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 째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7월 20일 개봉한 <부산행>을 보러간 사람이 지난 8월 7일에 천만 명을 넘었다. 3주가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세운 기록이다. 언론매체는 천만 영화 등극 소식을 앞 다투어 타전했고, 흥행 원인을 분석하는 기사들로 분분하다. <부산행>은 발빠른 흥행세로 질주했지만 놀라울 것은 없다. 개봉일자에 앞서 유료 시사회를 다수 진행하는 변칙개봉에 힘입은 기록이다. 뿐만 아니다. 약간 시니컬하게 말하는 걸 허락해준다면, 천만 흥행은 철마다 쟁쟁거리는 매미소리 만큼의 감흥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아직도 천만이란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사가 있다면, 인터넷 브라우저 '뒤로 가기' 버튼을 재빨리 누르는 게 좋다.

천만 영화가 사회현상이라는 건 오래된 미신이다. 2012년 이후 한국 관람 시장에는, 외국영화와 한국영화를 합쳐 12편의 천만 영화가 나타났다. 천만에 근접한 구백만 영화는 4편이다. 4년 동안 1년에 4번꼴로 사회현상, 준사회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그것도 여름·겨울 극장가 성수기에 무더기로 말이다. <명량>이 신드롬을 일으킬 때 확신했다. 1700만 관객이라는 천문학적 숫자를 남겼는데, 아무리 영화를 뜯어봐도 거기 의미를 부여할 만큼 콘텍스트와 호응하는 대목이 없었다. 너무 내용이 없어서 뭐라도 끼워 맞추면 다 말이 되는 수준이었다. 언론 지면은 그런 내용 없는 기사들로, 반값 할인하는 커피 전문점 매장처럼 우글거렸다.

천만이란 숫자는 더 이상 산업적 미스터리도 집단 무의식의 표출도 아니다. 여러 가지 변수로 해명할 수 있는 정례화된 산업적 현상일 따름이다. 거대한 흥행의 불꽃이 터질 때마다 축전과 의미부여가 빗발치지만, 현재 한국영화는 산업적 문맥 위에서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천만영화가 사회현상이라는 건 미신이다

<부산행> 800만 관객 인증 사진 <부산행> 감독 연상호와 출연배우들이 영화가 800만 관객을 모으자 기념하는 사진을 함께 찍었다.

▲ <부산행> 800만 관객 인증 사진 <부산행> 감독 연상호와 출연배우들이 영화가 800만 관객을 모으자 기념하는 사진을 함께 찍었다. ⓒ NEW


산업이 흑자로 돌아선 2012년 이후 한국 영화산업의 근황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하나, 산업 규모가 증대했다. 총 관객 수와 영화 산업 매출액은 2011년 대비 2012년 큰 폭으로 뛰었고 4년 간 꾸준히 증가하여 2억 관객과 2조 원을 넘었다. 둘, 스크린 독과점 심화다. 해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2015년 할리우드의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2016년 충무로의 <검사외전>이 각각 1800개 스크린을 사이좋게 먹어치웠다. 마지막, 한국영화 제작비 증가 추세다.

2015년 영화산업 성적표를 들춰보자. 먼저, 총 관객수와 극장 매출액·산업 매출액은 전년에 이어 늘었지만, 한국영화 투자 수익률은 오히려 추락했다. 2014년 0.3%에서 -7.2%로 떨어졌고 2012년 이후 4년 만의 적자다. 다음으로, 외국영화와 다양성 영화가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지분의 증가세를 안정화했다. 외국영화 관객 수는 1억400만 명으로 전년의 1억700만 명에 이어 1억 고지를 사수했다.

전통적으로 외국영화는 영화산업이 침체기일 때 한국영화에 대한 반사 이익을 얻어 점유율을 높였지만, 지금은 활황임에도 몇몇 대작에 의존하는 한국영화보다 탄탄한 점유율을 차지한다. 다양성 영화 관객 또한 2013년 370만 명에서 다음 해 1400만 명으로 급증한 후 올 해도 8백만 명을 유치했다. 다양성 영화는 소위 아트하우스 무비와 한 패로 묶어볼 수 있을 텐데, 둘을 상영하는 멀티플렉스 플랫폼 CGV 아트하우스는 한국 배급사 중 5위의 실적을 올렸다. 메이저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에 불과 관객 점유율 0.3% 뒤졌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블록버스터로 분류되는 총 제작비 80억 이상의 한국 영화가 13편에서 19편으로 크게 늘었다.

