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련 오보를 낸 YTN 방송 화면.

트럼프 관련 오보를 낸 YTN 방송 화면. ⓒ YTN


"여성 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의 여성 대통령을 보라."

지난 1일, YTN이 트럼프의 발언이라 소개한 박근혜 대통령 비판 내용이다. 불행하게도, 오보였다. 포토샵 작업을 거친 사진 한 장에 낚인 쪽은 YTN이었고, 낚은 쪽은 박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한 페이스북 이용자였다.

YTN보다 먼저 그 사진에 낚인 (필자를 포함해) 페이스북 사용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YTN에 헷갈릴 수 있는 용기(?)를 제공한 것도 어마어마한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공유' 덕택이었으리라. YTN 역시 '이슈 리포트' 수준의 꼭지로 다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핵심은 오보가 아니었다. 있지도 않은 발언을 끌어들여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에  '여성'과 '젠더' 이슈를 끌어들인 그 불편한 시선 자체가 문제였다. 일견 손쉬운 선택일 수 있다. 물리적인 성을 끌어들여,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언어로 본질을 치환시키는 비판들 말이다.

이 손쉬운 선택에 래퍼 산이도 숟가락을 얹었다. 24일 발표해 음원차트 1위를 휩쓴 산이의 신곡 '나쁜X (BAD YEAR)'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겨냥한 듯한 가사로 발표 직후 화제를 모았다. 자연스레 '시국 비판'에 초점이 모아졌다. '사이다'라는 반응도 있지만 '여혐' 가사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산이의 소속사인 브랜뉴뮤직의 대표 라이머의 설명에 따르면, 이미 만들어 둔 노래에 요즘 시국에 맞는 가사로 수정을 했다고 한다. 그는 "듣는 분의 생각에 따라 열린 해석을 하면 되는 곡"이라며 애매한 입장을 내놨다.

은유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길가에 버려지다'에 참여한 수많은 음악인들이 당당하게 크레딧을 올리며 '박근혜 퇴진' 움직임에 동참한 것과 비교하면 수세적인 입장이라 할 만하다. 하루에도 산더미 같이 쏟아지는 관련 뉴스도 버거운 이 시국에, 우리는 꼭 산이의 '나쁜년' 운운하는 랩까지 접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까지 꼭 우리가 같이 망가져야 하나

"병신년 드립 치면서 나는 대통령 욕하는 깨인 시민 이러는 멍청이들 일년 내내 지겹도록 본 끝에 산이가 나쁜년 드립 치는 꼴까지 꼭 봐야만 하나.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1년 전에 했으면 아 뭘 못 배워서 그랬나보다 생각이라도 하지. 산이가 무식한 랩을 그만하는 세상에 살고 싶은 것 정도가 그렇게나 큰 욕심이더냐."

웹진 <아이돌로지>의 편집장 '미묘'가 트위터를 통해 '나쁜X'를 발표한 산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글이다. 이러한 비판은 '여혐' 이슈에 좀 더 민감한 트위터 사용자들 사이에서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한국 랩퍼들 평생 제도권밖으로 벗어난 적도 없고 시국 비판한 적도 없어서 할 줄 아는 건 없는데 밖에선 힙합정신이 없다느니 욕먹고 시국 비판하는 연예인 주목 받으니 뭐라도 내놔야겠는데 해본 디스라곤 여혐밖에 없어서 나온 곡 : 산이의 <나쁜년>" (@_s***)

"... 철저하게 박근혜를 사적영역(여자친구)으로 끌어내려서 딴 놈이랑 놀아났니, 닭년등 여성혐오가 가득 욕을 하고 마지막에 병신년으로 화룡점정을 찍음ㅋㅋㅋㅋㅋㅋㅋ ..." (@fe*********)

반면, '사이다'라는 반응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산이 '나쁜 년' 가사 곱씹기#feat.닭의 해x하야#"라는 OSEN의 리뷰 기사다. "답답한 시국, 사이다 같은 노래가 탄생했다. '디스'를 하려면 래퍼 산이처럼 센스 있게, 그리고 맛깔나게 해야 한다. 산이가 24일 발표한 신곡 '나쁜X'가 그렇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친절하게도, 가사 하나하나를 꼼꼼히 해석(?)했다. 정말 산이가 그렇게까지 불행한 사건들에 관심이 많은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BAD YEAR 올핸 참 별일이 많았어 특히 안 좋은 일들 원치 않았던 그중에서 베스트 단연 제일 나쁜 건 그녈 만난 거 나쁜 년 BAD YEAR/ 나도 참 멍청한 놈이지만 너도 참 불쌍한 걸 안 간다 멀리 보내줄게 잘 가요 잘 가요 잘 가요 Adieu 나쁜 년/ BAD YEAR BAD YEAR 참 나쁜 년 BAD YEAR BAD YEAR Good Bye So Long Adieu 나쁜 년"

→ 2016년은 유난히 어수선하고 안 좋은 일들이 많았다. 끔찍한 아동 학대 사건들은 지역을 불문하고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강남역 한복판에서는 묻지마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지진 안전국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산이의 디지털 싱글곡 '나쁜 X' 재킷

산이의 디지털 싱글곡 '나쁜 X' 재킷 ⓒ 로엔 엔터테인먼트


래퍼 산이의 '여성 혐오' 가사, 저열하고 저렴하다

"집 앞이야 네게 전화해 (Brrrr) 답도 없고 좋게 끝내보려 했는데 맞어 나 조금 화난 듯 내려올래 (빨리) 좀만 더 가면 걸릴 듯 공황장애 (Yeah)/ 사람 볼 땐 그 사람 눈을 보라던데 (U know) 충혈된 네 눈 홍등가처럼 빨개 (So Freaking Red) 너의 혀는 매번 내 귀를 희롱했고 나 욕 좀 해도 돼 떨어져라 지옥행 (Go To Hell)

