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당시, 정수장학회 해명기자회견에서 법원의 판결과 다른 발언으로 문제가 되었던 박근혜 후보의 말실수

2012년 대선 당시, 정수장학회 해명기자회견에서 법원의 판결과 다른 발언으로 문제가 되었던 박근혜 후보의 말실수 ⓒ JTBC


27일 JTBC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청와대의 '이것이 팩트입니다'의 검증에 이어 '문고리 3인방'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미 이전부터 박 대통령의 주위에서 항상 함께 했던 3인방. 그들이 어떻게 권력의 실세가 되어 갔는지를 보여주었다.

3인방과 박 대통령의 인연은,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98년 대구 달성구 국회의원 보궐선거부터 시작된다. 당시 안봉근 비서관은 달성지구당 총무과장이었다. 당시 달성지구당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안봉근은 정윤회의 개인 비서 노릇을 했다고 한다. 서울과 지역 지구당과의 중간 연락책으로서 충실히 정윤회의 수족 노릇을 한 안 비서관. 그리고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정호성 비서관과 다른 비서관 A가 있었다.

1년 만에 박근혜의 보좌관을 그만 두었다는 A는 세계일보에 제보에서 최순실과 정윤회가 실세였다고 말했다. A는 최순실과 먼저 면접을 보았고 그 다음 정윤회와 면접을 보고 박근혜와 마지막으로 의원 회관에서 면접을 본 후 보좌관이 되었다고 증언했다. 최순실은 "맑은 사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찾는다"는 면접기준을 밝혔다고 한다. A는 의원회관에는 2, 3일 출근하고 나머지는 강남에 있던 안가에 출근했었다면서, 안가에 가니 러시아어과 출신인 정호성이 보좌관으로 뽑혀있었고 얼마 후 대구에서 안봉근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안가에서는 최순실-정윤회 부부가 업무지시를 하며 비선실세 역할을 했다고 한다. 현재 장관들이 정부부처 과장정도로 일하고 있다며 당시 A도 박근혜 의원의 보좌관이 아닌 최순실의 비서처럼 일해야 했다고 밝혔다. A가 일에 염증을 느끼고 그만두자 후임으로 들어온 것이 바로 이재만 비서관이라는 것이다. 이재만 비서관의 대학은사는 이재만이 꽉 막히고 시키는 일이나 하는 유형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입성후 불거진 3인방의 비리 

 99년 완성된 문고리 3인방체제. 문고리 3인방은 하수인에서 점점 권력의 실세가 되어갔다. 청와대에 입성한후 각종 비리를 일으킨다.

99년 완성된 문고리 3인방체제. 문고리 3인방은 하수인에서 점점 권력의 실세가 되어갔다. 청와대에 입성한후 각종 비리를 일으킨다. ⓒ JTBC


1999년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3인방 체제가 되었고, 3인방은 정윤회와 최순실, 박근혜를 섬기면서 충직한 하인노릇을 한다. 2006년 커터칼 테러로 박근혜가 부상을 입었을 당시 근접경호를 담당하던 안봉근은 경호실패 시 옷을 벗는 보통의 경우와는 다르게 계속 박근혜의 곁에 남게 된다. 이때 인사권을 행사했던 것이 정윤회였다는 것이다. 안봉근 대신 다른 경호원이 잘린 것이다. 안봉근은 박근혜의 지근거리에서 휴대폰을 들고 다녔고, 그 휴대폰은 곧 권력이 된다. 2007년 박근혜 캠프 관계자는 국회의원 공천부터 박근혜의 제가가 있어야 하는 부분에서는 안봉근을 통하지 않고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안봉근의 권력이 세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2007년 대선당시 문고리권력은 이미 자리를 잡았다. 2012년 대선당시에 박근혜가 이사장이었던 정수장학회 해명기자회견자리에서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이다. 바로 법원에서 "강제헌납이었다"고 인정한 부분에 대해 박근혜는 "강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며, 법원의 결정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곧 주변에서 박근혜에게 잘못 말했음을 알려 정정했지만, 이러한 공개석상에서의 말실수는 이때부터 지적되고 있었다.

2012년 박근혜가 대선에서 승리한 후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문고리 3인방에게 줄을 대고 한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청와대에서 총무비서관 이재만, 제1부속 비서관 정호성, 제2부속 비서관(원래 영부인을 보좌하는 자리) 안봉근으로 자리하는 문고리 3인방. 이들에 대한 대우는 수석 급이었다. 울리는 벨소리도 수석을 뜻하는 급박한 경고음이었고, 지급된 차량도 수석 급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단순한 비서관이 아니었다는 방증이다.

승리직후 나온 우려의 목소리는 기우가 아니었다. 3인방의 친인척 비리가 적발되기도 했다. 정호성 매형이 처남의 위세를 등에 업고 돈을 받고 다니다 민정수석실 조사에 적발된다. 하지만 원칙과는 다르게 정호성에 대한 조사는 없었고 흐지부지된다. 2014년에는 전주의 한교회 장로가 이재만을 사칭해 한 대기업의 간부로 취업하는 사기도 벌어졌다. 이재만이라는 전화에 대기업은 신원확인도 없이 부장급으로 취업시켰다.

