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 안드레아스> 영화 포스터

▲ <샌 안드레아스> 영화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1908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폼페이 최후의 날>로 시작된 재난 영화의 역사는 현재까지도 큰 인기를 구가하며 이어지고 있다. 자연재해, 외계인의 침공, 바이러스, 현대 시스템의 위기 등 다양한 소재를 품은 재난 영화엔 시대의 징후와 영화 역사의 발전이 같이했다.

1950년대에 제작된 <우주 전쟁>과 <세계가 충돌할 때>엔 사회에 만연한 핵에 대한 공포와 전쟁의 두려움이 스며들어 있었고, 1970년대에 쏟아진 <에어포트> <포세이돈 어드벤쳐> <타워링> <대지진> 등의 거대 제작비가 투입된 재난 영화엔 극장의 대형 화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존재했다. 1990년대에 CG 기술이 발전하면서 등장한 <인디펜더스 데이> <트위스터><타이타닉> <투모로우> <2012> 등의 재난 영화들은 과거 작품들과 시각적인 면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엄청난 볼거리를 앞세우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재난 영화는 여전히 중요한 광맥이다.

<샌 안드레아스>는 역사상 최악의 지진을 소재로 삼은 재난 영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1000km를 가로지르는 단층대인 '샌 안드레아스'가 무너진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란 <샌 안드레아스>의 상상력은 전혀 근거 없는 발상이 아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은 약 1400명의 사상자를 냈던 바 있고, 최근 일부 지질학자들은 캘리포니아가 앞으로 30년 동안 규모 8 이상의 지진 및 그에 따른 지층 파열 등의 재난을 경험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샌 안드레아스>의 영화 속 상황은 과거와 현재라는 현실의 시간대에 일정하게 발을 내디디고 있다.
<샌 안드레아스> 영화의 한 장면

▲ <샌 안드레아스>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샌 안드레아스>의 주인공은 LA 소방구조대에 속한 레이(드웨인 존슨 분)다. 영화는 현재 지구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 중의 한 명인 드웨인 존슨의 육체적인 매력을 십분 활용한다. 재난 상황에서 맹활약하는 드웨인 존슨의 모습은 <데이 라잇>의 응급구조대 대장 킷(실베스터 스탤론 분)과 <다이 하드>의 뉴욕 경찰 존 맥크레인(브루스 윌리스 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킷과 맥크레인이 많은 사람을 구하려고 노력했던 것과 달리, 레이는 자기 가족만을 신경 쓰는 모습이다. 이것은 <샌 안드레아스>가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며 서사의 가지를 확장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샌 안드레아스>는 레이가 부인 엠마(칼라 구기노 분)를 구하러 LA로 가고, 이어서 도움을 청한 딸 블레이크(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 분)를 구하러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여정이 이야기 전부다. 레이의 활약에 맞추어 헬기, 자동차, 보트 등 이동 수단은 게임 아이템처럼 착착 제공된다. 지진을 예측하는 로렌스 교수(폴 지아마티 분)는 지진의 현재 상황을 알려주는 해설자 역할로만 기능할 뿐이다. 재난 영화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가족의 갈등도 존재하지만, 그것 역시도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한다. 레이의 가족 구하기 작전과도 같은 <샌 안드레아스>의 서사는 가늘다 못해 앙상한 지경이다.

<샌 안드레아스>는 이야기에선 우연과 과장이 가득하기에 낙제 수준이나 재난 묘사만큼은 더없이 훌륭한 모범생이다. 네바다 후버댐 붕괴 장면, LA를 강타한 지진 장면,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나는 두 번째 지진 장면 등은 발전된 시각 효과 기술을 활용하여 재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무너지는 빌딩, 엿가락처럼 휘는 다리, 도시를 덮치는 거대한 파도는 만약에 강도 9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영화의 재미를 단순히 '볼거리'로 한정한다면 <샌 안드레아스>의 만족도는 대단히 높다.
<샌 안드레아스> 영화의 한 장면

▲ <샌 안드레아스>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발전된 CG 기술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게 해주었다. 하지만, 대다수 블록버스터는 기술에만 집착하다가 영화의 본질인 인물과 이야기를 잃어버리고 있다. <샌 안드레아스>도 현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지닌 단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40여 년 전 지진을 소재로 그렸던 <대지진>이 보여주었던 여러 인물이 얽히며 구성한 이야기의 재미와 긴장감, 재난 앞에 펼쳐지는 다양한 군상은 <샌 안드레아스>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지진>보다 나은 점은 단지 CG 기술 외엔 없다. 인간이 만난 '재난'은 있을지언정, 재난에 처한 '인간'은 보이질 않는다.

가짜가 난무하는 시대에 진짜의 힘을 믿었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마지막 대사인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는 어쩌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향한 좋은 충고일지도 모르겠다. 더 나은 영화를 위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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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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