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쳇 베이커(Chet Baker, 1929~1988)의 전기 영화 <본 투 비 블루>가 국내에 소개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쳇 베이커는 널리 알려진 바대로 재즈 역사의 한 획을 명 트럼펫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였다. 영화배우 못잖은 매력적인 외모와 화려하진 않지만 살살 녹는 목소리, 그리고 빼어난 멜로디 감각의 연주까지 선보였던 그는 1950년대 웬만한 팝스타 이상의 대접을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여타 재즈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쳇 베이커 역시 약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1960년대 중반 이후 슬럼프에 빠지고 만다. 마약 중독 외에 선술집에서 폭행당해 치아를 잃으며 특유의 외모는 더는 그의 것이 되지 못했다. 떠돌이 뮤지션으로 말년을 쓸쓸히 보내다가 1988년 5월 1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비극적인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비록 59년의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그가 남긴 음악만큼은 지금도 전 세계 많은 재즈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 속에선 주연을 맡은 에단 호크 및 음악 감독 데이비드 브레드의 연주로 재현된 그의 명연들을 살펴보자.

[하나] My Funny Valentine

 'My Funny Valentine'의 원작이 수록된 < Chet Baker Sings > 음반 표지. 여러 버전이 있지만 그가 부른 버전이 유독 사랑받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My Funny Valentine'의 원작이 수록된 < Chet Baker Sings > 음반 표지. 여러 버전이 있지만 그가 부른 버전이 유독 사랑받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 유니버설뮤직


프랭크 시나트라, 듀크 엘링턴, 엘라 피츠제럴드, 빌 에반스, 사라 본 등 어지간한 재즈 거장치고 이 곡을 연주하지 않은 이가 없을 만큼 재즈 고전이 된 명곡이 바로 발라드 '마이 퍼니 발렌타인(My Funny Valentine)'이다. 그중에서도 쳇 베이커의 버전이 유독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특유의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와 곡이 주는 정서가 잘 맞아떨어진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본 투 비 블루>에선 주연 배우 에단 호크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1954년 발매된 <쳇 베이커 싱스(Chet Baker Sings)>에서 이 곡을 처음 노래했고 여러 음반과 공연에서도 새롭게 연주한, 쳇 베이커를 대표하는 상징 곡으로 자리매김한다. 워낙 많은 편집 음반에서도 'My Funny Valentine'을 수록하고 있으므로 비교적 접하기 쉬운 곡 중 하나다.


[둘] She Was Too Good To Me

 < She Was Too Good To Me > 음반 표지. 원래 여성 화자가 부르는 노래였으나, 쳇이 부르면서 제목을 바꾸었다.

< She Was Too Good To Me > 음반 표지. 원래 여성 화자가 부르는 노래였으나, 쳇이 부르면서 제목을 바꾸었다. ⓒ 소니뮤직코리아


1974년 발표된 정규 앨범 <쉬 워즈 투 굿 투 미(She Was Too Good To Me)>의 주제곡으로 'My Funny Valentine'의 원작자인 리처드 로저스 & 로렌즈 하트의 작품을 재해석했다. 원곡은 '히 워즈 투 굿 투 미(He Was Too Good To Me)'인데, 쳇은 남자의 감성으로 노래하면서 곡의 제목을 살짝 바꿨다.

마약 중독으로 고생하던 그의 귀환작이면서 당시 유행하던 퓨전 재즈의 영향도 일부 포함된 이색 작품이다. 이 음반에선 퓨전은 물론 팝/록 장르를 넘나들던 휴버트 로스, 밥 제임스, 스티브 갯 등 젊은 뮤지션들이 이 음반에서 좋은 연주를 펼쳤다.

영화 <본 투 비 블루>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쳇 베이커에 관심이 있는 분은 꼭 들어볼 만한 멋진 발라드곡이기도 하다. 이밖에 경쾌한 리듬으로 재해석한 같은 음반의 수록곡 '어트먼 리브스(Autumn Leaves)'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명연 중 하나다.


[셋] Somewhere Over The Rainbow

 'Somewhere Over The Rainbow'가 수록된 < Chet is Back! > 음반 표지. 수많은 리메이크 버전 중에서도 유독 그가 귀에 들어온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가 수록된 < Chet is Back! > 음반 표지. 수많은 리메이크 버전 중에서도 유독 그가 귀에 들어온다. ⓒ 소니뮤직코리아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삽입되어 사랑받은 명곡으로 역시 재즈를 비롯한 엄청난 수의 팝/록 뮤지션들이 리메이크한 덕분에 이 곡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쳇 베이커는 1962년 이탈리아에서 자신을 포함한 유럽 지역 뮤지션들로 구성된 6인조 편성으로 연주 음반 <쳇 이즈 백!(Chet is back!)>을 녹음했는데 그 중 지금도 그의 히트곡 모음집 또는 재즈 컴필레이션 음반에서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곡이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Somewhere Over The Rainbow)'이다. 한편 2003년 재발매된 CD에선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협연작들이 보너스 트랙으로 추가되기도 했다.


[넷] September Song

 'September Song'이 수록된 < Chet > 음반 표지.

'September Song'이 수록된 < Chet > 음반 표지.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원작은 1937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니커보커 홀리데이(Knickerbocker Holiday)>의 삽입곡으로 사용되었고 쳇은 자신의 1959년 음반 <쳇(Chet)>에서 처음 재해석했다. 그 무렵 재즈계의 슈퍼스타이자 역시 같은 트럼펫 연주자였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사이드맨 빌 에반스(피아노), 폴 체임버스(베이스), 필리 조 존스(드럼) 등이 녹음에 참여했다. 덕분에 또 다른 관심을 끌기도 했다.

케니 버렐의 묘한 울림을 주는 기타 연주도 인상적이었던 덕분에 후일 조 패스, 비렐리 라그렌 등 재즈 기타리스트들도 각기 자신들만의 리듬 연주로 이 곡을 재해석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쳇 베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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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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