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보이' 이대호(시애틀)는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 중 가장 늦게 계약에 성공했다.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계약 내용도 다른 한국인 선수들에 비하면 평가가 엇갈린다.

대부분 메이저리그 계약을 어느 정도 보장 받은 선수들에 비하며 이대호는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성했다. 마이너 계약은 메이저리그 진입 보장이 없고, 스프링캠프에서 인정받아야만 메이저리그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1년 400만 달러 연봉을 다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마이너리그에서만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도 있다.

경쟁의 문도 만만치 않다. 박병호나 김현수의 경우, 이들의 주포지션이 소속팀에서도 취약점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인 선수들을 영입하게 된 배경이다.

그런데 이대호가 속한 시애틀은 이대호의 주포지션인 1루수와 지명타자에 모두 만만치 않은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다. 지명타자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거포인 넬슨 크루즈가 버티고 있다. 크루즈는 외야수도 볼 수 있지만 부상 이후 수비력이 크게 떨어져서 사실상 이제는 지명타자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다. 이대호가 넘보기 어려운 위상의 선수다.

1루수에는 좌타자 애덤 린드가 포진하고 있다. 크루즈만큼 뛰어난 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그에서 실력이 검증된 선수다. 현실적으로 이대호는 크루즈-린드의 백업 혹은 대타 요원 역할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헤수스 몬테로같은 잠재적인 경쟁자들도 있어서 백업 자리도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이를 두고 야구계 일각에서는 왜 이대호가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며 하필 시애틀을 선택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는 반응도 있었다.

이대호는 한국과 일본에서 가는 팀마다 에이스 대접을 받았고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신인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작 이대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재회하게 된 추신수-오승환과는 동갑내기다. 어느덧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는 베테랑으로 자리매김한 추신수나, 세인트루이스 불펜의 한축으로 중용될 것이 유력한 오승환에 비하여 이대호는 모든 면에서 불리한 조건임에 틀림없다.

한편으로 돌이켜보면 이대호는 항상 편견과의 싸움을 극복하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야구선수 같지 않은 뚱뚱한 체형 때문에 웬지 야구도 잘 못할 것 같다는 선입견은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처음 시작할 때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수비와 주루는 여전히 이대호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다. 대신 이대호에게는 그런 선입견과 약점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는 타격 실력과 기복없는 '꾸준함'이 있다.

이대호는 위험부담 없이 지금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선수 생활 후반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처음 진출할 2012년 당시 롯데 구단이 FA가 된 이대호에게 100억을 제시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 FA 선수들의 몸값이 폭등하는 추세를 감안해도 한발 앞서 이대호가 FA 관련 모든 기록을 경신하는 것도 가능했다. 일본 무대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은 이대호를 잡기 위하여 소프트뱅크 구단이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제시하며 끝까지 남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대호는 그 모든 제안을 뿌리치고 과감하게 도전을 택했다. 아시아 최고 타자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미국으로 날아가 윈터미팅을 통하여 자신을 직접 홍보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부와 명예의 맛을 충분히 맛본 슈퍼스타급 선수가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결단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 하지만 해보고 후회하는 것과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안주보다 도전을 선택한 이대호의 용기와 진정성은 박수받아 충분하다. 기왕이면 팬들은 이대호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한미일 야구를 모두 평정한 역대 최초의 선수로 이름을 올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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