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현주

언론 인터뷰마다 그는 인사동 근처 모텔을 잡는다. 어느새 단골이 된 그집에 친구와 함께 묵었다는 걸 전하며 그는 친구와 종로 맛집을 찾아 헤맨 사연을 기자에게 전하기도 했다. ⓒ 호호호비치


이번에도 그는 다쳤다. 이로써 손현주가 택한 최근 세 편의 스릴러 영화 <숨바꼭질>(2013), <악의 연대기>(2015), 그리고 <더폰>(2015) 모두 그에게 상처를 남겼다. 촬영 중 손톱이 빠지고 무릎 인대가 끊어졌는데도, 그는 뛰고 또 뛰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갓(God)현주', '스릴러킹'이다. 영화 <더폰>의 개봉을 일주일 앞둔 1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조심해도 다치고 막해도 다치니 이번엔 피하지 말고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갈비뼈가 나갔다"며 웃었다.

병원에서는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만 손현주는 압박붕대까지 두르고 청계천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조심해야 한다며 걱정하는 기자에게 "두려워서 움찔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다 잡힌다, 아픈 것보다 잘하고자 하는 생각이 더 강하니 계속 하는 것"이라며 답했다. 이정도면 '갓현주'가 맞다.

"정신줄 놓으면 큰 일 날 거 같더라"

 영화 <더 폰>의 한 장면.

영화 <더 폰>의 한 장면. 극중 고동희 역을 맡은 손현주는 1년전 살해당한 아내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뛴다. 스릴러킹이라는 별명답게 그는 각종 추격 장면을 소화했다. ⓒ NEW


살해당한 아내(엄지원 분)에게서 걸려온 전화. 자신의 부주의로 아내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고동호(손현주 분)는 1년 전 시간대에 사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엇갈리는 시공간 설정이기에 상대와 서로 마주하지 못하고 전화로만 연기해야 했지만, 손현주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아야 했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절실한 감정 연기를 위해 촬영이 없는 날에도 현장에 나와 카메라 밖에서 엄지원을 지원 사격했다.

"정신줄 놓으면 큰 일 날 거 같더라. 밤 촬영이 대부분이었고, 1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엇갈리는 설정이라 나도 좀 헷갈렸다. 엄지원씨도 상대를 직접 보지 않고 연기해야 했기에 힘들어했다. 미리 목소리를 녹음한 걸 바탕으로 연기하거나 녹음 부스를 현장에 만들어 놓고 번갈아 들어가며 맞춰보기도 했다. (통화 연기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해 본 거 같다(웃음)."

영화 속 고동호를 뛰게 하는 동력은 결국 가족이다. 수험생 딸과 아내를 둔 가장의 마음이 <더 폰> 곳곳에 절절하게 묻어난다. 마음을 표현하는 게 어색하기에 가족의 애정 표현을 애써 담담하게 받아내는 이 땅의 가장들이 영화를 보고 크게 공감할 법하다. 손현주는 이를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라 표현했다.

"미안함이지. 영화상 시간 제약 때문에 고동호의 어릴적 배경이 안 나오지만, 자갈치 시장에서 장사하시던 어머니를 둔 그다. 항상 뭔가에 눌려있거나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인데, 아내를 그렇게 잃었으니 마음이 어떻겠나. 다시 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거다. 관객 분들 역시 이 영화를 보고 되돌리고 싶은 순간에 대해 생각할 것 같다. 정작 난 과거를 돌아보진 않는다. 물론 복기는 하지. 예전 잘못을 반성하며 반복하지 않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실제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을 둔 손현주는 가족에 대해 애틋하다. 클래식을 공부하는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그는 "눈높이를 딸보다 낮추는 게 친구가 되는 비법"이라고 공개했다. 아빠 책상에 놓인 시나리오를 딸이 읽고서 이런저런 조언도 해준단다. 지금까지 출연했던 영화 모두 딸이 먼저 읽고 재밌어 했던 작품들이었다. "늘 고마운 존재"라며 손현주는 "오늘은 인터뷰 마치고 집으로 달려갈 수 있어서 좋다"라고 크게 웃어 보였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 그게 가장의 마음

'더 폰' 손현주-배성우, 소름돋는 케미 14일 오전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더 폰> 제작보고회에서 배우 배성우와 손현주가 포토타임을 기다리고 있다.
<더 폰>은 1년 전 살해당한 아내의 전화를 받은 남편이, 과거를 되돌려 아내를 구하기 위해 벌이는 단 하루의 사투를 담은 추격 스릴러다. 10월 22일 개봉.

