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틸 이미지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플래그 대령, 그의 보디가드 카타나. 이들은 기대했던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했다.

▲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틸 이미지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플래그 대령, 그의 보디가드 카타나. 이들은 기대했던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했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전 세계인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국내에선 번역 논란까지 일어나며 관심을 모았던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뚜껑을 열었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영화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이어지며 시작한다. 슈퍼 히어로들을 대신해 슈퍼 악당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캐릭터 구성은 엉성하며 내용 전개는 개연성이 없고 개봉 전부터 전 세계인이 코스프레할 정도로 열광했던 '할리 퀸(마고 로비 분)'은 순종적 여성캐릭터로 전락했다. 애초 번역 논란이 무의미할 정도로 말이다.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세상에 내놓으며 마블을 적대시하는 등 자신감을 내비쳤다고 하는데, 그의 이불은 무사한지 모르겠다.

영화 초반 캐릭터 소개하는 부분이 제일 재미있다

함께 모인 '수어사이드 스쿼드' 마녀 인첸트리스를 물리치기 위해 투입된 수어사이드 스쿼드, 플래그 대령, 보디가드 카타나.

▲ 함께 모인 '수어사이드 스쿼드' 마녀 인첸트리스를 물리치기 위해 투입된 수어사이드 스쿼드, 플래그 대령, 보디가드 카타나.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영화 초반에 아만다 윌러(비올라 데이비스 분) 국장이 본인이 꾸린 '수어사이드 스쿼드' 특공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영화를 이끌어갈 '슈퍼 악당'들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각 악당들의 이름과 능력, 내밀한 개인사 등을 감각있게 소개한다. 이 부분의 분량은 약 40분 정도다. 이 40여 분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이어지는 내용도 있어 흥미롭다. 그러나 이 영화의 재미와 흥미는 여기서 끝난다.

슈퍼 악당들은 아만다 윌러 국장의 지시에 따라 세상을 지배하려는 마녀 인첸트리스(카라 델레바인 분)와 싸우게 된다. 악당들은 인첸트리스가 보낸 병사들을 각자의 능력으로 죽인다. 이 과정 중에 선과 악이 묘하게 뒤바뀐다. 청부살인업자인 데드샷(윌 스미스 분), 은행 털이범 캡틴 부메랑(제이 코트니 분), 분노를 조절 못해 온 가족을 불 태워 죽여버린 엘 디아블로(제이 헤르난데즈 분) 등은 인첸트리스와 싸우며 은근슬쩍 선한 캐릭터로 변모된다. 이들은 분명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범죄자들이다. 그런데 마녀와 싸운다는 이유로 이들은 영화 안에서 영웅이 된다. 영화가 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대목이다.

악당들이 마녀와 싸우는 과정도 극적이지 않다. 액션도 어디서 본 것 같은 뻔한 장면들이 판을 친다. 화려한 캐릭터들이 미국 시내 한복판에서 싸우는 장면을 이렇게 지루하게 그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악당들은 관객이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인다. 적당히 싸우고 적당히 이긴다. 데드샷의 딸이나 디아블로의 가족 이야기 등 간간이 악당들의 개인사를 덧입혀 관객의 연민을 자아내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연민은커녕 영화를 더 정신없게만 만들 뿐이다. 이것저것 다 집어넣었지만 하나도 조화롭지 않은 이야기가 돼버려 지루함만 더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나쁜 놈들은 세상을 구한 게 아니라 세상에 복종했다

영화 <수어사이스 스쿼드> 캐스트 포스터 나쁜 놈들은 세상을 구한 게 아니라 세상에 복종했다.

▲ 영화 <수어사이스 스쿼드> 캐스트 포스터 나쁜 놈들은 세상을 구한 게 아니라 세상에 복종했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나쁜 놈들이 세상을 구한다."

영화 포스터에 나와 있는 문구다. 그러나 악당들은 세상을 구한 게 아니라 세상에 그냥 복종했을 뿐이다. 미 정부 고위층과 미군이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움직여줬다. 그들이 복종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체내 폭파장치 때문이다. 미 정부는 '수어사이드 스쿼드' 팀을 출격시키며 그들의 몸 안에 폭파장치를 삽입했다. 그들이 도발을 할 경우 언제 어디서든 그 장치를 폭파시켜 살해할 계획으로 삽입한 것이다. 악당들은 이 폭파장치 때문에 일탈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할리 퀸'이다. 할리 퀸의 연인 조커(자레드 레토 분)는 할리 퀸의 몸 속 폭파장치가 작동되지 않도록 손을 쓴다. 할리 퀸은 자유의 몸이 되어 조커가 탄 헬기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아만다 윌러 국장은 바로 그 헬기를 격추시킬 것을 지시한다. 헬기는 격추당했고 할리 퀸만 헬기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 할리 퀸은 조커가 죽었다고 믿게 된다. 연인 조커가 죽었지만 그녀는 이미 자유의 몸이 됐으므로 어디든 도망쳐도 되는데, 다시 '수어사이드 스쿼드' 팀으로 돌아간다. 말괄량이처럼 인사를 건네며 다시 야구방망이를 집어든다. 할리 퀸은 '자발적 복종'을 선택한 것이다. 전혀 개연성 없는 전개다.

