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포스터. '악당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설정은 매력 있지만, 악당 캐릭터를 다루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한 감독 데이비드 에이어와 제작자 잭 스나이더의 실책으로 재미를 살리지 못한 영화이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전력 질주였습니다.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대본을 6주 만에 써야 했고, 그 사람들은 그냥 그걸로 갔죠.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면 모든 과정이 에이어 감독에게 더 나았을 겁니다." - 워너브러더스의 한 관계자


지난 3일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제작 비화를 공개한 미국 연예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 기사의 일부분이다. DC코믹스, 거대 영화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가 좋은 원작 캐릭터들을 가지고도 왜 이런 망작을 만들게 됐는지를 분석하는 내용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북미 개봉 2주 만에 3위로 추락했다. 한국에서도 개봉 첫날(8월 3일)만 1위였을 뿐 그 이후로는 다른 영화에 밀려 18일 현재, 9위(누적관객 수 185만 4647명)로 밀려나 있다. 흥행 면에선 나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 국내외 언론과 평단은 하나같이 작품의 만듦새가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익명 내부자의 말을 빌려 경영진의 성급함과 과도한 편집권 침해가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망쳤다는 요지로 보도했다. "애초 감독은 좀 더 어두운 분위기로 편집을 했으나 제작사는 외주사에 의뢰한 다소 밝은 분위기의 편집본을 택했다"며 <할리우드 리포터>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감독을 고용하는 최근 할리우드 제작사의 추세를 덧붙였다. 노련한 감독은 비싸고 다루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엄밀히 말해 현재 상영 중인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감독 본연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외주사의 결과물이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개봉 전 공개된 영화 예고편의 일부 장면이 개봉 후에 빠졌거나 다르다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에 분노한 관객들이 "기대했던 영화가 아니"라며 워너브러더스를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할리우드가 이 정도인데 한국은?

기시감이 든다. 본편과 다른 예고편 때문만이 아니다. 감독의 편집 과정에서 종종 예고편과 본 영화가 달라지는 일은 국내에서도 왕왕 있었으니 말이다.

문제의 본질은 자본의 간섭과 그 범위다. 우린 이미 이와 비슷한 사건을 여러 번 겪었고, 알게 모르게 유사한 일들이 현재진행형이다. 미국과 닮았다고 전혀 자랑스러워 할 게 아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다루기 쉬운 신진 감독을 통해 투자사와 제작사가 개입하는 일 등 말이다.

1948년 파라마운트 법 제정 이후 제작, 배급, 극장의 수직계열화가 사실상 금지된 미국이 이 정도다. 물론 1970년대로 넘어가며 규제가 일부 풀리긴 했지만 대기업 투자배급사가 극장 체인까지 보유한 한국에 비하면 여전히 할리우드는 영화계 종사자들에게 합리적인 산업 환경이다.

다만 자본 절대 우위 시장이라는 점에서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그 사례 중 하나가 됐다. 양대 코믹스사인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가 경쟁 관계인 가운데 월트디즈니와 손잡은 마블 코믹스의 영화가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 워너브러더스와 DC 입장에선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작 원칙을 무시한 자충수를 둬 버린 것이다.

사실 역사나 전통을 따져보아도 DC코믹스의 '슈퍼맨'(1938) 등의 캐릭터는 마블의 여러 캐릭터의 선배 격이다. 최초 히어로물 그러니까 '원조 프리미어'에 너무 자만한 탓일까. 후발주자인 마블 코믹스가 입체감 넘치는 다양한 영웅과 빌런(악당)을 활용한 각종 영화로 성공하는 동안 DC코믹스 영화들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실패 사례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이 영화는 역대 히어로 물 중 11위에 해당하는 성적(3억 3036달러, 북미 기준)을 거뒀다.

10위권에 든 작품 중 8편이 마블 코믹스 작품이라는 점에서 DC코믹스와 워너브러더스는 조급증을 느낄 만했다. 그걸 고려하더라도 자신들이 고용한 감독의 고유 권한을 뺏으면서까지 작품에 손을 댄 건 분명 관객을 우롱하고, 자신들의 소중한 유산을 스스로 망가뜨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시각이 강하다.

할리우드를 욕하는 건 일단 여기까지. 아래에 언급할 세 사건은 자본력으로 영화계 종사자들을 쥐고 흔드는 한국영화계의 치부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통해 다시 한 번 반성해보자.

 이명세 감독의 하차 논란을 빚었던 <미스터K>는 <협상종결자>로 제목을 바꾸고 다시 촬영을 재개한 바 있다.