이상의 지표가 뭘 말할까. 우선, 확장된 산업 규모가 안정화됐다. 2012년 급격한 호황의 파도를 탄 후 언제 다시 충무로 거리에 불이 꺼질지 알 수 없다는 신중론이 가물지 않았지만, 적어도 수치적이고 외형적으로 산업은 비가역적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 올해 논란 속에 원성을 산 CGV의 좌석 차등제 시행도 그렇다. 예상 가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떠나가지 않을 거란, 혹은 못할 거란 든든한 속셈이 뒷받침돼 있을 거다.

하지만 말했듯이 수치적이고 외형적인 호황이다. 2014년에도 2015년에도 한국영화 1억 관객의 상당수를 성수기 텐트폴 무비, <명량>과 <국제시장>, <암살>과 <베테랑> 같은 천만 영화가 떠받쳤다. 전체 수익구도도 부익부·빈익빈이다. 작년, 제작비 80억 이상의 대작들만 26.1%의 평균 수익률을 챙겼고, 그 아래 모든 구간의 영화가 평균 수익률 마이너스였다. 부의 규모는 고래등 기와집 같이 쌓였지만, 소수의 시장 참여자가 그 기와집의 주인이다. 분배효과는 피라미드 밑바닥으로 흘러내리지 않으며, 몇 편의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독과점은 불균형의 파수꾼이다. 재벌 중심의 한국 시장경제 구조가 영화산업 안에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을 순환 관계로 잇는 바늘구멍은 바로 제작비 증가 추세다. 소수의 대작이 시장을 견인하는 구조가 고착되어가는 상황이다.

'산업 내적·외적 요인으로 관객이 늘었다 → 기대이익이 커지며 제작비도 늘었다 →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스크린을 몰아준다 → 이렇게 흥행한 영화가 사회현상으로 회자되며 이슈와 관객을 부른다 → 흥행 최고구간을 경신한다 → 다시 제작비가 는다.'

이 순환 도식이 반복되고 현상화된 것이 천만 영화 정례화라는 사태다.

관객 취향의 분단과 획인화를 부르는 구조

 영화 <부산행> 촬영 도중 이미지. 영화 <부산행>이 지난 7일,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 <부산행> 촬영 도중 이미지. 영화 <부산행>이 지난 7일,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 NEW


이런 악순환은 관객 취향의 분단과 획일화를 부르는 한편 그에 의해 되먹임된다. 2012년부터 관객 수가 늘어난 직접 요인은 40·50 관객의 관람 시장 유입이다. 제작사는 더 많은 관객을 더 쉽게 모을 수 있는 상투적 흥행코드를 재탕한다. 2014년부터 충무로 영화의 획일화와 저질화를 냉소하는 여론이 만연했다. 대략 이 때부터 할리우드 영화와 다양성 영화·아트하우스 무비 시장이 성장한 건 의미심장하다. 한국 영화산업은, 전자에는 새로움을 후자에는 다양성을 '외주'하는 모양새로, 구태한 콘텐츠를 찍어내는 자폐적 구조를 고착하고 있다(과연 그것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다양성 같은 가치를 추구하느냔 둘째 치고). 나이 든 관객층이 메인 소비자가 되면서 할리우드 영화에는 젊은 관객들이, 다양성 영화·아트하우스 무비에는 취향의 획일화에 저항하는 자의식을 지닌 관객들이 모이는 것 같다.

올 여름에도 여지없이 출현한 천만 영화 <부산행>을 보면서도 아쉬움이 치밀었다. 많이 얘기된 사실이거니와, <부산행>이 특별한 건 장르의 새로움이다. 앞서 한국 영화의 구태함을 날 서게 질타했지만, 거기 예외가 있다면 제작비 증가에 따라 장르물의 제작 반경이 개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좀비물은 그 안에서도 유례가 없다. 규모를 갖춘 상업영화로 제작된 적 없을 뿐더러, 성수기 극장가를 찾는 가족 관객에게 생경한 장르다. 이런 싱싱함이 낡은 용기에 담기면서 시든다.