 검찰조사에서 나온 정호성의 대포 휴대폰에 담긴 대통령의 음성녹음. 정호성에게 최순실과 컨펌했냐고 묻는 대통령. 국민이 이러라고 뽑아준 것이 아닐 것이다.

검찰조사에서 나온 정호성의 대포 휴대폰에 담긴 대통령의 음성녹음. 정호성에게 최순실과 컨펌했냐고 묻는 대통령. 국민이 이러라고 뽑아준 것이 아닐 것이다. ⓒ JTBC


또 안봉근 비서관은 경찰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전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안봉근 은 2013년 즈음에 경무관 급 경찰직 한 명을 치안감으로 승진시켜 사회안전 비서관으로 데려오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고 한다. 민정수석실 조사에서 그 인사에 대한 문제점이 나왔기 때문이다. 현재 해당 경찰 인사는 승승장구해서 현직 고위직에 있다고 했다.

공기업 임원에게도 사퇴를 강요한 일이 있다고 한다. 코바코 이원창 전 사장은 사퇴를 요구하는 전화에 "물러나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냐?" 물었고, "대통령은 아니다"라는 답변을 듣는다. 이에 이 전 사장은 "비서실장이냐?"고 물었고, "비서실장도 아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이 전 사장은 비선라인에서 찍어서 물러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또, "위에 뜻이다. 물러나라"는 협박성 압력을 받았다는 공기업 임원. "물러나지 않으면 검찰이 들어갈 것이다"라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굽히지 않았지만 실제 검찰이 들이닥쳐 모든 컴퓨터를 압수하고 회사업무가 마비되어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던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압력이 들어왔던 두 공기업은 사장이 교체된 후 최순실과 차은택 소유의 회사에 이권을 몰아준 것으로 밝혀졌다. 대선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기초연금'등을 폐기하고 무력화 시킨것도 비선실세와 문고리 3인방등 최순실 일당의 짓임이 명약관화해 보인다.

지난 20일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정호성은 180여건의 문건을 최순실에게 유출하였고, 이중 47건은 사전공개유출이 금지된 공무상 비밀이 담긴 문건이었다. 공소장에 명시된 것 중에 복합체육시설의 입지로 하남시가 유력후보지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후보대상지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최순실 소유의 상가와 토지가 있었다. 최순실은 이 부동산을 34억에 매입해서 52억에 되팔아 18억의 시세차익을 얻는다. 복합체육시설이 최순실의 부동산에 가까운 곳으로 선정되도록 유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고리 3인방도 2014년 9.1 부동산 대책으로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이 나올 즈음에 동시에 강남 아파트를 매입한다. 이후 문고리 3인방이 구입한 강남 아파트는 평균 30%가 넘게 가격이 급등하게 된다. 이 또한 사전에 문건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시세차익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불통을 홍보하는 대통령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은 빼돌린 문건을 이용 부동산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보여진다.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은 빼돌린 문건을 이용 부동산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보여진다. ⓒ JTBC


전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려도 일이 진행이 잘 되지 않고 진행상황에 대해서도 몰랐다고 한다. 주요 정책의 집행장인 각부의 장차관들의 어깨에 기운이 빠지게 하는 경우다. 2014년 공개된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서는 정윤회가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을 매달 2~3차례 만나 청와대 내부동향과 현 정부 동향을 보고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수사는 유야무야 넘어갔고 이재만 비서관도 조사를 받았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며 검찰청을 유유히 빠져나온다. 문고리 3인방의 경질 여론이 높았지만 박 대통령은 오히려 3인방을 두둔하며 그 자리를 계속 지키게 한다.

이렇게 박대통령은 주위에 어떤 말에도 귀를 닫고 국민여론마저도 무시하고 문고리 3인방 등을 두둔하며 불통했다. 박대통령은 오히려 불통을 대국민 앞에서 홍보까지 했다.

현재까지 밝혀지고 있는 게이트의 전말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비선실세 최순실 일당에게 의사결정의 대부분을 의존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순실을 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정호성에게 "최 선생님에게 컴펌했느냐?"고 묻기까지 한다. 귀를 닫아놓고 오로지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 등의 비선조직하고만 소통했던 대통령이었다. 이러한 대통령의 불통은 비선 최순실 일당의 비리를 더 키우고 조장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현재 검찰 수사에서 문고리 3인방 중 정호성만 구속되고 이재만, 안봉근 둘은 참고인 조사만 받고 풀려난 상태다. 대통령이 최순실 일당과 공모관계가 있는 피의자라고 규정하면서도 정작 비선의 핵심실행 세력인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수사가 이렇게 미진한지 검찰의 의도에 미심쩍은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곧 있을 특검에서 이재만, 안봉근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서 최순실 비선세력이 어떻게 국정을 농단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최주호 시민기자의 오마이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4.16 세월호 참사 박 대통령 불통과 문고리 3인방 김기춘 비서실장 박근혜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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