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미생>에서 성대리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 태인호가 영화 <영도>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희대의 살인마 아들 역이다. 진한 심리 연기를 보여야 하는 범상치 않은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TV 드라마 <미생>에서 성대리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 태인호가 영화 <영도>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희대의 살인마 아들 역이다. 진한 심리 연기를 보여야 하는 범상치 않은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 모비


대한민국 희대의 연쇄 살인마이자 싸이코패스 유영철에게 가족이 있었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런 연쇄살인마들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도피했을까, 세상을 정면 돌파했을까.

지난 10일 개봉한 <영도>는 관객에게 이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손승웅 감독은 이를 위해 경성대학교 영화과에서 같이 수학했던 선배 태인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살인마의 아들 '영도'를 연기해 달라고. 처음에 태인호는 극구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저예산 독립영화라? 아니면 감독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역할이 까다로워서? 모두 아니었다. 오히려 역할의 무게감을 고려했을 때 훨씬 더 이름값 있는 배우가 어울리지 싶었다.

결국 연쇄살인마의 아들 캐릭터는 태인호에게 돌아왔다. 개봉 즈음 만난 태인호는 촬영 전 "시나리오를 보고 하고 싶었고, 동시에 잘 해낼 수 있을지 겁도 덜컥 났었다"고 입을 열었다. <영도>는 지난해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 : 비전' 부문에 초청됐고, 11개월 뒤 극장 개봉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물론 그 중심엔 <미생>의 '성대리'로 얼굴을 알린 태인호가 자리한다. 범상치 않기는커녕 쉽사리 도전할 수 없는 캐릭터에 도전한 그는 "잘 표현된 부분도 있고, 생각보다 더 거칠게 표현된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태인호에게 영화 <영도>와 드라마 <미생> 전후의 연기에 대해 물었다. 

근본적인 질문, '나라면 어땠을까?'

 '살인마 아버지를 둔 아들이 진짜 나였다면?'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태인호가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다. 혹여나 너무 센 장면만 나오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관객에게 그가 팁을 전했다. "센 장면이 있는 건 맞지만 표면적인 것보단 등장 인물의 이면에 집중해주세요."

'살인마 아버지를 둔 아들이 진짜 나였다면?'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태인호가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다. 혹여나 너무 센 장면만 나오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관객에게 그가 팁을 전했다. "센 장면이 있는 건 맞지만 표면적인 것보단 등장 인물의 이면에 집중해주세요." ⓒ 콘텐츠판다


"제가 이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우선 납득하려고 했죠. 이해도 되고, 공감도 갔어요. 저는 결국 이런 감정들을 표현하는 매개잖아요. 우리 아버지가 정말로 살인마고, 엄마가 날 떠났다면, 과연 어땠을까 먼저 생각했어요. '영도 주변엔 어떤 사람이 남아 있을까?',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장소에 있을 것인가?' 등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영도라는 인물을 잘 표현해내지 못하면, 알맹이가 빠진 이도저도 아닌 영화 될까봐 감정표현을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죠."

영도는 그러나 제 고향인 부산을 떠나지 못하는 운명적인 인물이다. 떠나지도 못할뿐더러 살인마 아비를 기억하는 이들과 고스란히 맞부딪히며 고통을 감내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때로 그 운명은 죄책감으로, 위악으로 변모한다.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감정은 살해된 부모의 복수를 하겠다고 영도를 찾아온 미란(이상희 분)을 만나면서 극대화된다. 이 복잡한 캐릭터를 태인호는 어떻게 만들어 갔을까.

"제 동기가 감독인 작품에서 손 감독이 조연출을 했어요. 계속 봐왔고 서로의 성격을 알고 있었죠. 서로 작품이나 연기도 봐왔고요. 영화는 고작 2시간 남짓이지만, 영도 안에 쌓여있는 기분, 냄새, 감정들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잘 표현하려고 했죠."

태인호는 전체적으로 영도라는 인물이 가진 감정에 대해 손승웅 감독과 많은 얘기를 나누며 영도의 폭이나 느낌을 만들어갔다. 아버지에 관련된 감정이 특히 그랬다. 놓친 부분도 있겠지만, 그 센 감정들을 관객들이 이렇게 받아들여줬으면 하고 당부했다.

"보이는 장면과 표현이 센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더 많은 것들을 품은 게 바로 <영도>라는 영화에요. 그래서 표면적인 것보다 인물을 봐줬으면 해요. 인물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정도의 영화는 된다고 생각하고요. (관객 분들이) 그런 부분을 좀 더 봐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햄릿>으로 키운 연기의 꿈

"2008년 상경해서 오디션을 보러 다닐 땐 서울말을 쓰려고 했어요. 부산 사투리가 알게 모르게 선입견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뭐 어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2년 후부터는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레 말해요. <미생>으로 조금 알려지니 더 물어보긴 해요. 사투리 쓰시네요, 하면서."