지난 몇 년 간 영화계를 장악해 온 흥행도식은 코믹-신파-가족-사회비판이다. <부산행>은 이 도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단순하고 숨 가쁘게 달려가던 중반까지의 집중력은 가족사별의 전개로 접어들며 온 데 간 데 없이 흩어지고 지루한 눈물바다에 빠진다. 연상호 감독은 신파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등장인물을 너무 많이 죽이는 한편 유치하고 작위적인 시추에이션을 꾸민다. 능력주의 풍조, 세월호 사태를 연상케 하는 사회비판 코드 또한 사회의 표면을 알기 쉽게 반사하는 권선징악의 우화에서 끝난다. 디렉션의 미숙함에서 기인하는 듯한 연기력 문제와 단순한 액션 전개 등 몇몇 단점을 논외하면, <부산행>은 이것 보다는 잘 만들 수 있었던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파 연출 편향은 상업영화의 만듦새를 총체적으로 해치는 진범이다. 이런 장면은 상업적 필요로 투입되므로 서사맥락 및 주제의식과 해리돼있다. 관객이 충분히 울 수 있는 상태를 목표로 하니까 편집리듬이 늘어지고 연출이 작위적이다.

서론에서 본론까지 준수하던 영화가 결론에 이르러 몇몇 신파 장면 때문에 구조적 완결성이 무너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등장인물마다 돌림 노래하듯 오열하던 <사도> 후반부가 그랬고 <부산행> 후반부도 그 매뉴얼을 벗어나지 못한다. 상업영화 지형 안에서 새로운 걸 보여줄 것 같은 영화마저 구태함에 빠지도록 낚아채는 개미지옥이 '신파 코드'다. CJ 같은 제작사가 '문화강국'을 이끄노라 진실로 자부한다면 천정부지의 흥행 수치를 자축하는 걸 넘어 상업성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500~800만 중간벨트'가 중요하다

영화 <부산행> 포스터 좀비물을 표방한 대작 <부산행>, 이 영화는 좋은 영화일까 아닐까.

▲ 영화 <부산행> 포스터 좀비물을 표방한 대작 <부산행>, 이 영화는 좋은 영화일까 아닐까. ⓒ NEW


이런 악순환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구조적으로는 소수의 대작이 견인하는 시장구조를 개편하고 제작비와 흥행 양 면으로 산업의 중간 벨트를 다져야 한다. 한편, 악순환에 시멘트를 붓고 있는 수직계열화 스튜디오 시스템에 균열을 뚫고 연출가의 개성과 재량권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몇 가지 희소식이 있다. 작년 후반기부터 <사도> <검은 사제들> <내부자들> <곡성> <아가씨> 같은 500만~800만 라인의 중간 벨트가 부활했다. 특히 <곡성>과 <아가씨>는 주목할 만하다. <곡성>은 흥행코드 재탕이 아닌 파괴적 인상과 독특한 형식미로 관객을 모았다. 일종의 열린 구성 때문인지, 관객과 평단이 입을 모아 영화에 관한 토론의 장을 열었는데, 구매후기를 읽은 인파가 극장에 모이면 흥행 숫자만 남기고 사라지던, 담론이 없는 영화계 풍경을 뒤집는 고무적 사건이다. <아가씨> 또한 동성애라는 소재, 농밀한 성애묘사, 가부장제도를 비판하는 주제의식이라는 비주류 코드를 상업적으로 유능하게 풀어내면서도 작가적 색깔을 여물게 칠해 상투적 연출코드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반기에는 길었던 할리우드 여정을 뒤로 하고 박찬욱에 이어 김지운이 돌아온다.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밀정>이 자존심 있는 만듦새로 좋은 스코어를 거두길 기대한다. 나홍진과 박찬욱, 김지운 같은 감독들이 현재의 관람 지형 속에서도 상업성과 작가성이 만날 수 있음을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건 기쁜 소식이다. 관객과 스튜디오가 전향적 태도로 반응하는, 구조적개편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건 알람시계처럼 울리는 천만 영화 축포가 아니라, 그 뒤에서 움직이는 이런 동정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지난 5월 <직썰>에 기고했던 원고를 시의성에 맞춰 재구성하고 대폭 보강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부산행> 천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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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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