와 아프간, 아프리카, 남미 등의 20개국 오지를 전문으로 취재하는 피디였기 때문에 촬영이 가능했다. 내가 촬영하던 우간다에선 4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하루 10~15시간 촬영을 강행했다. 무리한 촬영 때문인지 촬영감독이 팔목 건초염이란 병에 걸리기도 했다."

- <순종> 촬영 중에 겪은 가슴 아픈 이야기 혹은 감동에 대해 듣고 싶다.
"<순종>에 플로렌스라는 소녀가 등장하는데 플로렌스는 고(故) 김성종 목사의 도움으로 눈 종양을 치료받았다. 김 목사의 도움으로 치료받은 플로렌스가 김 목사 묘소 앞에 꺾어온 갈대를 바치는 장면을 찍고 촬영을 마치려고 했다. 그런데 플로렌스가 갑자기 한국말로 '목사님'이라고 말하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소녀의 눈물을 생생하게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레바논의 김영화 선교사의 마지막 인터뷰도 감동적이었다. 김 선교사는 자신에게 '순종'이란 난민들의 가족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된다면 그들의 가족으로서 레바논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영화 <순종>은 이렇듯이 새로운 가족을 찾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박근혜 게이트로 관람객 감소... 다양성 영화부문 1위, 기독언론대상 최우수상

 우간다에서 활동 중인 한성국 선교사와 난민촌 아이들.

우간다에서 활동 중인 한성국 선교사와 난민촌 아이들. ⓒ CBS


- 영화에서 다하지 못한 선교사와 난민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한국에서 부흥사였던 김 목사는 쌀이 떨어질 정도로 어려운 형편에서도 쌀이 생기면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다 우간다로 선교를 떠나 원주민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삶을 향상시키던 중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선교란 그들과 함께 살다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순종>에 등장하는 알리는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리 엄마는 병든 아들을 독일에서 치료받게 하기 위해 먼저 독일로 가 있는 상태다. 영화 촬영 당시에는 엄마의 소재가 파악이 안 됐지만 지금은 연락이 닿고 있다. 알리와 엄마가 어서 만나길 빈다."

- 박근혜 게이트로 영화 관람객이 크게 줄었다. 개봉 한 달 만에 상영관 수도 많이 줄었다.
"지난달 17일 개봉했는데 11월부터 박근혜 게이트로 촛불집회가 이어지면서 <순종>뿐 아니라 모든 영화 관객이 지난해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개봉 후 상당 기간 다양성 영화부문 1위, 전체 영화 순위 10위권으로 저예산 다큐멘터리로는 선전했지만 영화 시장 침체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곧 극장 상영 대부분이 종료될 예정이다. 시국 때문에 관람하지 못한 관객을 위해 2017년 봄 부활절 즈음해서 재개봉할 계획이다. 기쁜 소식이 있다. <순종>이 제8회 한국기독언론대상 선교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순종> 제작으로 고생한 이주훈 피디와 이우권, 김상진 촬영감독과 수상의 영예를 나누고 싶다."

- 제작 후기에서 한국에도 난민이 있다고 했다. 한국의 난민은 누구인가?
"공권력에 의해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의 가족과 세월호 유가족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들이 한국의 난민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이라면 이들의 아픔과 연대해야 마땅하고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 안에 안주하며 기독교인들만의 모임에 만족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예수는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했다. 불의를 밝히는 촛불에 예수가 있고 우는 자들의 눈물에 예수가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불의에 맞서 싸우고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종은 진리를 따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지 불의한 정치와 권력에 부화뇌동하며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부역하는 것은 결코 순종이 아니다."

순종 CBS 난민 선교사 김동민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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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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