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9  tvN 10 어워즈 <막돼먹은 영애씨> 김현숙

< tvN 10 어워즈>에서 '개근상'을 받은 배우 김현숙. ⓒ CJ E&M


출범 당시 tvN은 선정적이고 저질스러운, 그저 그런 케이블 채널 중 하나였다. 오늘날 웰메이드 콘텐츠로 공중파를 위협하는, '콘텐츠 트렌드 리더'이자 '아시아 넘버 원 채널'이 된 tvN의 위상을 생각해본다면, 자극적인 콘텐츠로 하루가 멀다 하고 징계와 제재를 받던 개국 당시의 모습은 '흑역사'에 가깝다.

"성인 채널 아니냐" 비난받던 tvN이 '웰메이드 채널'이 되기까지는 공중파 채널이 독점하고 있던 '드라마 왕국'의 지위를 빼앗은 요인이 컸다. 케이블 채널의 한계를 넘어, 김혜수, 전도연, 고현정, 최지우 등 공중파에서도 쉬이 만날 수 없던, 정상급 배우들이 tvN을 선택하기까지, tvN 변화의 중심에는 누가 뭐래도 <막돼먹은 영애씨>가 있었다.

모든 것이 '파격'이었던 <영애씨>

 <막돼먹은 영애씨>

배우 이영애와 동명이인인 노처녀(?) 이영애(김현숙 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막돼먹은 영애씨>는 수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동질감을 자아내며 사랑 받았다. ⓒ CJ E&M


<막돼먹은 영애씨>(아래 <영애씨>)는 tvN 개국 6개월만인 2007년 4월 첫 방송 됐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흔히 쓰이는 6mm 카메라를 이용한 관찰 촬영 기법과 내레이션을 사용한 독특한 형식으로 '다큐멘터리 시트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다. <영애씨>의 파격은 형식에 그치지 않았다.

톱 탤런트 이영애와 동명이인인 영애(김현숙 분)는 늘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가장 보통의 여주인공이다. 영애는 음식점, 학원, 체육관 등 동네 가게들의 전단이나 간판을 만드는 작은 광고회사의 디자이너다. <내 이름은 김삼순> 삼순이(김선아 분)나 <미생>의 안영이(강소라 분)처럼 어딜 가도 눈에 띌 만큼 비범한 능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책임감 있고, 일도 꽤 잘한다.

첫 직장인 '아름다운 사람들'부터 '그린기획', '낙원종합인쇄사'에 이르기까지, 회사 사람들이 벌려놓은 일의 뒤처리는 언제나 영애의 몫. 하지만 영애는 늘 후려치기 당하기 일쑤다. 예쁘지 않고, 싹싹하지 않고,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래서 영애의 고군분투는 영애 또래 여성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영애의 소소한 복수와 '들이 받음'이 대리만족을 안겨줬음은 물론이다.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영애씨>를 통해 tvN이라는 채널을 접했거나, 다시 보게 됐다고 말한다. <tv엔젤스>로 대표되는, 남성 시각에 맞춘 자극적 콘텐츠 채널로 인식되던 tvN이 오늘날 2040 여성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채널이 되기까지, <영애씨>의 지분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개국 공신 <영애씨>에게 '개근상'이라니요

'tvN10 어워즈' 막돼먹은 영애씨, 가족같은 배우들 9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덱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 tvN10 어워즈 > 레드카펫에서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팀의 배우 김현숙과 출연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tvN10 어워즈 >는 8일과 9일 이틀간 열린 < tvN10 페스티벌 >의 대미를 장식하는 행사로 tvN이 개국 10주년을 맞아 사상 처음으로 개최하는 시상식이다.

▲ 'tvN10 어워즈' 막돼먹은 영애씨, 가족같은 배우들 tvN 10주년 페스티벌에 참석한 <막돼먹은 영애씨> 팀. 왼쪽부터 송민형(영애 아버지 이귀현 역), 김정하(영애 어머니 김정하 역), 김현숙(이영애 역), 윤서현(윤서현 역), 정지순(정지순 역). ⓒ 이정민


