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이보희

연극배우 이보희 ⓒ 남유진


배우 이보희는 무대에 서면 에너지 넘치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펼친다. 무대 위의 모습에 압도돼 평상시의 모습도 당찰 거라 생각하면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사실 그녀는 아직 무대가 많이 낯설고, 관객이 무섭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녀의 진정성 있는 고백에 '사람 냄새 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꿈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연극 <러브 액추얼리>는 100일, 1000일, 10년으로 연애 기간을 크게 나눠놓고 남녀가 사랑하면서 생기는 사건과 변화에 대해 다뤘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이보희는 극에서 '수진' 역을 맡아 캐릭터의 미세한 감정 변화가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집중하고 있다.

지난 2월 1일, 서울 인사동 한 찻집에서 그녀와 간단한 인터뷰를 나눌 수 있었다.

세상이 무대였던 어린 시절

그녀의 남다른 무대 사랑은 세상에 대한 뚜렷한 그림이 그려지기 이전부터 시작됐다. 당시 유행하던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의 엉덩이춤을 TV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따라 추다 엄마에게 건전지 들어가는 카세트를 사달라고 했다. 카세트를 들고 아파트 공원과 놀이터에 가서 춤을 췄고 지나가는 택시기사 아저씨도, 같은 아파트 입주민에게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 춤을 추는 날이면 엄마는 그녀에게 방송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처럼 예쁜 원피스를 입혀줬다. 그녀 나이 7살이었다.

무대가 좋았다. 어렸을 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무대도 생각만으로도 좋아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도 한때 넉넉하지 않은 보수에 다른 일을 해보려고 했다. 일 년 정도 일을 했지만, 무대로 돌아가고 싶어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안 되겠더라고요. 연극 아니면 안 되겠다는 걸 확실히 느꼈어요. 전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벽인 동시에 문인 무대

간절히 원한 무대지만, 무대 위가 100% 기쁨의 공간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아직은 좀 무서워요. 선배들은 '관객이 다 네 편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는데 저는 걱정이 앞서거든요. 관객들이 어떻게 느낄까, 어떻게 볼까. 우리가 준비한 것만이라도 전해졌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그런지 조금 많이 무서워요." 

너무도 큰 벽인 동시에 문인 무대는 그녀에게 자꾸만 도전을 걸어온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다. 무대가 끝나고 관객이 모두 빠져나가면 왠지 모를 헛헛함이 몰려온다. 그러던 어느 날, 옷을 다 갈아입고 나왔는데도 여자 두 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사진을 찍으려나 했는데 꼬깃꼬깃한 종이를 내밀며 사인을 해달라는 거예요. 사인을 해본 적도 없는데…."

관객들이 내민 종이는 미리 싸인을 받으려고 준비한 종이가 아닌, 공연 다 보고 뒤적뒤적 뒤져서 나온 종이였다. 이보희는 그 부분에서 더 큰 감동을 받았고,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저는 진짜 사람 냄새가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가 원하는 건 '너 되게 예뻐', '성격 좋아', 이게 아니라 작품에 제가 안 보일지언정 저로 인해 그 공연이 빛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작품 안에 항상 제가 있는 거죠. 그래서 시간이 좀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4월호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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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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