▲ '더 폰' 손현주-배성우, 소름돋는 케미 지난 9월 14일 오전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더 폰> 제작보고회 현장. 당시 핸드폰을 소재로 한 여러 영화와 <더폰>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시공간의 뒤틀림'이 주인 판타지성이 출연진들의 공통된 답이었다. 최근 인터뷰에서 손현주에게 다시 상기시키자, "다른 영화와 유사성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애초에 다르다고 생각했고 영화 속 내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게 급선무였다."고 답했다. ⓒ 이정민


그의 말에서 추측할 수 있듯 손현주는 촬영 때든 인터뷰 일정이든 늘 현장 가까이에 머문다. <악의 연대기> 때도 부산 촬영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스태프들과 한 달 간 있었던 그다. 언론 인터뷰 땐 인사동 부근 모텔을 잡고 시간에 맞춰 현장에 나오곤 한다. "부족한 사람이라 준비할 게 많아서 그렇다"는 게 이유였다.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될 경력과 내공임에도, 그는 철저했다. "내가 뭐라고 긴장을 풀 수 있겠나, 결국 두려움이 연기의 동력 같다"고 그가 말을 이어갔다.

"적어도 스릴러 장르를 할 땐 그 두려움이 도움이 된다. 주인공은 살아남는다는 속설이 있지만 난 5분 안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살아남으려 뛰는 건데 불안감이 없으면 관객들이 눈치 채거든. 그리고 삶 자체가 사실 불안의 연속이다. 내일을 모른다는 두려움. 직장인도 그렇지 않나. 중년이 되면 느껴지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얕은 스트레스 혹은 깊은 스트레스, 이게 없어지는 순간 배우를 그만 둬야지. 두려움이 없는데 무얼 보여줄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당근과 채찍을 잘 적용하는데 채찍을 보다 많이 주는 편이다. '50년, 60년 연기한 것도 아닌 내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런 생각이 모질게 강하다. 어떨 때는 스스로도 눈물이 날 정도다.

몸과 정신은 되게 약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진짜 힘들어진다.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알잖나. 난 채찍을 가하면 힘을 낼 수 있다. 후배들에게도 선택한 것에 후회 말라고 한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결정했다면 군소리 없이 가야지. 군소리 하려면 아예 선택하질 말았어야 한다.

흔들릴 때가 없냐고? 내 경우엔 흔들리기 전 한 박자 쉬곤 한다. 내 몸에 짜증이 오거나 변화가 오면 뭔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거거든. 그걸 미연에 방지하는 거지. 스릴러 장르도 그런 의미에서 잠시 놓고, 보다 관객 분들이 가까이 올 수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손현주는 여러 후배들이 마음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배우 중 하나다. 배우 송중기, 샤이니의 민호 등이 종종 그와 술잔을 부딪치러 찾는다. 후배들에 대해 "일방적 조언은 없다, 서로 주고받으며 내가 많이 받고 배운다"고 전했다.

부드러움 속에 담긴 강함, 그리고 자신에게 철저한 태도가 지금의 손현주를 있게 한 비결은 아닌지. 다음 작품에선 거칠게 뛰는 모습이 아닌 편하고 조금은 가벼운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까? "잠시 소홀했던 중년 여성 팬들까지 품겠다"며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배우 손현주.

푸근한 인상에 실제로 꾸벅 허리 굽혀 인사하기를 주저않는 손현주지만 자기 자신에겐 누구보다 냉정하다. 외유내강,의 그를 많은 영화인들이 좋아하고 따른다. ⓒ 호호호비치



손현주 더폰 엄지원 배성우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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