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 <쇼미더머니4>에서 '여성 혐오' 가사 논란에 휩싸인 아이돌 그룹 위너(Winner)의 멤버 송민호

Mnet <쇼미더머니4>에서 '여성 혐오' 가사 논란에 휩싸인 아이돌 그룹 위너(Winner)의 멤버 송민호 ⓒ 이정민


기시감, 사과의 정치학, 그리고 '혐오'의 연쇄는 어째서 근절되지 못하나. 한 아이돌 멤버의 사과를 보며 든 생각의 편린이다. 올 한해 이어지는 '여성혐오'와 관련한 논란은 그렇게 하나같이 비슷한 방향으로 귀결되며 또 다른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그룹 위너의 송민호가 사과했다. '여성 혐오' 혹은 '여성 비하' 가사에 대해서다. 그런데 이 사과, 성의가 없다. 사과의 대상도 잘못 잡은 데다, 진심은커녕 면피용에 가까워 보인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사과의 정석'을 선보인 지 불과 3주. 위너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의 대응이 실망스러울 정도다.

"언제부터 힙합이 사회적 부조리나 절대 강자가 아니라 눈앞의 경쟁자나 사회적 약자를 깔아뭉개고 조롱하는 장르가 되었는가?"

송민호의 랩에 대한 한 누리꾼의 일갈이다.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란 랩이 일부 여성 시청자와 힙합 팬들의 반발을 불렀다. 지난 10일 방영된 Mnet <쇼미더머니4> 3회 방송분이었다. 논란이 가시지 않자, 송민호는 SNS를 통해 사과의 말을 남겼다. 그런데도, 혐오 대상이 된 이들의 분은 가실 줄 모른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옹달샘'의 사과와 너무나 닮아 있는 송민호의 'SNS' 사과문 

"안녕하세요. 위너의 송민호입니다. 쇼미더머니를 통해 논란이 된 가사에 대해 진심으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너무 후회스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쇼미더머니라는 쟁쟁한 래퍼들과의 경쟁 프로그램 안에서 그들보다 더 자극적인 단어 선택과 가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 거 같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방송에 나온 저의 모습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한없이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다시 한 번 저의 잘못된 표현으로 인해 불쾌하셨을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음악으로 빚어진 실수를 더 좋은 음악으로 만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위너의 공식 SNS에 올라온 글이다. 진심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선 "불쾌하셨을 모든 분들"로 대상을 뭉뚱그린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더 좋은 음악으로 만회"한다는 표현 역시 정치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아래 또 다른 사과문을 보라. 놀랍도록 닮지 않았는가.

"정말 죄송합니다. 어떤 말씀을 드려도 부족하다는 점 알고 있습니다. 방송을 만들어가고 청취자들과 가깝게 소통하고 더 많은 분들에게 큰 웃음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웃음만을 생각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발언이 세졌습니다. 좀 더 격한 발언을 찾게 됐습니다. 그 웃음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안일한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의 경솔한 태도에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은 가족들에게 사죄를 드립니다. 이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평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께 실망을 끼친 부분 잊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주신 사랑과 관심 보답하겠습니다. 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지난 4월 말, 기자회견에 나선 '옹달샘' 장동민, 유세윤, 유상문의 사과문 전문이다. 역시나 '여성혐오' 발언이 거센 반발을 불러왔었다. 뒤이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생존자 비하 발언까지 알려지고, 생존자 중 한 명이 고소에 나서자 부랴부랴 나선 기자회견이었다. 아니, 왜 자꾸 사과의 대상을 바꿔치기하는가.

강경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반발, 정답이란 이런 것

무엇보다 송민호의 사과는 외형상 부적절했다. 우선 사과의 시기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송민호의 'SNS 사과'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강력한 반발이 알려진 후 이뤄졌다. 사과를 전한 매체도 페이스북이라니, YG엔터테인먼트라는 거대 기획사의 대응이라고 보기에 옹색하기 그지없다.

13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송민호와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 이를 여과 없이 방영한 Mnet <쇼미더머니4> 측에 "진심 어린 사과 및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포함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의사집단이란 특성인지, 사안의 중대함 때문인지,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반발은 확실히 강경했고 구체적이었다. 

"충분한 수준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이 없이 무성의로 일관하거나 어물쩍 넘어가는 일이 생긴다면, 여성부와 보건복지부에 강력한 항의와 더불어 법적인 대응을 통해 물적 심적 보상을 강제할 것."

