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풀 몬티>

조선업계 구조조정 위기에 영화 <풀 몬티>가 답을 줄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영화 <풀 몬티> 속 한 장면. ⓒ 20세기폭스


4.13총선 뒤 야당이 꺼낸 카드는 '구조조정'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이미 지난 20일 경제 회복을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첫 대상은 연일 침체 상태인 해운업계고, 해운업 다음 차례는 조선업이 유력하다. 만약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이 현실화되면 대형 조선소가 밀집한 거제시와 조선업계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만에 하나 조선업 구조조정이 현실화되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트레인스포팅>으로 우리 관객에게도 친숙한 배우 로버트 칼라일이 출연한 영화 <풀 몬티>가 답을 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뼈대는 네 명의 남성들이 스트립쇼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얼핏 '19금' 영화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노동자들의 아픔이 스며 있다.

양육비를 대기 위해 스트립댄서로 나선 가즈

영화의 배경은 영국 사우스요크셔 주 셰필드란 도시다. 이곳은 철강·조선 산업으로 한때 번창했다가 몰락했고, 그 바람에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어 버렸다. 주인공 가즈(로버트 칼라일)도 그 중 한 명이다.

가즈는 구직 센터를 전전하며 일자리를 찾지만 쉽지 않다. 아내는 이 사실을 모른다. 만약 양육비를 대지 못하면 아들마저 빼앗길 판이다. 가즈는 어느 날 우연히 여자들이 남성 스트립쇼에 열광하는 모습을 훔쳐본다. 가즈는 즉각 스트립댄서로 나서기로 마음먹고, 팀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가즈는 처음엔 반신반의 했다. 그러나 의외로 팀원 충원은 순조로웠다. 자신까지 합쳐 여섯 명으로 팀이 짜여졌다. 그런데 팀원들의 면면을 보니 가즈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제럴드(톰 윌킨스)는 실직 사실을 숨긴채 매일 아침 정장차림으로 집을 나선 뒤 거리에서 시간을 죽인다. 데이브는 실직으로 인해 자포자기 상태고, 아내는 남편의 속을 긁기라도 하듯 남성 스트립쇼에 탐닉한다. 한 번은 연습하는 광경이 경찰에게 발각돼 지역 신문에 실리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실직으로 생겨난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나간다. 가족들 역시 이들이 옷을 벗어던지기로 한 사연을 알게 되면서 이들을 끌어안는다. 영화는 여섯 명의 멤버들이 옷을 다 벗어던지는 장면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이 장면은 선정적이면서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가혹했다. 조선업으로 시야를 좁혀보자. 영국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1위였다. 그러다 후발주자인 일본에 선두를 내주고 내리막길로 접어들었고,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1979년 대처 총리의 집권은 구조조정에 내몰린 노동자들에겐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처 총리는 집권하자마자 긴축재정 정책을 펼쳤다. 특히 고용분야의 경우, 이전까지 짊어져 오던 완전고용 의무를 포기했다. 한편, 노조를 약화하기 위해 노조의 파업과 피케팅에 대해 규제조치를 취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약 300만 명에 가까운 실업자가 생겼다. 서민들이 주로 사는 지역에서는 폭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처는 포클랜드 전쟁 승리에 힘입어 권력기반을 다졌고, 이를 기반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다시피 했다. 우선 탄광, 조선, 철강 등 전통산업을 포기했다. 이들 산업은 영국 산업자본주의 상징과도 같았기에 대처의 구조조정은 더욱 극적으로 보였다. 구조조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석유, 전신전화(브리티쉬 텔레콤), 항공(브리티쉬 에어웨이), 가스(브리티쉬 가스), 무기, 전력, 상하수도 등 40개에 이르는 공기업을 민영화했다.

 영화 <풀 몬티>

영화 <풀 몬티>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네 명의 남성들이 호구지책으로 스트립쇼를 벌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20세기폭스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은 노동자들은 대처를 증오했다. 대처 총리는 지난 2013년 4월 8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이때 CNN은 과거 탄광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의 반응을 보도했는데, 한 탄광 노동자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에서도 살아남았는데, 대처의 구조조정 여파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고 보니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탄광노동자의 애환을 그린 영화도 있다. 바로 이완 맥그리거, 피트 포슬스웨이트 주연의 1996년 작 <브래스드 오프>, 제이미 벨 주연의 2000년 작 <빌리 엘리어트>이다. <브래스드 오프>는 탄광 노동자 밴드의 목소리를 빌려 탄광업을 내버리다시피 하려는 보수당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빌리 엘리어트는 발레리나의 꿈을 키우지만,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아버지로 인해 심하게 갈등한다.

쌍용차의 비극, 또 다시 예고되나?

 영화 <브래스드 오프>

이완 맥그리거, 피트 포슬스웨이트 주연의 1996년 영화 <브래스드 오프>. ⓒ 채널4


 영화 <빌리 엘리어트>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빌리 엘리어트는 발레리노의 꿈을 키우지만 아버지와 갈등을 빚는다. ⓒ UPI코리아




한국은 어떨까? 아마 영국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상황이 펼쳐질 공산이 크다. 이미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에 쌍용자동차 대량해고 사태를 목격하지 않았던가? 회사 측의 기획파산과 뒤이은 노동자들의 '옥쇄파업', 그리고 공권력의 무자비한 진압 등 쌍용자동차 사태는 그야말로 비극이었다.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시 해고된 노동자와 그 가족 등 26명은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가운데 절반은 자살이었다.

거제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말부터 거제에서 1만 명가량의 노동자가 해고될 것이란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원인은 간단하다. 일감이 없어서다. 20대 국회에서 다수를 점한 야당은 구조조정을 먼저 꺼내 들었고, 조선업계의 불황이 심상치 않기에 구조조정 논의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가장 약한 고리인 하청노동자부터 일자리를 잃게 된다. 정부나 여야 정치권에 노동자는 그저 숫자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청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아빠이고, 든든한 남편이다. 이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게 될지, 앞서 언급한 영화들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쌍용자동차 대량해고로 한 차례 비극을 목격했다. 또다시 이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특히 정치권이 지혜롭게 접근해 주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풀 몬티 브래스드 오프 빌리 엘리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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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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