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징비록>의 촬영 현장 모습

KBS 1TV <징비록>의 촬영 현장 모습 ⓒ KBS


"태합 전하 만세! 관백 전하 만세!"

꽃샘추위가 절정에 다다른 1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KBS 드라마제작센터. 외딴 건물에 들어가니 들리는 건 우렁찬 함성이다.

이곳은 매주 주말 밤에 안방을 찾는 KBS 1TV 대하드라마 <징비록> 촬영장. 양자를 맞이해 관백으로 세우고, 자신은 태합('살아도 죽어도 따라야 하는 지엄한 권력자'라는 뜻으로 풍신수길이 신하들에게 자신을 부를 때 쓰도록 한 극존칭-기자 주)이 되어 본격적인 전쟁을 준비하려는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 김규철 분)을 향해 부하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을 막 촬영할 참이다.

원래 이곳은 CG가 필요한 크로마키 촬영 등이 진행되는 특수촬영장이다. 조선(한국)을 비롯해 당시의 일본과 명나라(중국) 3국이 모두 중요하게 등장하는 <징비록>의 특성상 본래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 외에도 세트장을 세운 것. 연출을 맡은 김상휘 PD는 "기존 드라마 속 일본의 모습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가장 크게 공을 들인 부분이 의상이나 미술 같은 부분"이라며 "일본의 대하드라마가 참고가 됐다"고 설명했다.

 KBS 1TV <징비록>의 촬영 현장 모습

KBS 1TV <징비록>의 촬영 현장 모습 ⓒ KBS


<징비록>이 이렇게 3국 모두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조선 최대의 국난이라 불렸던 임진왜란을 단순히 조선과 일본 간의 전쟁이 아니라, 조선-일본-명나라 내외부의 정치적-외교적 분쟁으로 시야를 넓히려는 기획의도 덕분이다. 특히 최근 방영분에는 자신의 입지 때문에 조선 침략을 막으려 꼼수를 부리는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 이광기 분)의 모습이 꽤 자세하게 다뤄지기도 했다.

이를 두고 "조선 출연자들이 불만이 많다"는 농담으로 입을 연 김 PD는 "그 곳에서도 전쟁을 하려는 사람과 막으려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려다 보니 분량이 늘어난 건 맞다"며 "실제로 임진왜란은 5년 정도 소강상태로 정전 협상을 길게 했다. 미리 일본과 명나라의 캐릭터를 설명해두지 않으면 이때 드라마의 한 축이 형성되지 않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8회까지 방송된 <징비록>은 빠르면 12회 말 전쟁에 돌입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드라마가 3국의 정세와 류성룡(김상중 분) 주변의 인물 설명에 집중하느라 전개가 다소 느렸던 것도 사실이다. 김상휘 PD는 "전쟁도 중요하지만 그게 왜 일어났는지, (전쟁 전에)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할 이야기는 다 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상중 또한 "우리 드라마의 장점은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처럼 은은하고 진중하게 가면서도 힘이 있다는 것"이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징비록> 촬영은 연기자로서 공부가 되는, 좋은 시간"

 KBS 1TV <징비록>에 출연 중인 배우 김상중과 김태우

KBS 1TV <징비록>에 출연 중인 배우 김상중과 김태우 ⓒ KBS


<징비록> 속 근엄하기 그지없는 선조(김태우 분)와 류성룡은, 사실 꽤 재치 있는 사람들이다.

앞서 제작발표회에서도 서로를 향한 은근한 '디스'로 웃음을 자아내던 배우 김태우와 김상중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등장부터 모두를 웃겼다. 분장을 마치고 들어온 김상중이 김태우를 향해 "소신은 모과차를 가져왔사옵니다"라며 손에 든 차를 내밀어 보이자, 김태우가 "그래? 나는 콜라라네"라며 자신의 컵도 함께 내보인 것.

두 사람은 기자간담회 내내 "김상중이라는 사람은 부족함이 많지만 연기자로서 김상중은 '뿌리 깊은 나무'다"(김태우) "점점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조금만 있으면 삐지는 모습을 보며 선조 역에 몰입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배우는 배우다'라는 생각이 든다"(김상중)와 같은 '폭로'를 이어가며 웃음을 자아냈다.

물론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갈 땐 달랐다. 먼저 김상중은 류성룡을 두고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다. 감정의 진폭 없는, 정적으로 산 사람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더라"며 "류성룡이 선조를 향해 너무 '예스맨'인 것은 아니냐, 큰 기복 없이 '선조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류성룡은 선조에게 군신 관계로 충성을 다하는 것이 나라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에 MBC <나는 가수다>를 재밌게 봤어요. 그런데 폭발적인 가창력을 가진 이들의 노래만 계속 듣다 보니 '한번쯤은 조용하게 부르는 가수가 나오면 어떨까' '그런데 그러면 사람들이 노래 못한다, 가창력이 없다고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것처럼 류성룡에게도 희로애락이 있어요. 하지만 주변 인물의 폭발력이 크다 보니 (류성룡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요. 류성룡의 '정중동' 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쉽지 않지만, 나아질 거라 생각해요." (김상중)

그가 진행해 오고 있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류성룡이 강직하고 충직한, 그러면서도 (선조를 향해) 돌직구를 날리다 보니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말투와 흡사해지는 부분이 있다"는 김상중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상당부분 다르다. 그저 드라마 속의 인물로 봐줬으면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리암 니슨도 <테이큰> 말고도 많은 작품에 출연했고, 모두 목소리나 톤은 같았지만 작품 속 인물로 보지 않나"고 덧붙였다.

 KBS 1TV <징비록> 4회의 한 장면

KBS 1TV <징비록> 4회의 한 장면 ⓒ KBS


그런가 하면 김태우는 "공부하고 촬영하고의 반복"이라며 "대하 사극이 처음인데 대사 속 단어부터 (현대물과) 다른 데다 그걸 입에 붙여야 하고, 그 대사에 감정을 싣고 입체적으로 만들려다 보니 숙지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전했다. 이런 연구 끝에 나온 것이 4회 동인들의 죽음을 추궁하는 류성룡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탁자 아래로 손가락을 까딱인 선조의 모습이다.

이는 선조라는 캐릭터를 한 신으로 설명하고 싶었던 김태우가 대본 연습을 하다 생각해낸 애드리브로, 선조를 깊이 이해하려는 김태우의 노력이 엿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태우는 "이렇게만 하면 나에게는 배우로서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며 "매 작품마다 배우는 게 있지만 <징비록>은 정말 연기자로서 공부가 되는 좋은 시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8회에서도 (선조가) '백성이 나를 원망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걸 겉으로는 자기 탓이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무능하게 보이는 자신이 싫었을 거예요. 콤플렉스가 크잖아요. 방계 출신의 첫 왕으로 잘 해내고 싶은데 그런(안 좋은) 소리를 듣고…. 선조는 백성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백성만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백성을) 걱정하는 척도 하는 것일 거고, 또 한편으로는 진짜 (백성을) 걱정하기도 하겠죠." (김태우)

한편 <징비록> 속 이순신 장군 역을 누가 맡느냐에 대한 궁금증 또한 커진 상황이다. "여러 가지 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김상휘 PD는 "영화 <화이>를 보고 박해준을 캐스팅하고 싶었는데 이미 tvN <미생>에 캐스팅됐더라. (박해준이) <징비록>에 등장하긴 하지만 이순신 역은 아니다"라며 "이순신 역을 두고 실제 캐스팅 리스트도 만들고 있고 상의도 하고 있지만 어려운 캐스팅이다. 류성룡과의 관계나 우정을 위주로 등장하게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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