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궁민

배우 남궁민 ⓒ 935엔터테인먼트


"어젯밤에 '내일 인터뷰가 있으니까 일찍 자야지' 하고 11시에 누웠는데 새벽 세시 반에 깬 거예요. 뭘 할까 하다가 매운 떡볶이를 시켜서 먹었어요. 그런데 매운 걸 잘 못 먹거든요. 결국 남겨뒀던 걸 여섯 시에 또 한 번 먹고, 열한 시에 또 먹었어요."

남궁민은 자리에 앉자마자 전날 먹었던 매운 떡볶이 이야기며 운전면허증을 잃어버려 재발급을 받으러 갔다가 신분증을 가져가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 등을 늘어놓았다. 얼마 전까지 SBS 수목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서 표정 하나만으로 시청자를 얼렸던 살인마 권재희를 연기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앉은 그는 "연기 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 작품이 끝나면 빨리 (역할을) 잊는 게 가장 좋은 방법 같더라"고 웃어 보였다.

드라마 말미 권재희는 탈주까지 해 가며 최무각(박유천 분)을 위협했지만, 옥상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았다. 그토록 악행을 저질렀던 인물이었지만 죗값을 치르지 못한 최후는 허무했다. 그가 연쇄살인을 저지르게 된 이유도 염미(윤진서 분)의 입을 빌려 어느 정도 추측됐을 뿐이었다.

배우로서는 아쉬울 법한 일이지만 남궁민은 "솔직히 별생각이 없다. 작가님이 이렇게 쓰신 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권재희의 사연만 이야기하려다 보면 오초림(신세경 분)이나 최무각이 빛나야 하는 작품에서 형평성에 어긋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는 그는 "너무 나만 나오려고 하면 그건 내 욕심이지, 전체를 보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고 말했다.

"솔직히 어릴 땐 연기에 대해 장황하게 할 말이 많았어요. 5~6시간 동안 연기만 얘기하면서 술 마신 적도 있고요. (웃음)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확신이 사라져요. 그래서 '권재희를 연기하기 어렵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답을 잘 못 하겠는 게, 연기는 아무리 해도 또 다르다 보니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없어지기 때문이에요. 어렸을 땐 오히려 잘 아는 것 같은데 하다 보니 모르겠어요, 이젠. 요즘엔 그냥 편하게, 느끼는 대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다만 권재희는 (감정을) 겉으로 많이 표현하면 안 되는 인물이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절제하는 느낌? 하지만 절제하고 있는데 그 절제가 거짓이라는 게 보이지 않으면 또 연기가 아니잖아요. 능수능란하게 말을 하는데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게 드러나야 하는 거니까요. 화가 나지 않은 척하지만, 실제론 화가 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죠."

"배우는 '운칠기삼'...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때를 잡을 수 없죠"

 배우 남궁민

최근 남궁민은 가수 홍진영과 예능 프로그램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하기도 했다. "예전엔 '겉멋'이 들어서 예능에 출연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는 그는 홍진영과의 실제 교제를 바라는 일부 팬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예쁜 커플로 기억되고 싶은 당사자들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걸 간과하는 것 같아요. 물론 그 분들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선을 넘어서는 모습에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죠. 그동안 잘 어울리는 예쁜 커플로서의 모습을 보여드렸고 끝도 좋았는데,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 935엔터테인먼트


과거 그는 다소 강박적일 정도로 '완벽'을 추구했다. "(연기 생활) 초반의 내 작품을 보면 늘 조심스러워하는, 소극적인 내 성격이 다 보이더라"고 고백하듯, 한 사람의 배우로 자신의 진가를 보여 주고 싶다는 욕심이 컸기 때문이었다. 쉴 때도 부족한 발성을 고치기 위해 굳이 개인 교습을 받으러 다녔고, <내 마음이 들리니>(2011) 때는 압박감 탓에 자다가도 일어나 대사를 외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남궁민은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꺼냈고, "스타로 성공하기보다 배우로의 삶을 즐기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나이가 들어서인 탓도 있고, 아직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며 "배우로서 '정점'을 찍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다. 정점을 찍었다면 어느 순간 지금의 위치에서 스스로 관리해야겠다는 부담감 같은 것이 있을 텐데, 그렇지 않고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어떤 욕심을 갖고 연기한다고 해서 나의 위치가 정해지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그가 순전히 '운'에 기대려는 것은 아니다. 남궁민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좋은 기운이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운이 좋은 사람에 대한)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늘 하던 대로 항상 준비하며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 같다. 긍정적으로, '이제 정점을 찍으면 죽을 때까지 가겠구나'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예전에 한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돼서 회식까지 갔는데, 촬영 일주일 전에 교체된 적이 있어요. 이유는 아직도 몰라요. (웃음) 드라마에선 그럴 때 소주를 마시거나 인생이 힘들다며 한탄했겠지만, 저는 '뭐, 그냥 다른 준비를 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이건 긍정적이라기보단 제가 하는 행동의 결과를 믿는 편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네요.