그간 한 인터뷰 중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부산 사투리라고 했다. 부산 경성대 출신으로 2년 간 극단 생활을 하다가 영화라는 작업이 궁금해 서울로 향한 것이 2008년. 그 후 <미생>의 '성대리'를 만나기까지 오디션도 열심히 보고 선배가 차린 극단에서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 와중에 고향인 부산에서 찍은 <영도>로 태인호는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서면서 영화 작업이란 걸 실감을 할 수 있었다. <미생>으로 고정된 이미지가 생기지 않았냐고? 태인호는 "아직 그런 걸 신경 쓸 시점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악역이든 조연이든 하고 싶었던 영화 연기를 할 수 있게 된 지금으로 감사하다.

"이미지는 솔직히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전에도 비슷한 연기를 했었고, 단지 <미생>으로 조금 알려진 것뿐이죠. 그저 한 시점이란 생각이 들어요. <미생> 이후 감독님들이 비슷한 역할을 주시는 것도 재밌고요. 연기를 오래 하기 위해서는 작품들을 잘 선택하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선택에 있어 고민이 있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연극을 같이 한 선배들도 그랬으니 나 또한 열심히만 하면 언제가 됐든 그리 될 수 있을 거예요."

인터뷰 후반부, 조진웅이나 김정태 같은 경성대 선배들의 이름이 줄줄이 불려나온다. 태인호가 군 제대 전후 동고동락하며 연기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알게 해준 선배들이다. 그들이 영화계에 진출하면서 태인호 역시 배우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배우로서 확실한 동기부여를 줬던 작품으로 졸업 작품인 <햄릿>을 꼽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입대 전 선배님들이 하는 작품에서 심부름을 하고 단역을 할 땐 연기란 걸 체감하지 못했어요. 누군가 저를 혼낸다는 자체에 오기가 확 생겼던 거 같아요. 기왕 하려면 잘해서 선배들을 이기고 싶었던 거예요. 그때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혼나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을 정도죠. 그때 기억으로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차기작들

 부산 사투리가 매력적인 태인호. 굳이 사투리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진짜 부산 사나이다. 동시에 학부생 때부터 조진웅이나 김정태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과 함께 하며 내공을 키워왔다. 그를 좀 안다는 감독들이 하는 말. "연기는 웬만큼 하니 하던대로 하세요!"

부산 사투리가 매력적인 태인호. 굳이 사투리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진짜 부산 사나이다. 동시에 학부생 때부터 조진웅이나 김정태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과 함께 하며 내공을 키워왔다. 그를 좀 안다는 감독들이 하는 말. "연기는 웬만큼 하니 하던대로 하세요!" ⓒ 모비


그저 놀기 좋아하던 고등학생이 친구 따라 배우 연습실에 갔다가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그 길로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 입학은 했지만, '여긴 어디? 난 누구?' 상태가 지속됐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 전역과 졸업을 거치면서 직업 연기자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래서인지 '준비된 연기자'라는 이미지가 부담스럽기도 하단다.

"그런 이미지가 살짝 힘이 들긴 해요. <미생> 이후 현장에 가면 사람들이 절 더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요. 그런 시선이 부담이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크게 와닿는 순간이 있죠. '잘 해야겠구나.' 심장이 떨리기도 하고요. 감독님들이 종종 '하던 대로 하세요'라고 하시거든요(웃음)."

노덕 감독의 <특종: 량첸살인기>와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 대동여지도>. 태인호의 개봉 대기작과 차기작 목록이다. 한 마디로 탄탄하다. 노덕 감독은 전작 <연애의 온도>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던 태인호를 지켜보다 <미생> 이후 연락을 한 케이스다. "대본도 안보고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특종: 량첸살인기>에서는 주인공 조정석과 같은 사회부 기자를, <고산자, 대종여지도>에서는 차승원이 연기하는 주인공 김정호와 대립각을 펼치는 사대부를 연기한다. '영화 연기'를 꿈꿨던 영화학도는 이렇게 차근차근 자신만의 연기관을 확립해 나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각각의 외향은 바뀌어도 캐릭터에 대한 진중한 고민은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영도>에 이어 스크린으로 만날 태인호의 연기를 기대해도 좋을 이유다.

"<특종: 량첸살인기>는 막상 대본을 보니 어렵더라고요. 성대리처럼 성격이나 캐릭터가 확 드러나진 않거든요. 조정석씨 옆에서 정보전달을 해주면서도 밉상일 수 있는 캐릭터긴 한데, 확실하게 잡아나가느라 고민을 좀 했죠. <고산자, 대종여지도>의 김성일은 가문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김정호의 지도를 뺏어야 하는 인물이에요.

모든 캐릭터들을 어떤 레퍼런스를 두고 연기하진 않아요. 단지 어떤 캐릭터든 자기 감정들이 쌓이고 체화돼서 말이든 행동이든 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패턴들에 맞게 연기하려고 노력하죠. <영도>나 <미생>에서 그랬든, 앞으로도 또 다른 꺼리들이 생긴다면, 그에 맞게 적응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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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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