사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대응은 논리부터 완성형이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자신이 저격한 여성들이 자기 앞에서 산부인과처럼 다리를 다 벌린다는 뜻의 내용으로 해석되어 이 내용을 듣는 여성들에게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이 방송을 시청한 10대 청소년들에게는 잘못된 성적 가치관 및 산부인과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쩌면 송민호의 가사는 가뜩이나 '산부인과 방문'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인식이 팽배한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여성들이 의료의 목적으로 일상적이고 편안하게 방문해야 할 병원이 지극히 편협한 시각에 의해 협소화되는 현실에 송민호의 가사가 일조했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 "그런데도 과연 산부인과가 남성들 앞에서 다리나 벌리는 곳으로 폄하되어야 할 곳인가"라는 지적은 통렬하지만 어떤 비감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 근원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독한 '여성 혐오' 때문이리라.

'이제부터라도' 혐오의 영겁회귀를 때려 치울 때

 방송인 서유리의 SNS 글.

방송인 서유리의 SNS 글. ⓒ 페이스북 캡처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글에서 촉발된 '여성 혐오'에 대한 반발은 올 상반기 내내 인터넷 공간과 SNS를 넘어 현실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 아이돌 래퍼의 가사는 또다시 여러 시사점을 던져 준다.

먼저 여전히 '광대'의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운운하는 목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무대 위에서의 발언이나 행위는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뜻일 텐데,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그것이 광범위한 수용자의 '인권'이나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곤란하다.

'힙합신'에 대한 이해 차원의 옹호가 오히려 내부자들로부터 반발을 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욕설과 같은 표현이나 수위 높은 비판이나 풍자를 용인하는 것과 구체적인 맥락을 지닌(그러나 오해와 편견, 무지로 가득 찬) 혐오와 낙인의 언어를 품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송민호는 물론, 과거 여성 혐오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던 발언은 다수가 후자에 해당한다.

Mnet이나 <쇼미더머니> 제작진에게 비판의 화살이 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작진은 욕설을 묵음 처리하면서도 송민호의 랩을 걸러내지 못(안)했다. 실제 송민호의 무대는 심사위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제작진 역시 '여성 혐오'에 대한 인식이 없었거나 세심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심하기만 했다면, 충분히 제작 과정에서 편집을 통해 걸러 낼 수 있지 않았나.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특히 여성 의사들의 반발이 심하다"고 했다. 송민호의 가사를 통해 좀 더 불쾌감을 느끼고 정신적, 물리적 피해를 입는 쪽이 여성임을 적시한 것이다. 이에 들어맞는 사례는 벌써 나왔다. 대상을 명기하지 않고 자신의 SNS에 논란에 대해 피로감을 호소했던 방송인 서유리가 송민호 팬덤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은 것이다.

서유리는 자제를 요청하며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가장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이 진정 무엇인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썼다. SNS엔 이미 "송민호의 팬들은 이미 송민호를 용서했다"는 무시무시한 글이 떠돈다.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누가 누구에게 사과하는가. 어디서부터 잘못됐기에, 논란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는가.

근원은 자명하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뿌리 깊은 '여성 혐오'의 작동 체계 말이다. 남성들의 발언에 여성들이 반발하면, 그 반발에 또 다른 (남성들의) 옹호와 공격이 잇따른다. 그러한 논란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이 재차 혐오발언이나 텍스트를 싸지른다.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낳는 영겁회귀의 무간지옥.

그러나 계속되는 논란에 피로감을 더하는 쪽은 물론 여성들일 수밖에 없다. 기이한 점은 왜 엔터테이너나 연예인들이 세상의 절반이자 적극적인 수용층이자 소비자인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가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런 혐오나 비하가 만연했고, 그걸 즐기는 남성들이 우위를 점한 한국 사회의 동력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좀 그만할 때도 됐다. 휘발되는 사과와 주체를 대신하는 어이없는 용서 역시 제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세상의 절반에 대한 혐오가 아무런 득도 되지 않는다는 건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알고 있다. "이제 와서 왜?"가 아니라 "이제부터라도"의 마인드만 갖추면 된다. 이제야말로 '혐오의 굿판'을 때려치울 때다. 물론 그 주체는 '남성들'과 (그들이 권력을 지닌) '한국 사회'다.    

○ 편집ㅣ이언혁 기자


송민호 옹달샘 쇼미더머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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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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