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심야식당> 출연진 2014 <심야식당> 출연진. 왼쪽부터 한보라·김아영·차청화·임춘길·이지숙·송영창·조진아·임기홍·정의욱·김지훈

▲ <심야식당> 출연진 2014 <심야식당> 출연진. 왼쪽부터 한보라·김아영·차청화·임춘길·이지숙·송영창·조진아·임기홍·정의욱·김지훈 ⓒ 심야식당문화산업전문회사


꼬르륵

밤 12시, 텅 빈 위장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야식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아름다운 식사다. 아침에 얼굴은 붓고, 배에 켜켜이 지방세포는 축적될 테지만 무슨 상관이랴.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어야 하는 현대인에게, 야식이라는 자기파괴적 미학은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사실 이 헛헛함은 단순히 생물학적 '배고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에 배고프고 관계에 목마르다. 아픔에 공감하고, 고민을 나누며 함께할 사람이 없다. 같이 술 한 잔 기울여줄, 밥 한 끼 먹어줄 사람을 찾기 어려운 시대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게 아픔이니까요. 그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아니까, 그래서 서로 더 애틋한 거겠죠."

모두 잠든 시각, 이처럼 '사람'에 배고픈 이들을 위해 문을 여는 식당이 있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오전 7시,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과 몇 가지 술을 제외하면 별 다른 메뉴도 없다. 하지만 상대가 요구하면, 그가 요구하는 '소울 푸드'를 있는 재료로 적당히 만들어 준다.

이 식당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을 채우기 위한 곳이다. 화려한 맛을 자랑하지도, 수많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도 아니다. 도시 골목 속에 자리 잡은 이 작은 식당을, 간판도 상호도 없는 이곳을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인기 절정의 일본 원작, 국산 뮤지컬로 재탄생

차청화 배우 <심야식당>의 주연급 조연, '오차즈케(차밥) 시스터즈'에서 명란젓을 맡은 차청화 배우. 극 전체에 매력을 잘 불어넣었다.

▲ 차청화 배우 <심야식당>의 주연급 조연, '오차즈케(차밥) 시스터즈'에서 명란젓을 맡은 차청화 배우. 극 전체에 매력을 잘 불어넣었다. ⓒ 곽우신


<심야식당>은 원래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일본 만화가 아베 야로가 지난 2006년, 만화잡지에 비정기적으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잔잔한 작품이다보니 나온 순간에도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일상에 지친 소시민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시선, 여기에 팬들의 지지가 서서히 불붙기 시작했다.

뒤늦게 걸린 인기의 발동은 드라마 제작까지 가능하게 했다. 2009년 1기가 제작되어 방송된 이후, 지난 2014년 12월 21일, 3기의 마지막화가 방영됐다. 극장용으로도 만들어져 오는 31일, 일본 개봉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단행본이 꾸준히 발매되고 있다. 9권부터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발매되고 있다. 출판 경기가 불황인 가운데 상당히 드문 일, 현재 13권까지 나왔다. 만화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토대로 한 단행본이 따로 발매되고, 작품에 등장한 요리의 레시피만 모아 출판되기도 했다.

원작이 따로 존재하는 작품이지만, 뮤지컬 <심야식당>은 엄연한 '국산' 창작뮤지컬이다. 지난 2012년 초연 이후, 2014 창작뮤지컬 우수작품 재공연 지원작에 선정되어 다시 한 번 관객을 만나게 됐다.

국산 뮤지컬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콘텐츠 없는 물량공세다. 많은 자본을 투여해 화려하게 치장한 대극장 뮤지컬이 무조건 관객을 끌어들이지는 못한다. 훌륭한 배우, 풍부한 오케스트라, 화려한 의상과 무대는 모두 '부가적' 요소일 뿐이다. 뮤지컬 역시 '극'의 일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극 자체가 탄탄하지 않으면 아무리 겉치장으로 덮으려 해도 관객의 박수는 쉬이 나오지 않는다.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데 실패한 <아르센 루팡>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반면, 소극장이나 중극장 공연인데도 대극장 뮤지컬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도 많다. 대학로 창작뮤지컬계의 고전이자 걸작인 <빨래>가 이 방면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심야식당>은 후자가 개척한 길을 충실하게 따른다. 원작의 에피소드 중 일부를 가져 와 전체 극을 짰다. 에피소드별로 이야기가 하나씩 마무리되는 원작과 달리, 110분이라는 시간의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기에 각각의 이야기를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이 과정에서 원작과는 약간의 차별점을 두며 대체로 잘 변주했다.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잘 살려낸다.