지난 9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tvN 10 어워즈>는 지난 10년의 발전과 성장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김혜수·조진웅·이제훈·차승원·유해진·조정석·이성민 등 영화제에서도 한 자리에 모두 모이기 힘든 정상급 영화배우부터 서인국·정은지·류준열·혜리·고경표·손호준·김성균 등 tvN이 발굴하고 키워낸 스타들까지, 이날 행사는 국내 그 어떤 시상식보다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어워즈'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 시상식이라기보다, 페스티벌에 가까웠다. 참석한 스타들은 싸이와 이문세의 축하공연에 함께 일어나 춤 추며 환호했고, 테이블마다 올려진 샴페인과 다과를 즐기며 흥과 술에 취해갔다. 이들은 수상에 대한 기대보다 축하하러 왔노라, 즐기러 왔노라고 쿨하게 말했다. 매년 열린 시상식이었다면 마땅히 수상을 기대했을 훌륭한 작품들과 배우들이지만, 지난 10년을 총망라하는 자리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 마냥 쿨할 수만은 없는 이들이 바로 <영애씨> 팀이었다. 시즌제 드라마는 출연 배우들의 희생과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여러 차례 "언젠가 tvN 시상식이 생긴다면 수상을 기대할 만하지 않겠느냐"던 김현숙의 농반진반 발언이 아니더라도, tvN의 10주년을 총정리하는 자리라면, <영애씨>의 지난 10년 공로도 인정해줬어야 옳지 않을까? 최근 프로그램들의 혁혁한 성과를 무시할 수 없었다면, 적어도 <영애씨>에게는 '개근상'이라는 장난스러운 이름보단 '공로상'이 더 적합했을 터다.

"개그상, 진정 개그다"

 <막돼먹은 영애씨> 김현숙, 김정하, 송민형, 정지순, 윤서현.

김현숙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개그상, 진정 개그다"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게재한 사진. ⓒ 김현숙 인스타그램


<tvN 10 어워즈>가 끝난 뒤, 배우 김현숙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같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학교 다닐 때도 못 받았던 개근상 받았는데, 모 기자는 심지어 개그상이라는 오타인지 진심인지. 진정 개그다. 오늘 여러모로 잊지 않으리라."

"팬 여러분들 진심으로 모두 감사드립니다. 상 받으려고 <영애씨> 한 건 아닌데 사실 여러모로 민망했던 건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저와 함께 해주신 모든 스태프분들, 영애씨를 거쳐 간 모든 선후배 배우님들 감사드리고 무엇보다 이 팍팍한 삶 속에서도 잘 살아내고 계신, 또 영애씨와 공감하고 응원해주시는 모든 시청자분들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는 묵묵히 제 자리에서 여러분들 응원하겠습니다."

영애 일과 사랑, 응원해줄 이들은 결국 이 세상 영애씨들 뿐

 <막돼먹은 영애씨> 김현숙, 김산호, 최원준, 이승준, 이해영

지난 10년 동안 <영애씨>를 거쳐간 영애의 남자들. 영애의 남자들은 '다큐멘터리 시트콤'을 표방한 극 현실주의 드라마 <영애씨>의 유일한 판타지다. ⓒ CJ E&M


개근상을 받은 뒤 "tvN 공무원 김현숙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현숙은 "10년을 버티니 상을 준다. 이런 날만큼은 스스로에게 잘 버텼다고 칭찬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영애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캐릭터다. 캐스팅 단계부터 편견 없이 좋은 역할을 주신 tvN과 최초 기획자 송창의 님(전 tvN 본부장) 감사드린다"고 인사한 뒤, 영애씨다운 멋진 수상 소감을 이어갔다.

"영애의 모토는 퍽퍽한 삶을 살아내는 겁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 내주신 시청자분들께 공을 돌리고 싶습니다. 10년 동안 쉽지 않았지만, 시청자 여러분 덕분에 10년을 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세상 모든 영애씨들 파이팅입니다."

영애와 배우 김현숙은 동갑이다. 2007년 서른에 만나 함께 성장한 영애와 김현숙은 어느덧 서른아홉. 마흔을 앞뒀다. 영애와 김현숙이 모두 마흔을 두 달 앞둔 오는 31일, <영애씨>는 15시즌 방송을 시작한다. tvN은 <영애씨>의 지난 10년 노고를 '개근상'이라는 이름으로 퉁쳤지만, 영애는 언제나처럼, 주변의 후려치기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고 묵묵하게 제 길을 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영애의 반복되는 지지부진 연애사를 지켜보다 지쳐 한동안 멀리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영애의 고군분투를 지켜볼 생각이다. 여전히 사람에 치이고 사랑에 울 영애의 고군분투를 응원해 줄 이는, 결국 나와 같은 이 세상의 영애씨들 뿐일 테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5 공식 포스터

오는 31일 첫 방송을 앞둔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5 공식 포스터.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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