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에 열린 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지난 10월에 열린 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 이정민


"올해는 부산영화제에게 그 어느 해보다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다."

최근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가 전한 새해 전망이다. 2015년은 영화제가 20회를 맞이하는 뜻 깊은 해지만 지난해 <다이빙벨> 상영에 따른 후폭풍이 여전히 감돌고 있어서다.

영화제가 끝난 직후 감사원의 감사와 부산시의 지도·감독(감사)를 연이어 받으면서 부산영화제는 예산지원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국내 다른 영화제 관계자는 "우리도 감사를 받았지만 강도가 그리 세지 않았다"며 "부산영화제가 감사의 주목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 실무 관계자는 "추측성 이야기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부산시청 배경아 주무관은 9일 "올해 예산이 줄어들거나 하는 일은 없다"며 "영화제 예산이 축소된다는 이야기는 외부에서 근거 없이 떠드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예산은 더 늘어난 것도 없지만 줄어들지도 않았다.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확정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내 영화제들이 10년 단위의 행사에 의미를 두고 특별하게 치른다는 점에서 올해 20회를 맞는 영화제 예산의 증액 아닌 동결은 사실상 보복 성격이 짙다는 시선도 있다. 계획했던 특별 프로그램 등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회 맞는 행사에 예산 동결, 사실상 보복?

국내 영화제들에 다시금 정치적 외풍이 불고 있다. 2010년 이명박 정권 당시 영화계 좌파들을 몰아낸다며 한바탕 난리를 피운 지 5년 만이다. 그렇다고 새누리당 소속 시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있는 부산영화제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 부산·전주·부천·제천·여성·청소년·DMZ 등 7개의 영화제가 국고지원을 받고 있다. 국내 영화제들은 감사원이 국고 지원 영화제들을 모두 감사한 것에 대해 "부산영화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제들을 향한 경고성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영화제들이 정치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잇달아 내 놓은 데 따른 일종의 정치적 압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내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영화제들 간에 감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면서 "감사원이 아무리 예정됐던 감사라고 말해도 의도가 뻔하지 않나, 감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를 활용할 것이고 이미 결과에 대한 방향은 정해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마지막 날 이뤄진 영진위원장과 영진위원 인사는 이런 염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현장 영화인출신 위원장을 원했던 영화계의 요구는 무시당했고, 뉴라이트 단체 문화미래포럼 출신 인사가 영진위원에 임명됐다.

문화미래포럼은 지난 2010년 국회에 제출한 문건을 통해 '국내 영화제와 영상위원회 등을 좌파의 근거지'로 주장하며 인적 청산을 요구했던 단체였다. 2010년 촉발된 영화계 갈등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 국내 영화제들뿐만이 아닌 영화계가 우려의 시선과 함께 경계심을 갖는 이유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 논란 과정에서는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행사라면 정부 비판 영화를 틀지 말라'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왔다. 기본적인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인식이라는 비판이 많았으나 예산을 갖고 압박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내 주요 영화제들은 지금껏 한국영화의 성장과 문화 다양성 확보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분위기 속에 영화제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 정권이 대외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문화융성' 정책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것이 일부 영화계 인사들의 평가다.

겉으로는 문화융성, 속으로는 표현의 자유 제약

 부산영화제와 전주영화제에서 각각 공개돼 파란을 일으켰던 <다이빙벨>과 <천안함프로젝트>

부산영화제와 전주영화제에서 각각 공개돼 파란을 일으켰던 <다이빙벨>과 <천안함프로젝트> ⓒ 아우라픽쳐스. 시네마달


근래 영화제 상영작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나오게 만든 것은 2013년 전주영화제에서 공개된 <천안함프로젝트>였다. 이전에도 민감한 작품들이 종종 상영됐으나 사회분위기가 구시대로 퇴보하는 흐름 속에 유난했다.

이 같은 작품에 대해서는 상영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되거나, 개봉 과정에서는 대기업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상영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부에서는 계획됐던 상영마저 취소해 상영 자유 침해에 대한 논란을 키웠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의 <다이빙벨>은 그 연장선 같은 성격이 짙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영화제의 일반적인 상영작에 대해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소모적이고 억지스런 주장만이 제기됐다. 막상 영화가 공개되면서 일방적인 주장들은 더 이상 기를 펴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영화제가 지켜야 할 가치인 창작과 표현의 자유 침해 논쟁으로 이어졌다.

올해 역시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국내 영화제들에 있어 표현의 자유 수호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특히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일부 정치인 출신 단체장들의 경우, 간섭하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제들의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권 차원에서 부담을 가질 만한 민감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계속 제작되고 있고, 국내 영화제들이 이런 작품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할 가능성은 적은 상황이다. 국내 영화제들 역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작품에 대한 외부의 압력은 단호히 거부한다는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압박이 심할 경우 어느 정도의 위축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선이 많다. 지난 2010년에는 당시 영화진흥위원회가 나서 국고 지원 축소 문제를 공론화 시켰고,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됐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영화제들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부산영화제 전주영화제 영진위 다이빙벨 천안함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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