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영화제가 열리지 않은 것이 '사실상' 확정된 2016년. 올해 열리는 유일한 메이저 영화 시상식인 제37회 청룡영화상은 이병헌, 김혜수, 정우성, 하정우, 손예진 등 한국 최고의 영화배우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음에도 불구, 어느 때보다 대중들의 관심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모든 이슈를 잠재워버리고 현실이 영화를 압도해버리는 시국 때문이다.

흔히들 청룡영화상을 두고 '파격' 혹은 '공정'으로 평가하곤 한다. 실제 독립영화 <한공주>에 출연했던 천우희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제35회, 다음 해에도 독립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여주인공 이정현이 같은 상을 받았던 제36회 등, 상업 영화 위주로 상을 주었던 메이저 영화 시상식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이변'의 연속이었다. 또한, 청룡영화상의 라이벌 격인 대종상영화제가 비리와 공정성 논란과 더불어 사실상 파행으로 얼룩진 것과는 다르게, 별다른 잡음 없이 매년 행사를 성대히 치렀던 청룡영화상은 상대적으로 더 돋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대종상보다 상대적으로 낫다뿐이지, 청룡영화상이 대단히 훌륭한 영화상이라는 식의 상찬은 섣부르다. 오히려 은밀하고 교묘하게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었다. 2년 전 열렸던 제35회 영화상에서도 청룡영화상은 주최 측인 <조선일보>의 최고 정적 중 하나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변호인>을 최우수 작품상으로 선정했고, 작년의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은 일제강점기 시대 독립군의 활약을 다룬 <암살>이었다. 언뜻 보면 주최사와 다른 성향의 작품도 선택하는 '파격'일지 모르지만, 시류에 편승하는 쇼맨십이라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온다. 이번 청룡영화상의 선택이었던 <내부자들>과 <곡성>도 마찬가지이다.

시국을 반영한 작품상 선정?

'청룡영화상' 이병헌, 명품의 짙은 향기 25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7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영화 <내부자들>의 배우 이병헌이 입장하고 있다.

▲ '청룡영화상' 이병헌, 명품의 짙은 향기 25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7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영화 <내부자들>의 배우 이병헌이 입장하고 있다. ⓒ 이정민


대체로 무난과 안정을 택한 올해였다. 김민희의 여우주연상 수상을 '제외'하면, 지난 25일 열린 제37회 청룡영화상은 특유의 영리한 행보만 돋보일 뿐,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이변이나 감동은 없었다.

이변이라면 이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올해 청룡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본의 아니게' 실패했지만, 어느 정도 담아내는 데 성공한 <내부자들>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 <내부자들> 선정이, 작품성보다는 영화상을 주최하는 <조선일보> 측이 박근혜 정부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시선도 있다.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킨 1등 공신 중 하나였던 '내부자' <조선일보>가 인제 와서 언제 그랬냐는 듯 박근혜 정권 비판에 날을 세우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여기에, <내부자들>만 놓고 보면 도저히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 시국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거울 <곡성>을 통해 영화보다 더 그로테스크하고 끔찍한 현실의 퍼즐을 끼워 맞춘다.

<내부자들>을 두고, 몇몇 사람들은 청룡영화상 최초로 '다큐멘터리'가 작품상을 받은 이례로 꼽기도 하다. 하지만 "<내부자들>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곡성>이었더라"는 웃픈 누리꾼의 한 줄 평처럼, 영화 밖 현실은 <내부자들>과 <곡성>을 합친 것 이상으로 충격적이고 국민을 비탄에 빠트리게 한다.

이날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병헌은 "요즘 현실이 <내부자들>을 이긴 듯한 상황"이라는 수상소감을 남기며 현 시국을 간접적으로 언급하였다. 청룡영화상 이전 열린 각종 영화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며, 청룡영화상에서도 작품상 수상이 유력해 보였던 <동주>는 신인남우상(박정민), 각본상을 받으며 2관왕을 차지했다.

나머지 부문도 대체로 예상했던 후보가 상을 받았던 시상식이라는 평이다. 유일한 '파격'은 김민희였다. 홍상수 감독과의 불륜 스캔들 이후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김민희는 이날 시상식 역시 불참했음에도 불구,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았다. <아가씨>에서 보여준 연기에 대한 의견보다 사생활 논란으로 얼룩진 김민희, 결국 후보자가 참석하지 못해 대리 수상해야 했던 여우주연상 부문은 그래서 더욱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보다 영화 같은 현실, 청룡영화상은 정치적이었나

'청룡영화상' 곡성팀의 멋진 발걸음 25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7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영화 <곡성>의 배우 쿠니무라 준과 곽도원이 입장하고 있다.

▲ '청룡영화상' 곡성팀의 멋진 발걸음 25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7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영화 <곡성>의 배우 쿠니무라 준과 곽도원이 입장하고 있다. ⓒ 이정민


유명한 철학자이자, 영화에도 관심 컸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이미 들뢰즈의 예언은 대한민국에서 현실이 되었다. 오히려 영화를 압도하는 실제 세계에 참다못한 수많은 국민은 고통을 호소하고, 참다못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박근혜 퇴진과 사회개혁을 외친다. 아예 작정하고 재벌-보수언론-검찰과의 검은 밀착을 파헤친 <내부자들>은 애초 현실을 염두에 두었고, 역시나 영화 속 장면과 대사들이 실제 '내부자들'에 의해 그대로 재현되는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반면 샤머니즘을 기반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 <곡성>은 영화 속 곡성이 대한민국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나홍진 감독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상이다. 그러나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자괴감을 느끼는 국민은 오히려 현 시국을 <내부자들>보다 <곡성>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성적인 접근방식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은 수많은 의혹투성이를 두고, 여전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박근혜 정부, <내부자들> 속 '내부자들' 그 이상을 보여주었던 박근혜 대통령 주변 인물들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

영화보다 더 절망적이고 참담한 현실 앞에서 영화는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현실이 영화를 대체한 지 오래인 대한민국에서 진짜 '내부자들' 중 하나인 언론사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청룡영화상의 선택은 <내부자들>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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