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처음 만난 두 남녀는 운명적인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만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여자의 아버지가 당한 억울한 죽음에 남자의 생부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고, 그 사실을 안 남자는 여자의 곁을 떠났다. 몇 년 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류 스타가 된 남자는 엄청난 빚에 허덕이는 외주제작 다큐멘터리PD가 된 여자를 만나게 되고, 다시 사귈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남자의 생부로 인한 두 남녀 간에 얽힌 악연을 떠나,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남자가 곧 죽는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KBS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는 극 중 신준영(김우빈 분)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톱스타 김우빈과 수지를 앞세운 드라마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착한남자> 이경희 작가가 집필을 맡았고, 중국 시장을 겨냥하여 100% 사전 제작으로 이뤄졌다. 이름난 한류스타와 유명 작가가 함께한 만큼, 방송국 안팎으로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것도 사실. 첫 회 12.5%(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한 <함부로 애틋하게>는 이후 시청률이 연이어 하락하며 한 자릿수로 떨어지기에 이른다.

한류 스타 둘을 동원해도 요지부동 시청률

 <함부로 애틋하게>의 부진은 배우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이 배우를 제대로 써먹지 못한 제작진의 안일함이다.

<함부로 애틋하게>의 부진은 배우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이 배우를 제대로 써먹지 못한 제작진의 안일함이다. ⓒ KBS


TV 채널의 다각화와 방송 시청 매체의 변화에 따라, 전반적으로 TV 시청률이 하락했다고 한들, <함부로 애틋하게>가 보여주는 부진은 의외로 다가온다. 특히 올해 초 송중기와 송혜교 등 한류스타가 출연하여 30%를 뛰어넘는 엄청난 대박을 기록한 <태양의 후예>와 비교해봤을 때 더 그렇다.

뚜껑을 연 <함부로 애틋하게>는 2016년에 만들어진 드라마가 아니라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제작된 2000년대 초반, 그 보다 거슬러 올라가 <별은 내 가슴에>가 방영하던 1990년대 드라마라도 믿을 정도이다.

그 정도로 오랜 세월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된 클리셰로 가득하다. 남자 주인공의 불치병 설정부터 시작해서, 출생의 비밀, 가족끼리 얽힌 악연으로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재벌 혹은 키다리 아저씨 판타지, 복잡한 사각 관계, 부담스러울 정도로 여자에게 매달리는 남자의 구애와, 남자들에게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는 생계형 캔디 여주인공까지…. 유례없는 폭염으로 푹푹 찌는 여름밤, 두터운 겨울옷을 입고 있는 극중 인물을 보는 것만큼 답답함을 유발한다.

누진세 걱정으로 함부로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무더운 여름날, 겨울에 제작되어 등장인물 모두가 외투로 꽁꽁 싸맬 수밖에 없는 드라마를 자신 있게 선보인 것은 단연 김우빈과 수지라는 선남선녀를 앞세운 로맨스의 애절함이었다. 1990년대 인기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와 이경희 작가의 대표작 <미안하다 사랑한다> 때 통했던 정서를 그대로 가져온 <함부로 애틋하게>는 2016년을 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도,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느꼈던 절절한 감성을 다시 한 번 느낄 것을 호소한다.

시대는 변했다, 제작진은 변하지 않았다

 김우빈과 수지라는 훌륭한 카드를 뽑아 놓고, 제작진은 그 수를 허무하게 날리고 말았다.

김우빈과 수지라는 훌륭한 카드를 뽑아 놓고, 제작진은 그 수를 허무하게 날리고 말았다. ⓒ KBS


하지만 강산이 세 번 변한만큼,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방영했던 2004년 겨울과 <함부로 애틋하게>의 2016년 사이 12년이라는 세월의 간격만큼, 드라마가 세운 전략과 실제 시청자의 니즈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뤄질 수 없는 남녀의 애절한 사랑은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소재이다. 그러나 서로에게 끌림을 느끼는 남녀의 섬세한 심리묘사 대신,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주변인들의 야욕과 음모, 이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니는 주인공들의 어리숙한 태도…. 이는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한 불시착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지난 17일 방영분에서, <함부로 애틋하게>는 서로 밀어내고 있지만, 마음은 숨길 수 없는 두 남녀의 필연적인 운명을 강조한다. 언제나 남자들에게 끌려 다니기만 했던 노을도 신준영을 향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애틋한 로맨스를 선호하는 시청자들에게 미남·미녀 배우가 주인공인 정통 멜로드라마는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다.

그런데 한류의 인기를 적극 반영한 것 외에는 이경희 작가의 전작, 더 나아가 1990년대나 유행했을 법한 멜로드라마의 정서에서 좀처럼 차별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함부로 애틋하게>가 2016년 트렌드를 제대로 읽고, 시대 정서를 관통하는 정통 멜로드라마로 바라볼 수 있을까. 김우빈과 수지의 아름다운 외모로도 감출 수 없는 분명한 한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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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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