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

영화 <암살>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 ⓒ 흥미진진


'왜 하필 지금 이 시대에 독립투사의 이야기였을까.'

영화 <암살>의 촬영 및 개봉 소식을 접하며 내내 들었던 생각이었다. 게다가 <암살>은 한창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받으며 흥행 신화를 써가고 있는 최동훈 감독이 직접 꺼내 연출한 이야기다.

<범죄의 재구성>(2004) <타짜>(2006) <도둑들>(2012)을 기억하는 관객에게 최동훈 감독의 <암살>은 분명 낯설게 다가올 여지가 있다. 언론 시사 후 기자들 사이에서도 '최동훈 감독 영화 같지 않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이야기 흐름이 빠르고, 캐릭터들의 강한 개성을 녹여왔던 전작들에 비해 <암살>은 느리고 진지했다. 1933년을 배경으로 일본 제국의 주요 인사 두 명을 제거하려는 독립투사들의 '작전'을 최동훈 감독은 그렇게 풀어냈다.

바꿔 생각해 보자. 과연 최동훈다운 영화란 무엇일까. 그 불분명한 실체를 찾으려 애쓰려는 찰나, 최동훈 감독이 끼어들었다. "아주 옛날부터 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무도 안 한 이야기였다"고.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최동훈 감독을 만났다.

"일제강점기, 에두르지 않고 본격적으로 다루고 싶었다"

- 알려진 대로라면 <암살>은 <타짜> 개봉 직후 당시 제작사였던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본래 허영만 작가의 원작 만화 <각시탈>의 영화화를 제안받았지만, 이왕이면 독립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직접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맞다. 중국 상하이 신천지에 임시정부가 남아 있는데 그곳에서 본 사진이 기억에 남았다. 독립투사들이 그 초라한 공간에서 전단지를 만들고 회의를 했다는 생각에 여러 상상이 들었다. 윤봉길, 이봉창 두 양반이 홍커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진 게 실로 엄청난 일이더라. 그들이 항저우로 도망간 이후부터 <암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제안 이전부터 내면에 독립군 이야기의 씨앗이 있었던 것 아닌가. 게다가 프랑스와는 다른 한국 레지스탕스(저항운동)만의 특징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면 '민간인은 무조건 죽이지 말라'는 영화 속 대사 등에서 말이다.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품게 된 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책 때문이었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분이다. 나 같은 범인들은 갖지 못한 어떤 위대함이 느껴진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았던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었겠지만 결단이나 행동은 평범하지 않았지. 그걸 영화에 조금이나마 녹일 수 있다면 성공이라 생각했다.

또 상업영화인 만큼 이걸 재밌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다들 1930년대라고 하면 우울하다고 생각하는데 '낭만적 비장미'라는 게 있다. 어떻게든 시대의 비극 안에서 경쾌함도 잃지 않았으면 했다. 본격 레지스탕스 영화를 만들고 싶기도 했다.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을 매우 좋아하기도 하고. 서구와 우리가 다른 게, 그들은 길어야 3년의 비극이었지만 우린 35년이다. 어떻게 버텼을까. 삶이라 여기고 버틴 거겠지. 대단하다 말할 수밖에 없는 한국인만의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암살>의 한 장면.

영화 <암살>의 한 장면. ⓒ 쇼박스


- <도둑들> 당시 초고는 20일 만에 쓰고 8개월 동안 고쳤다. 이번엔 한 번 다 쓴 걸 폐기하고 다시 새로 썼다고 들었다.
"<암살> 역시 초고는 20일 만에 썼다. 초고는 아무리 엉망이라도 일단 빨리 쓰자는 게 하나의 원칙이다. 그걸 계속 고쳐나가는 거지. 이번 건 초고를 내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 6개월 동안 다시 써야 했다. 과연 영화로 만들 수 있나 의심도 했다. 그 사이 상하이도 좀 다녀왔다."

- 자료 조사를 하면서 실제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도 만났나.
"그러진 못했다. 사실 만날 분도 많지 않잖나. 상상력의 게임이었다. 일왕을 죽이러 가기 전에 이봉창 의사가 찍힌 사진이 있는데 독립운동가들 역사상 가장 환하게 웃고 있다. 안창호 선생이 미국 오렌지 농장서 돈을 모으기 위해 일하던 때 찍은 사진도 있다. (기자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굉장히 유쾌하면서도 강한 기질이 느껴지잖나. 알고보니 진정한 코스모폴리탄(국적에 얽매이지 않은 세계시민)이 따로 없더라."