영화 <미스터K>는 설경구, 문소리가 전면에 나선 블록버스터 영화로 최초 기획됐다. 이명세 감독이 하차하면서 장르와 그 내용이 대거 바뀌게 된다. ⓒ CJ엔터테인먼트


[하나] 영화 <스파이>(2012) 그리고 이명세 감독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형사 Duelist>(2005) < M >(2007) 등으로 특유의 영상미를 선보인 이명세 감독은 <미스터 K>라는 작품 전까지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미스터 K>에 그가 합류했고, 제작 초기만 해도 기대가 높았다. 독특한 미학의 이명세 감독과 <색즉시공>(2002) <해운대>(2009) 등 여러 흥행작을 발표해 온 JK필름의 만남이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섣부른 기대였을까. 한국과 태국에서 총 10회 차의 촬영을 진행한 직후 돌연 모든 과정이 중단됐고, 이명세 감독이 하차하기에 이르렀다. 약 100억 원가량의 제작비가 책정된 해당 작품은 CJ 엔터테인먼트가 메인 투자사였다. 이미 30억 원 정도를 쓴 상태에서 결국 <해운대> 조감독 출신인 이승준 감독이 대신 프로젝트를 맡았고, 영화 제목 또한 <협상종결자>, 그리고 최종적으로 <스파이>(설경구, 문소리 주연)로 변경된 후 관객과 만났다. 애초 블록버스터로 기획됐으나 공개된 영화는 오히려 소소한 코미디에 가까웠다.

제작사 측에서 내놓은 이명세 감독의 공식적인 하차 이유는 "제작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서"였다. 30년 경력의 베테랑인 이명세 감독은 흔히 투자사에서 꺼리는 '통제가 어려운' 감독이었고, 당시 현장 역시 작품성에 방점을 찍은 이명세 감독에게 불만이 쌓였던 투자사 및 제작사 측의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는데 결국 사달이 났다. 이 사건은 감독 고유 권한과 투자 및 제작사의 간섭 범위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둘] 영화 <남쪽으로 튀어>(2013) 그리고 임순례 감독

일본 유명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남쪽으로 튀어>(2013) 역시 제작사와 감독 간 갈등이 불거진 사례다. 총 60회 차 중 3분의 2지점을 지난 상황에서 임순례 감독이 돌연 현장을 떠났고, 수일간 이견 조율 과정을 거친 이후 임순례 감독이 다시 복귀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제작 과정 중 불거진 이견은 바로 감독과의 합의 없는 현장 촬영이었다. 당시 영화감독조합에 따르면 임순례 감독을 배체한 채 제작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현장 촬영을 진행했고, 여기에 임 감독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주연 배우와의 불화설 및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압력 논란 등 영화는 개봉 전부터 여러 악재에 시달렸다.

당시 메인 투자사는 역시 극장 체인을 보유한 롯데엔터테인먼트였고, 제작사 측에서 투자사의 눈치를 너무 본 나머지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일각의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촬영장 복귀에 대해 임순례 감독은 영화 제작보고회 자리에서 "어떤 감독이든 사소한 이유로 현장을 떠나진 않았을 것"이라며 "현장에 감독이 없다는 게 영화 제작 전반에서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알기에 여러 부분을 조율하고자 했고, 책임을 마무리하려 돌아간 것"이라 밝혔다.

 23일 오후 서울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영화<남쪽으로 튀어> 시사회에서 임순례 감독이 질문에 답하는 안봉희 역의 배우 오연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짓고 있다.

지난 2013년 1월 영화<남쪽으로 튀어> 시사회 현장. 왼편의 임순례 감독의 모습. ⓒ 이정민


[셋] 영화 <동창생>(2013) 그리고 박신우 감독

박신우 감독 하차 건도 앞선 사건과 같은 맥락이다.

쇼박스가 메인투자사였던 해당 작품은 아이돌 그룹 빅뱅의 탑이 주연을 맡으며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2012년 7월경 촬영을 시작한 <동창생>은 태풍으로 한 차례 촬영이 중단됐고, 돌연 박신우 감독에서 박홍수 감독으로 바뀌며 논란이 불거졌다. 제작사 더 램프는 당시 "시나리오상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박신우 감독이 하차했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두 감독과 차이가 있다면 박신우 감독은 이제 막 상업영화로 진입하기 시작한 인물이었다는 점. 첫 장편 영화 연출작인 <백야 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로 인정받은 이후 3년 만의 연출이라 평단의 기대 또한 컸는데 하차의 아픔을 겪었다.

영화감독조합은 이견에 대해 충분한 협의 과정이 있었는지 아닌지와 투자사의 의향이 영향을 미쳤는지 아닌지 등을 제작사와 투자사에 공개 질의하기도 했다. 이에 쇼박스는 언론을 통해 "투자사가 돈을 집행하는 입장인 만큼 감독 교체 안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확인을 받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감독 교체는 제작사 대표의 판단"이라 답한 바 있다.

이상 언급한 세 사건은 그나마 표면적으로 드러난 갈등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분명 모든 제작 과정이 수월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각자 위치와 책임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존중하느냐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위시한 이런 논란은 흥행우선주의와 자본제일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보인다. 창의력의 산물인 영화가 산업 영역에서 나름의 생명력을 유지할 방법은 전혀 없는 걸까. 상업성과 거대 자본의 투자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교훈 정도는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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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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