지금은 계속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하는 건 없지만, 예전엔 쉴 때도 연기 트레이닝을 받았거든요. 그러면서 '이렇게 데뷔한 뒤에도 비디오 보고 분석하고 트레이닝 받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라는 생각도 했죠. 물론 착각이었지만, (웃음) 그래도 그 정도 노력하면 '기본빵'은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연기, 알다가도 모르겠지만...조금씩 다가간다는 느낌이 좋다"

 배우 남궁민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제가 쓴 시나리오를 세 개 갖고 있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다 있어요. 상업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차릴 생각이에요. 영리단체지만, 돈은 안 벌릴 것 같아요. 아마 조만간 만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구체적으론 말씀드리지 못하겠는 게...떠벌렸다가 잘 안되면 쪽팔리잖아요.(웃음)" ⓒ 935엔터테인먼트


평범한 공대생이었던 남궁민은 우연히 본 MBC 공채 탤런트 모집 공고에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 그때까지 살아온 삶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됐지만, 남궁민은 "연기를 시작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며 "연기라는 게 좋아 연기를 하게 됐는데, 마침 그게 직업이 될 수 있는 일이라 행복하다"고 했다.

스스로를 '회사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나는 '월급쟁이'다. 매달 10일이 정산일인데, 얼마 남지 않았다"고 기뻐하기도 한 그는 "물론 연기를 하면 TV에 나오고,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수도 있고, 그것이 고맙고 좋기도 하지만 가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면서도 "보통의 회사에 취직했다고 해도 상사의 압박 같이 견뎌야 하는 일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불편함 또한) 그런 것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예술이라는 게 시간이 지난다고 무조건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또 나이가 어리다고 무조건 못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이렇게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또 조금씩 나아지는 뭔가가 있어요. 거기에 한 발 한 발 조금씩 다가간다는 느낌이 좋아요. 물론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결혼하고 가족이 있는 것과 상관없이 근본적으로 외로움을 지고 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하지만 이제 그런 부분은 조금 초탈했다고 할까, 어떤 식으로든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1999년 한 VJ 선발대회에서 우승하며 데뷔했으니 벌써 17년 차가 됐다. "그동안 아침드라마, 주말드라마, 일일드라마, 단막극, 미니시리즈 등 안 해본 게 없다"는 남궁민은 그럼에도 "앞으로도 연기 스펙트럼을 계속 넓히고 싶다"고 말한다. 최근 차기작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중국에서 제작되는 영화. "모든 게 다 익숙해졌는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면 힘든 부분도 있을 것 같다"면서도, 남궁민은 낯선 환경에 자신을 던져놓는 일에 벌써부터 들뜬 모습이다. 이만하면, 그에게 '성실한 노력꾼'이라는 별명을 붙여 줘도 좋을 듯하다. 

"올해는 연기하다 보면 시간이 다 갈 것 같아요. 중국에 다녀오고, 하반기에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하나 더 하고 싶어요. 지금 이렇게 일하는 게 좋아요. 일하면 몸이 좀 힘들기도 하고, 그걸로 투덜댈 때도 있지만 일하지 않는 때보다 마음은 더 편안해요. 그리고, 일을 마치고 쉴 때가 진짜 꿀맛이에요. 일 안 하고 쉴 땐 20~30일만 지나면 힘들어지거든요. 하지만 일을 딱! 끝내고 쉬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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