배우는 빛나는데... 에피소드 강약 조절은 물음표

이지숙 배우 <심야식당>에서 '치유리 미도키' 역을 맡은 이지숙 배우의 커튼콜 인사 모습. 좋은 배우임에도 역할의 비중이 적었던 탓에 제대로 끼를 못 펼쳤다.

▲ 이지숙 배우 <심야식당>에서 '치유리 미도키' 역을 맡은 이지숙 배우의 커튼콜 인사 모습. 좋은 배우임에도 역할의 비중이 적었던 탓에 제대로 끼를 못 펼쳤다. ⓒ 곽우신


다만 이 과정에서 치도리 미유키의 에피소드가 죽어버린 것은 상당한 흠이다. 전체 공연을 열고 닫는 이야기인데도 큰 임팩트가 없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길게 늘인 연출은 구성상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중간 중간 맥 자체가 끊어져 버리면 문제다. 다른 인물의 이야기에 묻혀 미유키의 이야기는 애초에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식당 안에서 공연하는 장면도 사라지고, 그녀가 사망할 때의 이야기도 제대로 풀어내지 않는다. 작중 배역이 사망했는데도 대사 몇 마디로 처리된다. 본래 원작에서는 상당히 호평받았던 에피소드인데도 뮤지컬에서는 그 감동이 꽤나 반감된다.

무대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마릴린의 공연장면을 제외하면 별 다른 공간 이동 없이 식당에서만 진행된다. 그럼에도 별 다른 무리 없이 충분히 극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소극장처럼 배우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면서도, 적당히 무대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는 중극장 뮤지컬의 매력을 잘 드러낸다.

배우들의 열연은 훌륭하다. 마릴린의 공연은 순간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가 '브링 온 힘(Bring on him)'을 부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매혹적이다. 조진아는 원작과 유사한 발랄한 느낌을, 소정화는 초연 배우였던 박혜나처럼 당당한 느낌을 더 잘 살린다. 김지훈은 '겐'역 이외에도 여러 역을 동시에 뛰면서 모든 자리를 당차게 소화한다. 그를 보면, 훌륭한 배우 한 명이 어떻게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는지 잘 드러난다.

특히 '오차즈케(차밥) 시스터즈' 3인방의 매력은 극 전체를 쥐락펴락 한다. 재연인 차청화·김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초연인 한보라도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멀티로 여러 역을 소화하면서도 어느 역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다. 빛나는 세 배우 덕분에 극 전체가 활력을 띠게 된다.

하지만 미유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가수라는 설정에도 미유키가 설 자리가 없다. 여러 노래를 하지만 미유키의 노래라기보다는 심야식당의 배경음악 같은 느낌이다. 이지숙 배우 개인의 역량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끼를 마음껏 발산할 무대 자체가 부족했다.

특별한 개인들의 평범한, 그래서 감동적인 이야기

<심야식당> 커튼콜 <심야식당> 커튼콜의 한 장면, 출연배우들이 '심야식당' 넘버를 부르고 있다.

▲ <심야식당> 커튼콜 <심야식당> 커튼콜의 한 장면, 출연배우들이 '심야식당' 넘버를 부르고 있다. ⓒ 곽우신


대중은 균일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대중'이라 부르는 집단은 평범하고 균등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아니다. 대중이라는 단어로 쉽게 묶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 다르다. 대중은 독특한 개인들의 집합체다. 어디에나 있을 것처럼 모든 면에서 '평범'한 사람은 오히려 현실에서 드물다. 우리 모두는 어딘가 결여되어 있고, 어딘가는 다소 넘치는 특이한 사람들이다.

<심야식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중을 대변할 수 있는 이유가, 대중이 이들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모를 모시고 있는 40대 후반의 노총각, 여전히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꾸는 38세의 노처녀, 오랫동안 게이바를 운영해 온 50대 여장남자와 조직폭력배 간부, 도무지 뜨지 않는 거리의 가수와 밤거리의 여왕인 스트리퍼까지. 어느 하나 '평범한' 이들이 없다.

그런데 정작 이처럼 사방팔방 튀는 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평범하다. 문어 모양으로 칼집을 낸 빨간 소시지, 달콤한 달걀말이, 따끈한 버터라이스에 삶은 계란이다. 이들이 간직한 상처 역시나 모두 비슷하다. 공감은 여기서 출발한다. 나와 전혀 다를 것 같은 사람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에 감동이 더 커진다. <심야식당>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대중이다.

