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대전 중구 한밭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시범경기 LG와 한화 경기. 김성근 한화 감독이 9-3으로 승리한 후 관중들에게 인사 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대전 중구 한밭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시범경기 LG와 한화 경기. 김성근 한화 감독이 9-3으로 승리한 후 관중들에게 인사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천하의 '야신'에게도 독수리를 개조하는 작업은 녹록지 않은 도전일까. 지난 3년 연속 꼴찌에 그친 한화 이글스가 올시즌도 시범경기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한화는 지난 20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시범경기서 2-13으로 대패했다. 최근 시범경기 5연패에 빠진 한화는 2승8패로 신생구단 KT에게도 뒤진 최하위다.

지난해까지 3년연속 최하위에 그친 한화는 지난 겨울 팬들의 뜨거운 지지 속에 '야신'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며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다. 장기간 계속되는 침체에 지친 한화 팬들로서는 오랜 세월 수많은 프로구단을 거치며 약팀을 강팀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온 김성근 감독의 역량에 거는 기대가 컸다. 한화는 김감독의 영입과 더불어 FA를 통한 적극적인 전력보강과 스프링캠프에서 강도 높은 김성근식 지옥훈련을 거치며 야심차게 팀 체질 개선을 선언했다. 미디어에서도 지난 겨울 내내 온통 한화 관련 이슈로 뒤덮였을 만큼 팬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김성근이 왔지만... 여전히 실망스러운 경기력

하지만 뚜껑을 열자 한화는 시범경기부터 '변함없이'(?)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지만 '김성근 효과'로 무언가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기대했던 팬들에게 지난해와 달라진 부분을 찾기 어려웠다. 시범경기 개막때만 해도 올해는 뭔가 다를 것이라던 팬들의 설렘은 점차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롯데와의 최근 시범경기 2연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훨씬 심각해졌다. 마치 지난해까지 보여준 한화 야구의 모든 문제점들을 하이라이트로 함축해서 보여주는 듯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화는 이번 시범경기 성적에 크게 일비일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김성근 감독은 "시범경기에서 문제점을 확인하는 게 낫다"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주전 선수들 다수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었고, 젊은 선수들의 컨디션 점검에 비중에 두느라 승부에 집착하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은 19일 롯데전을 앞두고 "이제부터는 실전처럼 치르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시범경기가 서서히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전과 다름없는 투수 운용과 적극적인 작전 구사를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정작 한화는 19일 경기에서 0-12로 참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1회부터 선발 투수 탈보트가 무너지며 승세가 기울었고, 타선까지 침묵했다. 한화 타자들은 이날 단 한명도 2루를 밟지 못했다. 경기가 워낙 초반부터 일방적으로 흐르다 보니 김성근 감독이 경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타이밍도 없었다.

김성근 감독은 19일 경기 후 선수들을 다시 소집했다. 예의 유명한 '김성근식 특타'가 다시 등장했다. 김성근 감독이 지휘하는 팀이 슬럼프에 빠지거나 경기 내용이 좋지 않을 때마다 선수단에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하여 종종 시도하는 특별훈련이다. 한화는 이날 경기를 치르고 난후에도 4시간이 넘게 특타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성근식 충격 요법은 이번에도 통하지 않았다. 특타 효과가 무색하게 한화는 20일 경기에서 롯데에게 또 한번의 두 자릿수 점수차 대패를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FA로 영입한 배영수-권혁-송은범 등 주력 투수들을 모두 동원했음에도 속수무책이었다.

김성근식 지옥훈련 효과, 어디로 갔나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지난 겨울 동안 한화가 공들인 전력보강과 지옥훈련의 효과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 김성근 야구의 핵심은 탄탄한 마운드와 수비에서 시작되는 승리 공식이다. 그런데 한화는 최근 경기에서 공격보다 수비가 무너지며 자멸하는 경기들이 더 많다. 타격은 일시적인 슬럼프가 있을 수 있지만 수비에는 기복이 없다는 게 야구의 오랜 격언이다.

19일 경기에서 한화는 1회 초부터 안방과 외야에서 실책성 플레이가 속출했다. 부상으로 이탈한 조인성의 공백을 메운 신예 포수 지성준이 연달아 미숙한 포구로 불안감을 키웠고 이는 선발투수였던 탈보트의 투구리듬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탈보트의 폭투와 패스트볼은 사실 절반은 포수의 실책이나 다름없었다. 외야에서도 우익수로 기용된 황선일의 실책성 플레이가 나오자 김성근 감독이 초반부터 문책성 교체를 단행하기도 했다.

