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동네에서 고양이가 죽어 나간다. 그것도 칼로 갈기갈기 상해가 가해진 채. 과연 누가 고양이를 죽였고, 왜 그랬을까?

만약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살인의 충동을 자제하기 위해 사람 대신 고양이를 죽인 거라면? 그런데 내 안에도 그런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이 있다면?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몽씨어터 제작, 기획)는 현대인들의 감춰진 욕구와 이를 해소하기 위해 벌어지는 참담한 고양이 살인사건을 다룬다. 이동선 연출, 석지윤 작으로 11월 20일까지 선돌극장에서 앵콜 공연한다.

올해 3월 초연으로 관객들과 만난 이 작품은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암연과 비명,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적 전개와 고독한 현대사회를 꼬집는 듯한 풍자, 그리고 해학까지. 연극은 고양이와 사이코패스를 통해 우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특히 명품 배우들의 심리적 갈등과 사이코패스적 이중성을 드러내는 모습은 황홀하다.

범인으로 의심받는 301호 남자

 현대빌라에 모여 있는 그 누구도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현대빌라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것 같다.

현대빌라에 모여 있는 그 누구도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현대빌라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것 같다. ⓒ 몽씨어터


서울 외곽의 5층짜리 한적한 현대빌라. 이곳 401호에서 긴급 반상회가 열린다. 동네에서 자꾸 고양이가 죽기 때문이다. 최근 옆 동네에선 살인사건마저 일어났다. 어둠침침한 조명 아래 301호 남자만 빼고 사람들이 다 모였다. 301호 남자는 고양이를 죽였다고 의심받는 용의자이자, 사이코패스로 의심 받고 있는 남자다. 살인사건도 이 남자가 저질렀을까.

자동차 수리공인 301호 남자는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 그래서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단다. 또한 그는 여자에게 배신당했다. 이러한 배경이 그를 사이코패스 살인범으로 몰고 가고,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된다. 현대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이웃과 잘 사귀지 못하는 301호 남자를 고양이를 죽인, 그리고 살인을 일삼는 사이코패스로 몰고 간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현대빌라에 사는 사람들 모두 정상이 아니다. 순수하게 보이는 여성은는 깨끗함을 찾는 추악한 남자들을 집으로 꼬드겨 두 다리에 상처를 준다. 간병인 아줌마는 사람의 죽음에 희열을 느낀다. 평범한 회사원 남자는 과거 성가대에서 교회 아이들이 갇힌 건물에 불을 질렀다. 아니, 그런 상상을 한다. 그는 안에 갇힌 아이들 비명 소리를 듣다가 고양이 울음소리 같다고 생각한다. 폐가 안 좋은 노인은 무료 급식 봉사를 하다가 음식에 이상한 것을 탄 적이 있다.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해 다른 여자 꽁무니만 따라 다니고, 작은 연구소 운영에 자부심을 가진 남자도 있다. 이 남자는 여자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에 집착한다. 공무원 준비생은 피학 성향이 있다. 이상한 사이트를 즐겨보고 같은 빌라에 살고 있는 여성의 생리대를 슬쩍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을 불태우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실제로 불태운 건 아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성향은 '현대'사회(빌라)를 사는 대부분이 갖고 있다.

현대빌라 입주민 모두 정상이 아니다

 가장 평범해보이던 회사원 남자(중앙)은 가장 이상한 사이코패스로 변해간다.

가장 평범해보이던 회사원 남자(중앙)은 가장 이상한 사이코패스로 변해간다. ⓒ 몽씨어터


이들은 실수로 301호 남자를 죽이고 만다. 이제 변명 거리를 만들기 위해 시체가 필요하다. 즉, 301호 남자가 사이코패스이고, 그 증거로 시체가 필요한 것이다. 이들은 새로 이사 오려는, 501호 여자를 죽이기 위해 모의한다.

가장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302호 남자. 그저 회사원으로서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은 없는 것 같으나 내면에 무엇인가 있다. 302호 남자는 301호 남자를 연기해야 한다. 경찰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회사원 남자마저 정말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심연에 있는 무언가가 발현된다. 물론, 현대빌라에 사는 그 누구도 사이코패스의 범주와 경계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없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경찰마저 외로움에 몸서리를 친다. 제대로 사건을 조사하기보단 현대빌라의 젊은 여자에게 치근댄다. 극 속에선 묘한 말을 남겨 오히려 301호 남자를 불리하게 만든다. 경찰마저 사이코패스 기질이 보인다.

극의 분위기는 내내 으스스하다. 아래층 정비소 남자 집 TV소리를 듣는다며 집단으로 허리를 숙이는 모습은 소름끼친다. 현대빌라 사람들은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내재된 정신분열증이 있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마을 사람 모두가 필요하듯, 사이코패스 하나 만드는 데 빌라 사람 전부가 필요하다. 한편, 죽은 자동차 수리공의 영혼은 고양이를 데리고 하늘로 간다.

연극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나

 고양이는 잠재된 욕구이자 양심일까.

고양이는 잠재된 욕구이자 양심일까. ⓒ 몽씨어터


사이코패스에게 가장 무난한 것이 고양이 죽이기라고 한다. 사람 비명 소리와 비슷한 게 고양이 울음소리다.

그렇다면 고양이가 상징하는 건 무엇일까? 현대빌라 사람들은 사회에 표출하지 못한 응어리를 내면에 안고 있다. 평범함으로 무장한 채 분노나 욕구를 감추고 있지만 발언 기회가 주어지자 심연에 있는 욕망을 발언한다. 그러나 이는 모든 사람들이 지닌 성향으로 어쩌면 외면으로 드러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만약 드러난다면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이고, 안 드러난다면 잠재적 사이코패스일 뿐이다. 이런 사이코패스는 결국 일반인의 공통 성향이기에 특정 정신병이라고 부르기가 애매하다. 고양이는 결국 일반인 개개가 내면에 억누르고 있는 양심이자 욕구이다.

고양이는 욕구 자제용일까? 누군가는 고양이를 죽이고 더 죽일 대상이 필요하다. 외부로 자신을 표출하고 싶어 고양이를 죽인다. 살인사건은 인간에게서 일어났지만 현대빌라 주민들은 고양이 살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살인과 별개로 아주 결백한, 고양이조차 죽일 수 없는 인간이 되고자 한다. 자신은 평범하고 악의가 없어 고양이조차 죽이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 욕구불만이 내 안에도 당신 안에도 찌꺼기처럼 쌓여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싸이코패스는고양이를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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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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