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로, 엄마 에서 미진을 연기하는 길해연

▲ 먼로, 엄마 에서 미진을 연기하는 길해연 ⓒ CJ문화재단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연극 <먼로, 엄마>의 미진이 이 그렇다. 54세라는 나이에도 미진은 노미진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으로 살기보다는, 마릴린 먼로를 흉내내는 이미테이션 가수가 자신다운 삶이라는 착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미진은 마릴린 먼로를 흉내내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딸과의 불화를 각오하면서까지 이미테이션 가수를 고집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먼로, 엄마>에서 미진을 연기하는 길해연은 지난 가을에 개봉한 영화 <카트>에서 진상 고객으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바 있는 배우다. 길해연을 20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마릴린 먼로로 살 수밖에 없는 엄마의 삶, 인정하기"

- 미진은 이미테이션 가수로 왜 마릴린 먼로만 흉내낼까.
"미진은 마릴린 먼로처럼 인생이 기구하다. 1962년 미진이 태어나던 날에 마릴린 먼로가 죽었다. 미진은 자신이 세상과 연결된 듯한 사람이 마릴린 먼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진은 그처럼 살 때만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대사를 보면 '나는 마릴린 먼로일 때만 살아있는 것 같다'고 한다. 혼자서는 정서적으로 흔들려 버틸 수 없다. 남들이 보면 불행해 보이지만 미진이 마릴린 먼로로 있는 동안에는 유쾌하게 산다.

남진 이미테이션을 하는 가수는 행사라도 다닐 수 있지만 미진은 그렇지 못하다. 늙은 마릴린 먼로를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아서 노래하는 무대도 잃게 된다. 연극배우는 무대 위에서 남의 인생을 산다. 연극하면 누가 알아주냐고 홀대하는 연극인의 삶을 이미테이션 가수로도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다."

먼로, 엄마 에서 미진을 연기하는 길해연

▲ 먼로, 엄마 에서 미진을 연기하는 길해연 ⓒ CJ문화재단


- 미진의 딸 연희는 가출을 생각할 정도로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
"딸은 자신을 보아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미진은 딸보다는 마릴린 먼로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마릴린 먼로처럼 노랗게 머리를 하고 50이 넘었음에도 가슴이 파인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일거리가 끊겨도 딸에게는 일이 끊겼다는 걸 보이기 싫어서 마릴린 먼로처럼 하고는 밤거리를 다닌다.

연희는 이런 엄마가 자랑스럽지 않다. 하지만 엄마 앞에서 울지도 못했다. 미진은 이미테이션 가수로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줄 알면서도 방송 출연을 결심한다. 엄마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게 연희에게는 서글픈 일이 된다. 연희는 '엄마는 왜 끝까지 엄마 인생만 생각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 그렇다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마릴린 먼로라는 이미테이션의 삶을 사는 정체성의 문제인가, 아니면 엄마와 딸의 화해인가.
"소재와 배경은 이미테이션 가수지만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다. 그 안에는 엄마가 꿈꿔왔던 것을 인정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짜라서 씁쓸해하지만 가짜를 진짜로 믿고 사는 이들과, 이를 인정해주는 이야기를 담는 이번 연극은 가슴이 아득해지면서도 존재를 인정해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먼로, 엄마 에서 미진을 연기하는 길해연

▲ 먼로, 엄마 에서 미진을 연기하는 길해연 ⓒ CJ문화재단


"<카트> 진상 고객 역할, 관객에게 거울이 되어준다"

- 영화 <카트>에서는 진상 고객으로 출연했다.
"<카트>를 보면 연극배우들이 많이 출연했다. 출연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무슨 역할로 연기하면 좋을까를 상의했다. 악역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에서 가해자의 엄마를 연기한 적이 있다. 가해자의 엄마이면서도 피해자에게 미안해하기는커녕 너무 뻔뻔한 엄마 역이었다.

오죽하면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보신 강신일 선배님이 '너, 나가다가 돌 맞지 않겠니?' 할 정도였다. <카트>에서 제가 연기한 역할 같은 인물이 너무나도 많다. 인터넷 기사를 보라. 진상 고객, 혹은 갑질 고객이라는 뉴스가 끊이질 않는다. 지금처럼 이런 뉴스가 마구 터지기 직전에 <카트>를 통해 먼저 진상 고객을 보여준 거다. 악역은 관객으로 하여금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거울이 되어준다."

- 어머니 김복희 여사가 2011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했다.
"어머니는 제가 연극하는 걸 반대하셨다. 제가 연극하거나 강의하는 동안에는 아이를 돌보아주셨는데 일부러 돌봐주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손주를 돌보지 않으면 딸이 연극하는 걸 그만두지 않을까 해서다.

보통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인터뷰하면 '어머니가 보따리 장사를 하시면서도 책을 읽어주셨다' 또는 '어머니가 많은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하는 소감이 많다. 상을 수상했을 때 어머니는 '인터뷰 안 할래' 하셨다. 제가 연극하는 걸 반대하신 걸 미안해하셨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하면 속으로는 기뻐했을 텐데 겉으로는 언짢아 하셨다.

어머니는 인터뷰할 때 '딸이 힘들까봐 무대에 오르는 걸 반대했다. 딸이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하면서 민망해 하시다가 결론은 '내가 애 다 키워줘서 네가 연극할 수 있었잖아'로 마무리하셨다. 극단 후배들이 당시 수상식에 참석했는데 그 어떤 상보다도 이 상을 받고 싶어했다. 어머니가 이 상을 수상하신 게 참으로 자랑스럽다."

카트 길해연 먼로, 엄마 강신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