"세상에 모든 여자들
눈으로만 나를 보고, 입으로만 나를 말해
마음으로 나를 봐주는 사람,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 정말 없나."

머리숱이 없어서 연애를 못하는 남자, 살이 쪄서 사랑을 못하는 여자가 있다. 노총각은 매일 술에 취해 사라지는 어머니가 걱정이고, 딸을 버렸던 아버지는 그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여전히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무대 배경이 일본이라 해서 극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일본의 서민이나 한국의 서민이나 팍팍한 삶 속에서 고민하는 건 똑같다. '타다시'·'미유키' 대신 '철수'나 '영희'로 이름을 대체해도 무리가 없다. 

우리는 하루하루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 '삶' 속에서 '음식'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우리는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산다. 우리는 먹으면서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맞이할 힘을 얻는다. 삶과 밀착해 있는 밥 한 끼이기에, 여기에 우리 삶의 이야기가 녹아들고 개인의 인생사가 새겨진다. 그래서 음식 이야기는 나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마스터는 "누구에게 상처 하나쯤 있는 법"이라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타다시는 "때로는 말해야 낫는 상처"도 있다고 말을 건넨다. 상처에 대해 무심한 듯 한마디씩 던지는 단어가 또박또박 가슴에 와 닿는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각자의 상처를 숨기는 대신 꺼내어 낫게끔 한다. 그리고 각자의 '소울 푸드'로 그 상처를 보듬는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 각자도 묻어뒀던 상처를 회상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힐링'의 한계... 공간의 속성으로 극복 시도

조진아 배우 <심야식당>에서 마릴린 배역을 소화한 조진아 배우가 커튼콜에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극중 마릴린은 스트리퍼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 조진아 배우 <심야식당>에서 마릴린 배역을 소화한 조진아 배우가 커튼콜에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극중 마릴린은 스트리퍼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 곽우신


물론 이 작품은, '힐링' 코드를 가지고 있는 작품의 전형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구조에 대한 거시적 접근 없이 개인의 치유에만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오류의 탓을 <심야식당>에 전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주목해야할 점은 '심야식당'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이다.

심야식당의 주인인 '마스터'는 모든 사람을 평등한 시선으로 선입견 없이 대한다. 이 공간에서는 사회적 편견도, 구조의 억압도 작동하지 않는다. 심야식당은 매일 밤, 무대 위에 올라가는 스트리퍼도 "이 일은 나의 천직"이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표할 수 있는 공간이다. 50대 여장남자와 조직폭력배의 간부가 서로 사랑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장소이다. 할머니가 술에 취해 와서 주정을 부려도 되고, 대머리 총각이 가발을 쓰지 않아도 되는 곳.

그런 의미에서 심야식당은 사회구조에 치이고 다친 사람들의 도피처이다. 동시에 밖에서 구현되지 않은 가치가 실현된 소공간이다. 그러니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판하듯 <심야식당>을 비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허지웅의 말마따나 "정치권에 요구해야 할 이야기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고, 개인에게 "지금 어찌됐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어루만져주는 건 다른 이야기다.

매일같이 모시조개술찜을 만들어놓고 아들을 기다렸다는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볶음 우동 위에 뿌려진 파래가루에서 아버지의 따뜻한 위로를 느낀 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충분히 공감하고 눈물 흘릴 수 있다. 추억에 체해서 넘기지 못했던 이들이, 그 추억을 곱씹으며 삼킬 수 있게 된다. 버티는 것도 저항이다. 사는 것 자체가 투쟁이다. 오늘을 견디고 내일로 한 걸음 내디딜 힘을 소시민들에게 주는 것, 구조를 향한 변혁은 여기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언제든 배고프면 와요."

공연장을 나설 때 계속 흥얼거리게 되며 '꽂히는' 넘버(노래)가 없다는 건 아쉬우나 괜찮다. 대신 가슴 속에 이 겨울을 견딜 훈훈한 기운 한 움큼씩 품고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언제든 배고프면 찾고 싶은 뮤지컬, 다음 재연도 기다려지는 이유다.

"어깨를 다독이는 말없는 친구처럼
늘 그 자리에서 환하게 웃는 당신처럼
날 위로해주는 밤하늘 저 별처럼
어두운 밤, 좁은 골목
심야식당."

<심야식당> 포스터 2014 <심야식당> 포스터

▲ <심야식당> 포스터 2014 <심야식당> 포스터 ⓒ 심야식당문화산업전문회사



뮤지컬 심야식당 일본 힐링 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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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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