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위, 유덕화 주연의 영화 <무간도>는 지금 봐도 많은 걸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양조위, 유덕화 주연의 영화 <무간도>는 지금 봐도 많은 걸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 디스테이션


<무간도>라는 작품을 다시 보았다.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내가 고민하는 몇 가지 문제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 다시 한 번 유심히 보게 된 것이다. 나이 어린 사람, 아니 나이 든 사람들이라도 이제 불혹을 바라보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모르겠지만, 정체성의 혼란이란 건 청소년 방황기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닌듯하다. 또 나이 들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될수록 가끔이라도 내가 누구이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에 대한 물음을 묻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우리 존재를 객관화하여 보여줄 거울 같은 것이 실제로 있다면 그리고 그래서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까. 뭐 난 아직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기에 깨닫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수많은 세계 종교인들이 실지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왔고 그래서 세상이 더 행복해졌다는 말을 듣지는 못했다.

경찰이면서 조직에서 일하는 경찰의 스파이 진영인, 그리고 삼합회가 경찰에 심어 놓은 조직의 스파이 유건명, 이들은 서로 뒤바뀐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누구인지 잊지 않고 자신들 상관의 지시에 따라 스파이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진영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황 국장을 위해 마약밀매가 행해지는 시기와 장소를 알려주고 유건명은 반대로 조직의 보스 침형에게 경찰의 계획을 알려 위험에서 구해준다.

10년을 내부 스파이로 일하면서도 조직을 배반하지 않은 유건명이나 경찰이면서도 조직에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제공한 진영인, 내가 보기엔 두 사람 다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사명감이 넘치는 인물이다. 조직에 들어가 일하는 것을 사명감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 스스로는 자기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10년이 지나도록 쫓고 쫓기는 고통을 나름 감내할 수 있었고 또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임무를 다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특히 진영인은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지고 또다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가끔 그녀가 일하는 사무실을 찾아가 소파에서 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가 나중에 고백했던 것처럼 소파에서 자면서 꿈에서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이 아니 지옥 같은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고백하지 못했다.

임무를 다하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고통을 인내하지만, 그마저도 황 국장이 삼합회에 피살되면서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만다. 자신의 길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유건명은 황 국장에게서 발견된 전화로 진영인과 연락하고 자신이 더는 조직에 있을 이유를 잃은 진영인은 유건명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직을 배반하게 된다. 황 국장의 죽음으로 자신의 신분을 아는 사람을 모두 잃은 후에도 조직을 배반하면서까지 경찰이기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비록 경찰이라는 조직 자체는 신물이 나도록 싫어했을지 모르지만.

유건명 역시 이젠 착한 사람이 되겠다며 진영인을 만나기로 하지만 자신의 환경을 부정하면서까지 자기이기를 고집했던 이들의 몸부림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진영인은 자신이 죽은 뒤에 자기 신분을 되찾게 되지만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력해 온 대가치고는 허무하기 이를 때 없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존재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또 사회적으로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요받는다. 나이 어린 우리 조카도 유난히 거울 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인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게 되고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우리가 남을 관찰하고 그들의 행동을 모방하면 할수록 우리의 자의식도 강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꼭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일까. 아니, 오히려 더 불행해지는 것은 아닐까.

무간도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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