"하...야..., 내가 이러려고 믿었나 널 넌 네 입으로 뱉은 약속 매번 깨고 바꿔라 좀 레퍼토리 심지어 옆에 알고 보니 있었지 딴 놈 그와 넌 입을 맞추고 돌아와 더러운 혀로 핑계를 대 넌 그저 꼭두각시 마리오네트였을 뿐이라고/ So Sick And Tired 신은 왜 대체 이런 년 주셨는지 내게 이런 시련 도와주세요 Holy Moly 병신년아 빨리 끝나 제발 정유년은 빨간 닭의 해다 #나쁜 년 #BAD YEAR 그저 편히 싹 맡긴 채 숨 쉴 Bad Year Bad Bad Bad Bad Year 그저 편히 싹 맡긴 채 숨 쉴 Bad Year Bad Bad Bad Bad Year Bad Year"

'나쁜X'의 나머지 가사다. 이 곡과 가사를 듣고 누군가는 속 시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차원적으로 바람을 핀 자신의 애인에게 "병신년아"라고 욕을 해대는 남자(래퍼)에게 딱히 격한 공감을 보내야 할지는 의문이다.

대중예술이 '예술'로 평가받으려면, 스스로의 품격과 해석의 차원이 요구된다. 랩이란 장르의 본질이나 특성을 고려해도 마찬가지다. 만약, 미묘의 말마따나 이 곡이, 이 가사가 작금의 시국보다 살짝 먼저 공개됐다면 어쩔 텐가.

"이것은 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여성의 문제가 아니죠.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23일, 숙명여대 학생들과 시국대화에 나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이 문제를 여성과 젠더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따른 답이었다. 그렇다. 산이의 시국 비판은, 가능은 할 수 있을지언정 과녁 자체가 심히 엇나갔다.

대상을 여성으로 상정한 것 자체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박 대통령이 여성이라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부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성형수술 논란 등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따른 부스러기일 뿐이다. 과녁을 애초에 거기에 맞췄으니, 여성 혐오로 가득 찬 가사가 쏟아져 나올 밖에.

우려스러운 것은 사회 전반에 암약하고 번진 이 여성 혐오의 기운이 자연스레 박 대통령 비판과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리라.

그런 점에서, DJ DOC가 26일 광화문광장 집회 현장에서 발표할 것이라 예고한 시국 비판곡 '수취인불명(미스박)'의 가사에 대한 판단은 광장을 찾을 국민들에게, 독자들에게 맡기는 바다. 다음은 <고발뉴스>가 25일 공개한 '수취인분명'의 가사다. 

(1절)
미스박 you 노답, nodoubt, 나이값 쪼또 못하는 어버이연합 아들뻘 우리들이 볼땐 꼴값 처럼 보인답니다 노답 아 좀 꺼줘~ Y불은 안꺼져 이제 좀 쉬어 집에 돌아가셔서 지금 이대로 가신다면 진상 아닌 고상 한 탕 문고리 삼인방 국민에겐 사과없이 박그네만 챙겨 양심팔아 돈을 땡겨 자기들 밥그릇만 존나챙겨 나라 팔아 먹은 매국노와 뭐가 좀 달라?? 룰루랄라 박씨와 같이 말아먹은 나라 배는 좀 부르시나??

(Hook)
역대급 삥땅, 멘붕 쎄뇨리땅^^ 하도 찔러대서 얼굴이 빵빵 빽차 뽑았다 널 데리러가 빵빵 다왔어요 잘들어가요 깜빵 이 잔당 몽땅 쓸어담아 깜빵 잘가요 Miss 박 쎄뇨리땅~^^ 난 좌우상관 없지 사실 난 오른손잡이 하지만 니넨 날 또 빨갱이라 부르겠지 내가 양아치 빨갱이라면 당신은 거짓말쟁이 순시리의 꼭두각시 닭대가리 한국가의 원수에서 국민들의 원수 우리의 소원은 통일? 틀렸어 번짓수 남북통일 대박? 좌우통일 먼저해봐 아! 혼자선 못하지!! 허락받아야지 전화해봐~ 대포폰으로 confirm 고집불통에 꼴통 대통령 단절된 소통 다른이의 고통 눈물 연기는 보통 (흉내) 아무리 물어봐도 답변이 없네 쥐 나간 자리에 닭변만 있네 우주의 기운에 나라가 기우네 저기 자기 자식을 잃은 엄마가 우네

(Hook)
우리가 궁금한건 산더미 만큼 많고 많지만 정말 궁금한건 당신의 7시간 2014년 4월 16일 진공상태 처럼 떠버린 당신의 알리바이와 상대 도대체 뭘 했길래 대답을 못해 국민앞에 사죄해도 모자를 판에 간신배 새끼들과 또 판을 짜네 무덤을 파네 결국 또 한배를 탔네 우리배 삿대질은 4공 딸의 손에 위험한 물가에 월급봉투를 내놓네 배후 세력에 의해 연기하는 배우 그녀는 무식혜 그리고 위험혜 매우 한국가의 원수 이제 국민들의 원수 말바꾸기 선수 생긴건 꼭 일수 이런 세상을 바꿔 생각만으론 못바꿔 일단 다음 선거날에 알람을 맞춰

(Hook)
역대급 삥땅, 멘붕 쎄뇨리땅^^ 하도 찔러대서 얼굴이 빵빵 빽차 뽑았다 널 데리러가 빵빵 다왔어요 잘들어가요 깜빵 이 잔당 몽땅 쓸어담아 깜빵 잘가요 Miss 박 쎄뇨리땅~^^  

산이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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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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