배영수, 삼성 떠나 한화로…3년 21억 5000만 원 한화 이글스는 3일 자유계약선수(FA) 배영수와 계약금 5억 원, 연봉 5억 5000만 원 등 3년간 총액 21억 5000만 원에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진은 지난 10월 5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마운드를 내려오는 삼성 라이온즈 선발투수 배영수의 모습.

지난 2014년 12월 한화 이글스는 자유계약선수(FA) 배영수와 계약금 5억 원, 연봉 5억 5000만 원 등 3년간 총액 21억 5000만 원에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 연합뉴스


20일 2차전에서는 상황이 오히려 더욱 심각해졌다. 수비에서 공식적으로 기록된 실책만 5개가 나왔다. 13실점 중 수비 실책으로 인한 투수 비자책만 5점에 이르렀다. 선발 배영수는 4.1이닝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3실점(1자책)을 기록했는데, 뒤이어 등판한 계투진이 무려 10점을 내주는 난조를 보였다. 특타의 영향으로 타선에서는 송주호와 최진행, 김회성 등이 멀티히트를 기록하긴 했지만 점수차가 워낙 크게 벌어지며 맥이 빠졌다.

시즌 개막이 코앞인데 한화는 현재 강점은 뚜렷하지 않고 불안요소는 늘어나는 실정이다. 일단 전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이 뼈아프다. 스프링캠프부터 김 감독의 눈밖에 나며 2군 캠프로 떨어진 모건은 아직 1군의 부름을 받지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개막전 합류도 비관적이다.

이미 한국 프로야구를 경험했던 쉐인 유먼-미치 탈보트로 외국인 투수진도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스프링캠프에서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유먼은 정작 시범경기에 돌입하자 제구 불안을 드러내며 2경기에서 벌써 14실점을 허용하여 평균자책점이 무려 18.90에 이른다. 그나마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여준 탈보트도 세 번째 등판이던 19일 롯데전에서 5.1이닝 7피안타(2피홈런) 7실점으로 무너졌다.

국내 선수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내야 수비의 핵이자 중심타자인 정근우가 스프링캠프에서 턱 골절 부상을 당했다. 베테랑 포수 조인성 역시 종아리 부상으로 전반기를 날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밖에 김태균, 김경언, 정범모 등 다수의 선수들이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하필이면 올시즌 팀의 핵심자원들이 전열에서 이탈해 있으니 성적이 나올 수가 없다. 설사 시즌 개막후 이들이 복귀한다고 해도 당장 최상의 전력을 끌어내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내부의 패배주의 경계해야

한화는 지난 몇 년간 주전과 백업간의 실력차가 가장 큰 팀이었다. 천하의 김성근 감독이라고 해도 단기간에 이러한 격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의 한화에게 가장 두려운 적은 상대팀이나 시범경기 성적보다 내부의 패배주의다. 한화는 최근 몇 년간 최하위권을 전전하면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많이 잃고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전임 한대화-김응용 감독 등도 이런 한화의 패배주의를 극복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한화는 몇 년간 팀 자책점과 최다실책에서도 리그 1위를 도맡다시피했다. 전임 감독들이라고 제대로 훈련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훈련을 하고도 막상 시즌에만 돌입하면 실수 연발에 무기력한 플레이가 속출하는 예전의 모습으로 회귀하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훈련량보다 심리적인 문제가 더 커보인다.

김성근 감독이 아무리 강도 높고 다양한 훈련으로 선수들을 조련시킨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의식의 전환은 결국 선수들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당장 지는 것보다도 더 나쁜 것이, "그렇게 훈련해도 우리는 안 되는구나"하는 패배의식에 빠지는 것이다. 팬들조차 "김성근 감독마저도 안 통한다면 한화는 어떻게 해야 하나"는 좌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화 선수들이 진정한 프로라면 "그렇게 지독하게 훈련했는데 억울해서 질 수 없다"는 근성을 가져야 한다.

김성근 감독에게도 그만큼 한화를 재건하는 것은 그의 70년 야구인생에서 가장 일생일대의 어려운 도전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직 시즌은 개막하지 않았고, 한화에게는 시간이 남아 있다. 시범경기에서의 시행착오는 과연 올시즌 한화의 진짜 본모습일까, 아니면 성장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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