실제 위인 속으로 들어간 가상 인물...역사를 말하게 하다

- 김구, 김원봉 선생 같은 실존 인물을 제외하고 주요 캐릭터를 가상 인물로 채웠다. 개인적으로는 염석진(이정재 분), 안옥윤(전지현 분)의 이름을 어디서 따왔는지가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들 이름이 계속 기억에 남더라.
"영화를 보고 캐릭터 이름을 기억하기 어렵잖나. 그래서 내 경우엔 자꾸 별명을 붙여서 기억에 남기려고 했다. (전작 <도둑들> 주인공 이름 역시 마카오박, 뽀빠이, 예니콜 등의 닉네임으로 명명됨 -기자 주) 하지만 염석진과 안옥윤은 닉네임을 쓰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가 또 옛날 이름이어야 하지 않나. 여러 이름을 적었다가 지웠다. 예전에 김윤석 선배랑 술 마시며 얘기하는데 선배는 사람 이름 정하는 것만 봐도 이야기가 재밌을지 감이 온다더라. 이름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나도 생각했다.

안옥윤은 처음엔 안윤옥이었다. 어감이 예뻐서. 성이 안씨라는 건 이미 정해뒀지. (최동훈 감독의 부인인 안수현 PD로부터 성을 따 왔다고 한다- 기자 주) 그러다가 옥윤으로 바꿨는데 남성 같기도 하고 여성 같기도 하더라. 만족했다. 염석진 역시 좀 강해 보이는 느낌을 원해서 그렇게 지은 거다. 관객이 집에 가서도 인물들이 생각난다면 감독 입장에선 대만족이다."

- 관객을 쉽게 울릴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특히 영화에서 인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장면이 없다. 작전 수행 직전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 조용하게 두 번 읊조릴 뿐이다.
"감정을 세게 찍는 게 별로 안 내킨다. 주위에선 왜 속 시원하게 울 기회를 안 주냐고 뭐라 하는 사람도 있다. (웃음) 그저 여운이 오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정을 단번에 해소시켜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마음속에 오래 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물에 따라 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암살>에 나오는 사람들은 울음을 감추고 사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암살>이 품은 현재성...역사는 반드시 챙겨야 한다

  영화 <암살>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

영화 <암살>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 ⓒ 흥미진진


- 사극과 시대극이 풍성한 요즘이다. 그런데 1930년대를 직시한 작품은 또 별로 없었다.
"1930년대가 마치 흉가처럼 남아있더라. 다른 감독님들을 만나도 다들 그 시대를 다루고 싶어 한다. 물론 <가비>라는 영화도 있었고, <모던보이>도 그 시대를 다뤘다. 암흑기라도 사랑도 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거니까 (그 영화들이) 의미 있었다고 본다. 다만 난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싶었던 거다. 결국 소재의 문제인데, 실화를 굳이 가져오지 않은 건 그럴 법한 이야기를 통해 충분히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성(지금의 서울) 미츠코시 백화점 장면을 넣은 것도 그런 의도였다. 당시 그곳은 수탈의 현장이면서도 모더니즘의 끝판왕이었다. 상하이 역시 더 현대적인데 내부에선 치열한 투쟁이 있지 않았나. 공간 대비를 통해 그 시대를 보여주는 즐거움이 있다. 사실 자세히 보면 그때 경성은 쓸쓸한 도시였다. 화려함 속 적막감, 그곳에서 암살 작전을 펴는 사람들의 고독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임은 알겠다. 그래서 왜 지금 이런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건가.
"그렇게 묻는다면 굳이 올해 나왔어야 할 이유는 없다. 멀게 보면 9년 전부터 생각한 이야기였기에 오히려 지금 내놓는 게 좀 늦었다는 감도 있다. 재밌는 사실은 곧 광복 70주년이라는 거다. 나도 몰랐다. 흐름이란 게 있고,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계속 거부하려고 해도 영화는 결국 동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게 된다. <암살> 말고도 1930년대 전후를 다룬 작품들이 기획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무의식이 지금 반영되고 있는 거다."

- <암살>에 담긴 그 무의식이자 현재성이 궁금하다.
"어려운 질문이다. 역사 문제에 있어서 일본이 제대로 된 사과를 안 하고 있잖나. 나도 한국 사람이니 불만이 있다. 또 국내 역사 교육도 부실해지는 것 같고. 어떤 나라건 자국의 역사 교육은 중요하다. 집밥을 먹는 것과 비슷한데 그걸 잘 안 챙기고 있다. 거기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친일파에 대한 매듭을 못 지었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찌꺼기가 남아 있잖나. 그런 눈으로 1930년대를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 마지막으로 일각에선 너무 스타들만 쓰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180억 원이라는 제작비 역시 개봉 후 수익을 내야하는 감독 입장에선 큰 부담이었을 거고.
"그 배우들(이정재, 전지현,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등)이 매혹적이니까 쓰는 거다. 비판하려면 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감독이 부족하니까 그걸 메꿀 수 있는 배우기도 하고. 그런데 그들은 진짜 멋진 배우다. 이건 분명하다."

암살 최동훈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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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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