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에 내가 김영동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노래 <노량진 육교>는 전쟁 같은 하루를 사는 우리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다가 순간적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주인공들의 고등학생 시절 이후를 보여주며 빠르게 전개되는 17화의 한 장면에서 오묘한 섬광이 내 머리 속을 지나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재수생이 된 두 주인공이 노량진으로 향하고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재수생이 된 두 주인공이 노량진으로 향하고 있다. ⓒ tvn


덕선(혜리)과 동룡(이동휘)이 재수생이 되어 노량진 한샘학원으로 가는 지하철 장면. 10여 초간의 짧은 한 커트가 흐르는 동안 내가 서울 노량진에서 보냈던 한 해 동안의 기억 뭉치가 되살아났다. 동시에, 아직 노량진행 전철에서 내리지 못한 이 시대 청춘들의 한숨 소리가 노래가 되었다. 낄 자리를 못 잡고 지하철 칸과 칸 사이에 서 있는 '응팔'의 청춘들을 실은 전철은 여전히 2016년에도 낄 자리를 못 찾은 젊음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응답하라 노량진 육교

노량진역과 학원가를 잇는 노량진 육교에 내가 처음 발을 디딘 건 스무 살이 되던 해 2월이었다. 세상이 말하는 '정방향'의 삶에서 탈락된 재수생들의 '섬', 노량진. 직선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휘어진 낙서처럼 나는 그 곳에 흘러들어갔다.

노량진 제일학원 종합반에 등록하고 근처에 하숙집을 잡았다. 하숙집에 들어온 재수 동지들끼리의 분식 야참을 위해 깔아둔 신문지에는 우리의 신세가 보도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쓰레기 배출 증가량, 연 8%'

'쓰레기에서의 재생'을 위해 다닌 제일학원에는 외부 계단이 있었다. 수업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은 그 계단에 모여 철창 사이로 하늘(SKY)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그 곳을 '제일 감옥'이라 불렀다.

학원에는 3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배의 장수생들이 모여 있었다. 목표는 '좀 더 세상이 알아주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다. 어떤 형은 육교를 사다리에 비유했다. 별 볼일 없는 자기 집안을 남들만큼은 살만 하게 만들려고 사다리를 타듯 노량진 육교에 오른다고 했다.

'이 길을 가다 보면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내 생의 가장 길었던 한 해를 노량진 육교 위에서 응답 없는 질문을 던지며 보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뱉는 한숨이 내가 하루 동안 흘리는 소리의 전부가 될 즈음 나는 대학생으로 갱생 할 수 있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출구에 이어진 노량진 육교가 35년 만에 철거된다. 동작구는 노량진 육교를 오는 10월까지 철거한다고 26일 밝혔다. 구는 교통안전시설물 실시설계용역을 실시한 뒤 육교를 철거하고 횡단보도와 신호기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노량진 육교는 연장 30m, 폭 4m 규모로 지난 1980년 9월에 준공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노량진 육교. 2015.8.26

서울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출구에 이어진 노량진 육교가 35년 만인 2015년 10월 철거됐다. ⓒ 연합뉴스


표류하는 청춘들...잉여가 되다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가졌던 사회문제들에 대한 관심 때문에 사회의 근간인 경제를 공부하고 싶었다. '누구나 적절한 일을 해서 다 같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사회. '이것이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우는 그 시간 동안 내가 바라던 사회의 방향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잉여'들이 쌓여갔다. 위에도 아래에도. 서로 다른 형태로.

2000~2010년대를 지나오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소수만이 누리는 부의 바다는 넓어졌다. 그러는 동안 '고속 성장' 사회는 '고용 없는 성장' 사회로 변했다. 청년들을 비롯한 사회 약자들은 생존을 위해 바다를 건너는 난민들처럼 필사적으로 몇 안 되는 구명보트에 매달려야 했다.

내가 떠나온 노량진에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이들에게 재생의 기회를 준다는 학원들이 노량진에 많아지기 시작했다. 소위 명문대를 나와도 취직이 안 되니 대입 재수학원들은 사라져갔고 각종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들과 직업 학원들이 생겼다. 내가 다녔던'제일감옥' 학원 건물에는 경찰 준비 학원이 들어왔다. 노량진에서 재수생 신분을 청산했던 한 후배는 다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노량진 '섬'으로 재입도했다.

