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포스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포스터. ⓒ CJ E&M


만들어지는 모든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 내가 좋아하고 아무리 아쉽다고 해도 언젠가 끝이 나게 돼있다. 대개는 16부작, 많게는 50부작까지 드라마는 편성이 나올 때부터 그 운명이 정해져 있다. 드라마가 끝난 후, 손에 잡힐 듯 친근한 캐릭터들이 빠른 속도로 멀어져갈 때면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무형'의 드라마를 '손에 잡히는' 드라마 DVD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종영 후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는 대개 DVD로 제작이 된다. 하지만 이를 제작사나 방송국에서 자발적으로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드라마의 중반 이후부터, 해당 드라마의 팬들은 디시인사이드 (개별) 드라마 갤러리에 모여 디비디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한다. 대체로 히트작이거나 배우의 팬덤이 강력한 경우 DVD 추진은 더 쉬워진다. 소위 '화력'이 좋다면 화질이 DVD보다 더 좋은 블루레이를 욕심내기도 한다.

이들은 갤러리 안에서 DVD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을 조직적으로 모아 팀을 꾸려서 따로 DVD 추진 카페를 개설한다. 해외에 DVD를 판매하기 위해 드라마 대사를 번역하는 번역팀, 드라마 DVD 추진을 홍보하기 위한 홍보팀 등으로 구성된다. 대체로 네이버보다는 다음에 주로 개설되는데 이는 2000년대 중반, 다음을 중심으로 개설됐던 팬카페에서 이어져온 흐름 탓이다. <오마이스타>는 최근 드라마 DVD 관계자들을 만났다. 익명을 전제로 이들은 취재에 응했다.

팬들의 요구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DVD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DVD ⓒ 진현엔터테인먼트


취미로 10년째 드라마 DVD나 블루레이를 사서 모으다가, 이제는 드라마 DVD 추진까지 깊이 관여하고 있는 A씨는 팬들이 요구하는 드라마 DVD 중 대표적인 사례로 마니아 드라마 중 하나인 <네 멋대로 해라>(2002)를 꼽는다. 이후 '다모폐인'을 양산한 드라마 <다모>(2003)부터는 팬들이 "본격적으로 발 벗고 나서 DVD의 부록으로 팬픽 등이 적힌 책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A씨)고 한다.

드라마의 팬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건 '감독판 DVD'다. 감독판 DVD의 경우 전개상 빠졌던 드라마의 장면이 들어간다. 여기에 팬들이 요구하는 여러 특전이 삽입된다. 대체로 작가의 대본집이나 카페를 통해 받은 질문지로 이뤄지는 감독, 작가, 주·조연 배우들의 코멘터리 영상이 포함된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블루레이로 제작된 <응답하라 1994>의 경우 무려 본편, 오디션 영상, 캐릭터 메이킹,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 등 681분의 영상이 수록됐다. 팬들이 요구하면 이른바 '담배 블러' 장면이 온전히 드러나거나 '삐'처리된 욕설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유통사는 중간에서 팬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배우 소속사나 감독 및 작가 본인, 방송사와 조율에 나선다.

히트작 = DVD 제작?

히트작이라고 해서 반드시 DVD 제작이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추진을 하는 팬들과 유통사, 방송사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발매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대체로 팬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유통사가 먼저 손을 내밀고 하자는 경우 십중팔구 실패한다는 것이 A씨의 지론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B드라마는 비록 시청률은 좋았으나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팬들은 "원작에 충실하지 않았다"며 재방송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DVD 제작을 거부했다. 결국 이 드라마는 DVD로도 출시되지 못했다. 간혹 음악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배우가 부르는 노래가 저작권이 저렴한 다른 노래로 교체되기도 한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한 장면.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한 장면. ⓒ 진현엔터테인먼트


방송사의 분위기도 질 좋은 DVD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상대적으로는 케이블 채널 쪽이 지상파에 비해 감독판 DVD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응답하라1988>의 경우 한 피디가 11개월 가까이 작업을 해 출시됐다. 다음 작품을 고민하면서 남는 시간에 작업을 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그 여건마저 어려울 경우 아예 내지 못하게 되거나 본편에 고작 몇 분 정도를 더 넣는 식으로 '얌체식' 감독판 DVD가 진행된다.

VHS 이후에 등장한 DVD의 수명은 앞으로 얼마 정도 될까.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상황에서 팬들의 수요가 있는 CD-ROM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주만 하기에도 불안한 것이 유통사다. 여기에 방송용 메이킹, NG 클립을 따로 제공하는 네이버 티비캐스트, 라이브 방송 등을 실시간으로 보내는 네이버 브이앱 등의 등장으로 점점 더 DVD의 입지는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유통사에서 일하는 B씨는 주요 드라마 DVD수출 시장이었던 중국을 얼마 전 단념해야 했다. 한국의 사드 배치로 인해 배우나 소속사만이 아니라 제작사나 유통사 측에서도 '낭패'인 일이었다.

드라마 DVD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나?
디시인사이드가 생기기 전 드라마 마니아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이전인 PC통신 세대는 동호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 피디와 작가가 함께 모인 상영회를 가졌고 드라마의 팬이 모인 그 상영회에서 방송국에서는 (DVD가 아닌) 드라마가 담긴 VHS테이프를 준비했다고 한다. 대중문화 평론가 C씨는 그 당시 PC통신을 통해 <거짓말> 동호회에서 활동했다고 전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노희경 작가는 예나 지금이나 드라마 마니아를 양산한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의 드라마 <거짓말>(1998)은 역사상 최초로 PC통신 동호회를 만들었던 기념비적인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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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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