이렇게나 온순하고 순종적인 악당들은 마녀 인첸트리스와 싸우는 와중에 뜬금없이 '동료애'를 발휘한다. 그 어디에도 이들이 동료로서 끈끈한 우정을 쌓는 장면이 없었는데 갑자기 동료를 우선시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데드샷은 아만다 윌러 국장으로부터 조커의 품으로 도망치는 할리 퀸을 사살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데드샷은 "나에게 잘못한 것 없는데요" 라며 명령에 불복한다. 윌러 국장은 "딸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데드샷은 "그럼 해야죠" 라며 바로 명령에 순응한다. 그런데 일부러 조준을 잘못한다. 할리 퀸은 데드샷 덕분에 산 것이다. 또한 영화 말미에서 할리 퀸은 마녀 인첸트리스에게 "내 친구들을 괴롭혔잖아!"라 소리치며 마녀를 칼로 베고 심장을 꺼내온다. 디아블로는 마녀의 오빠와 싸우느라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다. '자살 특공대'라는 팀의 의무를 가장 잘 수행한 인물인 것이다.

악당들은 체내 폭파장치가 제거돼도 복종했으며, 개연성 없는 동료애에 감복하며 서로를 살리고 서로를 위해 희생한다. 압권은 마지막 장면이다. 마녀를 물리친 악당들에게 윌러 국장이 내리는 포상은 '10년 감형'이다.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다. 세상을 지배하려는 마녀와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다시 감옥으로 가라니 억울할 법도 하다. 그런데 악당들은 이에 순종하며 대신 감옥에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TV를 넣어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왕년에 청부살인을 하고 은행을 턴 악당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순종적이다. 캐릭터들을 결국 미국 정부와 군대의 힘에 굴복시켜놓고 '나쁜 놈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관객을 우롱하는 것이다.

순종적이고 예쁘기 만한 '할리 퀸'

매력적이지 않은 할리 퀸 '할리 퀸' 캐릭터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그려놓은 건, 이 캐릭터를 성적으로 소비하기 위함이었을까.

▲ 매력적이지 않은 할리 퀸 '할리 퀸' 캐릭터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그려놓은 건, 이 캐릭터를 성적으로 소비하기 위함이었을까.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가장 최악인 것은 이 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다. 영화 제작 전부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할리 퀸은 영화 속에서 예쁘고 순종적인 여성 캐릭터로 그려졌다. 국내 개봉 전 번역 논란이 무의미할 정도로 할리 퀸 캐릭터는 남성에게 순종적이다. 영화 초반 캐릭터 소개 때부터 "사내 연애하다 망한" 인물로 소개된다. 정신과 의사였던 할리 퀸이 환자인 조커와 사랑에 빠지며 정신이 이상해진 것을 두고 하는 소리다. 할리 퀸은 연인인 조커에게 인생을 내던지고 오로지 그를 위해서만 산다. 그의 말이면 무엇이든 따르며 오직 그의 도움와 구원을 바라는 인물로만 묘사된다. 각종 예고편에서 할리 퀸의 명랑함과 거침없는 성격만을 내보낸 게 '낚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심지어 할리 퀸의 소망이 담긴 인생관조차 순종적이다. 악당들이 마녀 인첸트리스에게 도착했을 때 마녀는 악당들을 굴복시킬 목적으로 그들의 정신을 교란시킨다. 그래서 악당들은 각자 자신의 소망이 담긴 환영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게 된다. 이 때 할리 퀸은 갓난아기를 안고 정장을 입은 남편의 출근을 배웅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전형적인 어머니와 아내 상이다. 발랄하고 유쾌한 할리 퀸 캐릭터와 전혀 거리가 먼 인생관이다.

온 가족을 불 태워 죽인 디아블로의 환영은 이와 대조적이다. 그는 자신이 실수로 죽인 자녀들과 아내가 살아났으면 하는 소망을 가진다. 그의 상상 속에서 자녀들은 곤히 잠들어 있다. 그의 아내는 맥주를 들고 그에게 다가와 "애들 재워놓고 사랑을 나눌까?"라고 이야기 한다. 여성의 소망은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것인데 남성의 소망은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아내를 보는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너무나 성차별적인 장면이다.

할리퀸은 첫 장면부터 남성들을 유혹한 후 유혹당한 남성들을 곤경에 빠뜨려온 인물로 묘사된다. 이렇게 싸우는 장면이 있는 영화에서 싸움의 당사자인 여성은 '미인계를 쓰는 인물'로밖에 묘사할 수 없는 걸까. 왜 여성은 미인계를 써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인물로만 그려져야 하는 걸까.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그려지는 마당에 할리퀸을 미인계를 써서 생존하는 인물로 그려놓은 건 시대착오적이다. 이러려고 할리퀸을 예쁘게 만든 것인가.

이 영화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은 아만다 윌러 국장을 제외하고 모두 성희롱을 당한다. 할리퀸이 옷 갈아입는 모습을 모든 남성 군인들이 대놓고 쳐다본다. 또한 릭 플래그(조엘 킨나만 분) 대령의 보디가드인 일본인 여성 카타나(카렌 후쿠하라 분)에게 캡틴 부메랑은 "저런 광녀가 잠자리에서 죽여줘"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에 의해 철저하게 성적 대상화됐고 성적으로 소비됐다.

'할리 퀸'을 대표적인 캐릭터로 내세우며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이렇게 망했다. 지루한 연출, 개연성 없는 전개, 세상을 구했다면서 결국 미국에 굴복한 악당들, 그리고 최악의 여성 캐릭터 묘사까지. 할리 퀸의 '예쁨' 말고는 건질 게 없는 영화다. 이런 영화에 에미넴의 '위드아웃 미(Without Me)', 롤링스톤즈의 '심파시 포 더 데블(Sympathy For The Devil)',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등의 명곡들이 삽입됐다. 이 명곡들이 아까울 정도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영화 할리 퀸 마고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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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산책을 좋아합니다. 준이, 그리, 도비와 삽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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