노량진 육교 위로 청년들의 정체가 늘어나고 있다. 녹슬어가는 육교가 감당할 수 있는 청춘들의 무게가 어느새 버티기 힘든 수준이 되었다. 불안한 정체에 지쳐 2013년에는 한 고시생이 노량진 육교 난간 아래로 뛰어내려 삶을 마감한 슬픈 소식도 있었다.

2015년 10월, 노량진 육교는 철거되었다. 도시의 경관을 저해하고 시설이 노후하여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어쩌면 이 말은 노량진 육교에 올라야 하는 이 시대 청년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일 수 있다. 

 김영동 프로젝트 디지털 싱글 1집 <노량진 육교> 앨범 이미지

김영동 프로젝트 디지털 싱글 1집 <노량진 육교> 앨범 이미지 ⓒ 김영동


노량진은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

나는 노량진 육교가 철거된다는 뉴스를 접한 후 이 육교가 상징하고 있는 청년 문제를 노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육교는 철거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서있는 흐릿하고 끝없는 불안한 길을 말하고 싶었다.

'이 길의 너머에서 우리는 안녕할 수 있을까?'

처음 떠올린 노랫말을 다듬고자 영감을 받으러 나는 올해 초에 노량진을 다시 찾았다. 길가에 서서 컵밥을 떠먹으며 수험서를 보고 있는 '플라스틱 수저'들 대부분의 운명은 일회용 비정규직이거나 아예 '사용'되지도 못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점점 희망을 가질 근거가 사라져 가고 있다. 거리에는 학원 홍보 전단들이 망한 나라의 지폐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헬조선'이란 표현의 사용을 조심스러워한다. '지옥'은 정말 엄청난 극단적 상황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어느새 그 상황 속에 놓여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지난 5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안타깝게도 절망사회의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나는 절벽같은 세상을 걷는 청춘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보컬을 찾기 위해 전문 가수가 아닌 보통의 청춘들이 부른 많은 노래 영상들을 검색해서 보았다. 그러다 한 대학 노래패 공연 영상을 보고는 취업 전쟁에 뛰어들 준비 중인 대학 4학년생 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보컬 의뢰를 위해 그녀의 페이스북 계정을 방문했다.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구의역 사고 희생자 어머니가 남긴 절규의 말들을 올려두었다.

"우리 사회는 책임감이 강하고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에게 개죽음만 남길 뿐입니다."

'하면 된다'는 신앙이 청춘들의 삶을 보여주는 암울한 지표들과 함께 무너져가고 있다. 우리는 수명을 다한 육교 위에 계속 올라야 하는가? 절망사회의 매뉴얼대로 계속 살아갈 것인가?

<노량진 육교>
작사, 작곡 _ 김영동
노래 _ 김영동 프로젝트 (객원보컬 미지)

끝없이 이어진 흐릿한 계단들
절벽같은 세상을 건너는 다리들

사라진듯 하지만 여전히 세상에
기대와 좌절 사이 놓여있구나

오늘도 한참 걸었지
오늘도 한참 걸었지

전쟁같은 하루
전쟁같은 하루

난 한참을 비틀거리며 걸었지
나에게도 새로운 날이 있을까

화려한 도시는 무심하게
빠르게 흘러가는데

야위어가는 꿈들
야위어가는 꿈들
야위어가는 꿈들
녹슨 육교

오늘도 한참 걸었지
오늘도 한참 걸었지

전쟁같은 하루
전쟁같은 하루

넌 어떠니 너의 시간들
넌 어떠니 너의 세계들

거리의 사람들 표정은
아무 일도 없는 듯 해도

어딘가 허전해보여
어딘가 속상해보여
어딘가 우울해보여
나처럼 너처럼

전쟁같은 하루
절벽같은 세상을 난 걷지
전쟁같은 하루
절벽같은 세상을 난

저 너머 어딘가에
푸른 내 봄날이
안녕하기를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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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혁'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노래 만들고 글을 쓰고 지구를 살리는 중 입니다. 통영에서 나고 서울에서 허둥지둥하다가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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